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이 쓰는 무기가 칼과 창이든, 총이든 역사에 등장해서 이름을 남겼던 많은 장군들이 승리하고 패배를 겪은 이야기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였던지 간에 우리에게 교훈을 주며 시대가 달라도 본질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러시아가 자신들의 전쟁 수행 능력,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을 잘못 평가해서 개죽을 쑤고 있는 시점에서 로마 공화정의 황혼 시기에 대권을 두고

경쟁한 두 장군 중에서 폼페이우스가 저지른 실수들이 끝내 그를 패배로 이끌었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요인이 되었는데 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전쟁 선포 시기의 문제


카이사르의 내전이 시작되기 직전인 기원전 64년 1월 당시 카이사르는 8년간의 갈리아 전쟁을 끝내고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들을 방문하여 곧 있을 집정관 선거에 대비하여 유세활동을 하면서 원로원 측에 집정관 선거 입후보를 자신이 로마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해달라는 협상을 진행중이었다.


카이사르는 당시 로마 정계에서 최후로 남은 민중파의 거두였고 제1차 삼두정치를 하면서 옵티마테스라 칭하는 원로원 기득권 층의 불만을 샀고(자기들끼리 돌려먹어야 하는데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직간접적인 원조로 자신의 피호민들을 집정관까지 진출시켰기 때문) 자신들과 성향이 비슷한 폼페이우스를 끌여들여서 카이사르를 제거하려고 했다.


지루하게 시간이 흘러가니 카이사르가 먼저 '폼페이우스의 군단을 해산하면 나도 내 군단을 해산하겠다.'고 제안했고, 원로원 측에서도 '이 정도면 들어줄만 하지 않냐?'는 의견이 대세였는데 폼페이우스가 여기에 어깃장을 놓아서 원로원 최종 권고를 발동시킨다.


문제는 이 원로원 최종 권고라는 게 바꿔 말하면 '너는 로마의 적이다'고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폼페이우스는 미리 자신의 정예 군단을 소집해 로마를 방어할 준비를 한 후에 이걸 선포해야 했는데(원로원 내부에서도 일단 군단병을 모집해서 로마의 방비를 갖춘 후에 최종 권고의 시기를 논합시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씹혔다).....지난 2달 간 끝없이 죽어나간 상식이 또 사망했는지 전쟁을 먼저 걸어놓고 준비를 나중에 한다는 어이가 가출하는 행동을 해 버린다.


이는 폼페이우스가 생전에 인간심리를 꿰뚫어보는 능력(즉, 정치력)이 꽝이었다는 것에 기인하는데 다음 문단에서 보기로 하자.


2. 이탈리아 인들의 심리 파악 부족


로마가 도시국가를 넘어 로마를 수도로 하는 이탈리아 전체의 국가로 탈바꿈한게 내전 발발 시기로부터 50여년 전이었는데, 이 때 로마를 제외한 이탈리아 도시들은 로마의 전쟁에 똑같이 동원되면서도 전쟁으로 얻은 열매는 하나도 먹지 못했던 상황이라 불만이 누적되던 상황이었는데 그라쿠스 형제 중 동생이 제안한 이탈리아 도시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안건이 파토가 나자 여기에 개빡친 이탈리아 도시들(동맹시)이 로마에서 탈퇴하여 자체 정부와 군대를 조직하고 내전을 벌이게 되는 데 이게 동맹시 전쟁이다.


전쟁 초반에는 로마군의 편제와 전술을 그대로 활용한 동맹시 군에게 로마가 개발렸고, 나중에서야 제압했고 로마 시민권이 부여되었으나 투표 가능한 선거구에 제한을 받아 반쪽짜리에 불과해서 이탈리아 지방도시민들의 울분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인데 로마 시민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민중파의 마지막 거두인 카이사르가 남하를 하니 이탈리아 도시민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유일한 인물을 지지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고, 이탈리아 본토와 맞먹는 갈리아를 통째로 흡수한 업적까지 있기에 더 그랬다. 이게 문제인 이유는 폼페이우스의 판단으로는 먼저 최종권고 내놓고 전쟁준비를 해도 충분하겠지...라는 건데 카이사르가 남하하자 이탈리아 도시들이 예상을 뒤엎고 빠르게 카이사르 측에 붙어버렸고 크나큰 실책이 되었다.


개같이 죽어버린 상식으로 판단하면 본토에 맞먹는 땅을 통째로 막 흡수한 업적을 이룬 장군과 그의 군대를 대놓고 적대시하는 건 그다지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지만 폼페이우스는 했다. 허나 그가 이탈리아 인들의 민심을 헤아릴 능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다.

3. 병사들의 질 차이


카이사르는 내전 직전까지 8년 동안 갈리아 전역에서 생사고비를 수도 없이 겪으며 자신의 군대를 지휘했고, 이 전쟁이 끝났을 때 휘하의 군단은 정예 중의 정예가 되어있었다. 반면 폼페이우스가 이탈리아를 포기하고 그리스로 건너갔을 때 모집한 병사들은 완편이라 수는 많았지만 그야말로 애송이들에 불과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본인이 겨울 캠프를 차려서 혹독히 훈련을 시켰지만 병사 개개인의 전투력 문제는 두 달간 꼴아박는 러시아를 보면 금방 알겠지만 현대에도 그렇게 빨리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데, 숙달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냉병기를 사용하는 고대의 전쟁에선 더 그런다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말단 병사들도 이모양인데 장교진은 어떻냐고? 총사령관인 폼페이우스부터 거의 20년 간 지휘봉을 놓았던 상태였고 휘하 장교들 중에서도 갈리아 전쟁에 참여한후 내전 발발 직전에 폼페이우스 측으로 전향한 기병대장 출신인 라비에누스를 제외하면 장교들도 다 풋사과에 불과했다. 자신이 이끄는 병사들을 평가하여 적보다 유리하면 맞서 싸우고, 불리하다면 방어로 돌리는 게 기본적인 장군의 판단인데 잘 하다가 난데없이 파르살루스 전투를 벌여서 다 까먹고 비참힌 최후를 맞게 된다. 이 전투 때의 폼페이우스 지휘도 좀 석연찮은데 다음 문단에서 보기로 한다.


4. 전술 지휘력의 부재


폼페이우스가 이룬 군사적인 업적은 카이사르와 맞먹는 수준으로 로마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흠잡을 데가 없다. 마리우스 파 잔당 소탕, 지중해 전역의 해적 소탕, 동방 원정 등등. 그런데 이 업적들을 잘 뜯어보면 일관적인 게 있는데 작은 승리를 스노우볼링해서 큰 그림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뛰어난 업적이지만 폼페이우스는 상황이 계속 변하는 전장에서,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 승리를 잡아내는 전술가적인 면은 굉장히 부족했다.


이 양반이 제대로 된 회전을 몇 번 치뤘는데 마리우스 파 잔당을 소탕할 때 히스파니아에서 서로 군단을 이끌고 제대로 붙은 전면전에서 두 번 모두 상대에게 개털렸고 그 중 한 번은 자기가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파르살루스 전투 당일의 지휘도 이게 정말 그 폼페이우스 맞냐? 싶을 정도였다.


파르살루스 전투 때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가 군대를 전개하는 걸 보고 바로 그의 의도(7천명에 달하는 많은 기병을 활용해 고전적인 모루와 망치 전술을 쓴다)를 읽어냈고 적 기병이 자기 진영의 우익을 공격하도록 강을 끼고 포진했고 미리 4열을 차출해서 적 기병을 가로막게 했는데 만약 이 별동대가 우왕좌왕했다면 카이사르는 졌겠지만 정예 중의 정예인 그들은 총사령관의 기대에 부응하는 무용을 선보여 풋사과들인 적 기병부대를 와해시켜버렸다.


폼페이우스의 7천 기병은 한 차례 돌격이 실패하자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력화되었고 우회 기동없이 차례대로 전선에서 빤스런해버린다. 폼페이우스는 이런 기병들을 재조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는데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전장의 상황에 맞춰서 지휘를 해야하는 야전지휘관으로서는 실격인 셈이다.


출처는 생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