전쟁에서 많은 지휘관들이 범하는 가장 흔한 착각 가운데 하나가

병사들을 명령에 따라 칼같이 움직이는 전쟁기계쯤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병사들은 통제에 따를 것이다'라는 착각 위에 행해지는 실수가

전장에서의 학살, 강1간, 약탈 등을 '통제 가능한' 무언가로 여기는 것이다.


도시에 대한 무차별적 파괴,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

이런 것들로 인한 공포 효과만으로는 적의 저항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인류의 오랜 역사가 증명한다.

공포는 증오와 복수심에 의해 손쉽게 상쇄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학살을 통해 적의 저항 의지를 꺾으려면 반드시 한 가지 전제가 더 필요한데,

'저항하는 자는 죽이는' 동시에 '항복하는 자의 안전은 보장'해야만 한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세트로 행해져야만 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매개로 저항 의지를 꺾는다면,

역으로 저항 의지를 꺾었을 때의 생존과 안전 보장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막말로 저항해도 죽이고 항복해도 죽인다면 누가 항복을 하겠는가?


그래서 학살에 따른 공포 효과로 적의 저항 의지를 꺾고자 하는 지휘관은

바보가 아닌 이상 '항복하는 자는 건드리지 말라'는 지시 역시 함께 내린다.


하지만 이 때 지휘관은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저항하는 자는 죽인다'와 '항복하는 자는 건드리지 않는다'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


학살은 미친 개의 고삐를 풀어놓는 것과 같다.

민간인에 대한 학살, 강1간, 약탈을 허용하는 순간, 군대는 통제를 벗어난 광인 집단이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민간인에 대한 학살은 건전한 사고 방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명령이다.

여기에 아무런 저항감 없이 응할 수 있는 병사는 이미 윤리적, 도덕적으로 망가져있는 병사 뿐이며,

건전한 사고 방식을 가진 병사가 저항감을 표하는 데에도 강압적으로 학살을 강제할 경우에는 그 병사가 망가져버리게 된다.

그리고 정신이 망가진 인간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병사는 원래 미쳐있던 인간이거나, 전쟁으로 미쳐버린 인간이거나 둘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미친 인간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


학살은 미친 개의 고삐를 풀어놓는 것과 같다.

아예 고삐를 잡고 있으면 모를까, 고삐를 풀어놓는 순간 물어도 되는 대상과 물어선 안 되는 대상이 구분 따위는 없다.

학살, 강1간, 약탈에 대한 허용은 통제가 생명인 군대를 통제가 불가능한 광인 집단으로 변모시킨다.

발정난 짐승이 되어 강1간이나 일삼고 돌아다니는 병사가, 딱 자기 취향의 미인을 눈 앞에 뒀는데, 

그 미인이 항복 의사를 표명했다고 해서 그 즉시 아랫도리의 본능을 누르고 그 미인을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은 채 

평화롭게 민간인 수용 구역으로 이송시킬 것이라 생각하는가?

돈에 눈이 멀어 귀금속을 약탈하고 다니는 병사가, 해당 지역 부자의 집에 들어갔는데,

그 집주인인 부자가 항복 의사를 표명했다고 해서 그 즉시 욕망을 억누르고 그 집의 온갖 호화로운 고가의 재산들을 조금도 손 대지 않은 채

그 부자의 모든 재산을 그대로 보호해줄 것이라 생각하는가?


결국 '항복한 자의 안전은 보장한다'는 원칙은 절대 지켜지지 않는다.

한 번 학살, 강1간, 약탈을 허용하는 순간 '항복을 했는데도' 학살, 강1간, 약탈을 당하는 사례는 무조건, 반드시 나온다.

그리고 항복을 했는데도 생존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전례가 생겨나는 순간,

적국 민간인들에게 항복이라는 선택지는 완전히 사라진다.

항복을 해도 죽거나 강1간을 당하거나 약탈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면, 어느 바보가 항복을 하겠는가?



학살에 의한 공포 효과로 적의 저항 의지를 꺾으려면,

학살을 철저하게 하는 만큼 항복한 자의 생존과 안전도 철저하게 보장해야만 한다.

하지만 학살, 강1간, 약탈이라는 고삐가 풀려 광인 집단으로 변질된 군대가 이것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병사들을 명령에 따라 칼같이 움직이는 전쟁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