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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말명초 중국의 문인인 나관중 (羅貫中, circa 1330 ~ 1400) 이 저술한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는 중국 삼국시대의 역사 속 여러 인물을 참신하게 재해석하고, 이를 감동적인 서사에 녹여냄으로써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중국 고전계 공전절후의 명작으로 남아있다.


현재 나관중이 최초로 저술한 진짜 삼국지연의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다만 청나라 가정제 연간에 발행된 것으로 여겨지는, 통칭 "가정본" <삼국지통속연의 (三國志通俗演義)> 가 가장 오래된 삼국지 소설로서 전해지고 있다. 사실 이마저도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삼국지연의와는 많이 다른데, 그 이유는 우리가 흔히 아는 삼국지의 서사와 묘사는 가정본보다 더 이후인 강희제 연간에, 문인 모종강(毛宗崗, 1632 ~ 1709) 이 정리해 편찬한 "모종강본" 삼국지연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황석영 삼국지> 등, 최대한 가정본의 서술을 반영하고자 한 현대의 삼국지 번역본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는 모종강본 삼국지의 서술을 문학적으로 더 우수한 것으로 치기 때문에, 오늘 이 포스팅에서 주로 다룰 삼국지의 한 장면 역시 모종강본의 묘사를 따르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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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의 대표적 명장면 중 하나인, 서서가 번성을 취할 계책을 유비에게 상주 (徐庶定計取樊城) 하는 장면. [이미지 출처]


삼국지연의를 즐겁게 읽은 독자라면, 아마 유비가 뿔뿔이 흩어졌던 의형제와 부하들을 다시 규합하여 조조를 피해 유표에게 의탁하러 간 뒤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기억할 것이다. 삼국지연의 중에서도 특히나 다양한 명장면이 많이 배출된 이 단락에서 최고의 명장면을 뽑으라 한다면, 아무래도 유비군의 첫 군사 (軍師, 군대의 참모) 이자 제갈량의 친우였던 서서 (徐庶) 의 등장과 활약을 다룬 부분이 꼽히지 않을까. 하염없이 조조의 비열하고 간교한 책략에 농락당하며, 정착할 곳 없이 동네 놀이터의 해진 축구공마냥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듯 유랑하던 유비와 그의 군세가, 비로소 조조군을 정면에서, 휘하 장수들의 용력만이 아닌 전술로서 격파하는 모습을 묘사한 이 부분은, 특히 유비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소설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대목이 된다.


당시 유비는 형주의 태수였던 유표로부터, 형주의 북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인 신야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아 그곳의 관리로 취임하였다. 이후 유표 사후의 후계자 계승 문제에서 그야말로 굴러들어온 돌 신세였던 유비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고자 한 형주의 실세 채모는 유비를 죽이고자 계책을 꾸며 유비를 잔치에 초대한다. 이 잔치에서 유비는 가까스로 채모의 암살 시도를 피해, 기적적으로 커다란 계곡을 건너 탈출하는데 성공했는데, 이후 신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수경선생 사마휘를 만나게 되었고, 그로부터 전설의 책략가인 "복룡 (또는 와룡 = 제갈량)" 과 "봉추 (= 방통)" 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후 신야로 돌아온 유비는 기이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지나치는 한 선비를 발견하게 된다. 유비는 즉시 그 사람이 복룡이나 봉추 둘 중 하나일 것이라 여기며 이름을 물었는데, 이 때 그 선비는 자신의 이름을 "단복 (單福, 또는 선복)" 이라 둘러대었지만 사실 이 사람이 바로 서서이다. 좌우간, 유비는 즉시 서서를 초청해 군사로 삼는다. 한편 형주를 노리던 조조는 조인에게 군을 맡겨 신야의 유비를 제거하고자 했는데, 유비군은 그 선봉으로 쳐들어온 여광, 여상의 군대를 서서의 계책과 휘하 장수들의 활약으로 격파하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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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중국 CCTV 에서 방영된 드라마 <삼국 (三國)> 95부작 중 제32화에 등장한, 조인의 "팔문금쇄진" 을 재현한 장면. 이미지 자체는 KBS에서 수입해 더빙 방영한 <삼국지> 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미지 출처]


지금까지 아마 삼국지를 읽어본 독자라면 다 알만한 이야기를 풀었던 까닭은 바로 이 장면을 위해서였다. 선봉이 격파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조인은 즉시 휘하의 남은 군대를 전부 끌고 신야로 쳐들어간다. 여기서 유비군과 대치한 조인은 스스로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병사들로 하여금 특이한 진을 치게 만든 뒤 유비에게 "내가 벌인 이 진영을 알겠느냐!" 라며 도발한다. 이에 서서는 높은 곳에 올라 진을 살펴보더니, 이 진을 "팔문금쇄진 (八門金鎖陳)" 이라 설명하며 이를 격파할 계책을 세세히 알려준다. 결국 조인의 진은 서서의 계책을 이행한 조운의 군사 5백에 완전히 무너졌고, 이어진 유비군의 총공격에서 조인은 참패하여 패퇴하고 만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이 장면은 독자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명장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다름아닌 뭔가 이름부터 거창한 "팔문금쇄진" 이 왜 저렇게 허무하게 간파당해 무너졌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 팔문금쇄진은 사실 이 전투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등장하는데, 바로 제갈량이 각각 육손과 사마의를 상대하며 펼친 "석병팔진" 과 "팔괘진" 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때는 - 심지어 육손과 사마의가 팔문금쇄진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 팔문금쇄진이 제 효력을 발휘하여 적을 제대로 골탕먹이는데 성공한다. 물론 쓰는 사람이 다르다는 이유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이 세 사례에서의 진형은 모두 병법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정확히 펼쳐진 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조인의 것만 효력을 볼 수 없었는지는 여전히 자못 의아한 부분이다.


연의에서 등장한 "팔문금쇄진" 이 실제로 어떤 진법이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다만, 실제 역사에 전해지는, 이와 제일 유사한 진법을 꼽으라면 바로 "팔진도 (八陣圖)" 가 있을 것이다. 실제 중국의 역사에서 종종 등장하는 진형인 이 팔진도는 일반적으로 제갈량이 개량/개발한 진법을 일컫는데,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다. 좌우간 "팔진 (八陣)" 이라는 개념 자체는 삼국시대보다 더 앞의 시대에서도 발견되는데, 그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전국시대의 병법가 손빈 (孫臏, circa 380 ~ circa 310 BC) 이 저술한 <손빈병법 (孫臏兵法)> 상권의 7편에 해당하는 "팔진 (八陣)" 편 에 등장하는 내용이 있다.


<손빈병법> 에 등장한 팔진은 사실 하나의 진형이 아니라, 여덟 가지 서로 다른 진형을 의미한다. 팔진편에서 손빈은 장수가 갖추어야 할 기초적인 덕목을 하나하나 짚으며, 전투에 임하는 장수로서 능히 취할 줄 알아야 하는 여덟 가지 진법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는데, 사실 이 설명마저도 하나하나 따져보면 구체적인 형태가 존재하는 "진법" 이라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어떻게 적을 상대해야하는가에 관한 여덟 가지 "방법론" 에 가깝다. 손빈은 부대를 나누는 법, 유리한 지형을 선정하는 법에 대해 논했으며, 적의 태세와 전투력에 따라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하는지, 또 어떤 병종, 병기를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남겼다. 이를 통해 고대 군대의 진법 운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장수의 전장 파악 능력, 즉 통찰력과 정보력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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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로의 <연기신편> 에 등장한 구군 팔진팔문의 장교 배치도. 이미지 출처 세부는 하단의 참고자료 단락 참조


구체적인 진형으로써의 "팔진도" 로 돌아가자면, 상술했듯 이 팔진도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정립된 것은 다름아닌 삼국시대 촉한의 승상으로 잘 알려진 제갈량 (諸葛亮, 181 ~ 234) 을 통해서였다. 이에 관한 설명을 위해 나는 조선의 문신이자 병법가였던 안명로 (1620 ~ ???) 가 저술한 병서인 <연기신편 (演機新編, 1664)> 을 주로 참고하였다. 물론 제갈량의 팔진도에 대한 연구와 그 성과는 <연기신편> 외에도 수도 없이 많고 다양한 서적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연기신편> 은 상중하 세 권 중 하나인 상권을 온전히 팔진도의 분석과 그 발전 과정 탐구에 할애하였을 정도로 연구가 세세하며, 그 시점상 후대에 나온 팔진도의 개량판이라 할 수 있는 육화진법, 분배팔진도 등을 모두 고려하여 내용을 저술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매력적인 책이 아닐 수 없었다.


좌우간, <연기신편> 상권에서는 팔진도의 시작을 중국 신화시대로 소개하고 있다. 보통 풍수지리와 같은 예언 등에 사용되는 하도 (河圖, 일종의 그림) 와 낙서 (洛書, 일종의 마방진) 에서 팔괘의 형태가 유래하였고, 황제가 치우를 쳐부순 뒤 실시한 정전제에서 영감을 받아 군세를 아홉으로 나누는 (九軍) 제도가 유래하였는데, 이 두 가지가 합쳐져 크게 아홉으로 나뉜 군세가 8개의 면, 또는 통로를 가진 진형을 형성한다 하여 "구군팔문 (九軍八門)" 의 진법이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자면, 진에는 팔법 (八法) 이 있는데, 이는 중앙의 지휘부가 되는 유기(游奇)를 제외한 나머지 군을 천지풍운 (天地風雲), 용호조사 (龍虎鳥蛇) 의 여덟 개로 나누고, 천지풍운에 해당하는 네 개를 "정 (正)" 으로, 용호조사에 해당하는 네 개를 "기 (奇)" 로 삼는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정은 수비부대, 기는 공격부대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이 여덟 부대는 중앙을 둘러싸는 식으로 배치되는데, 최종적으로 사각형 방진의 형태가 되는 진에서 4면에는 공격부대인 4기가, 그 외 모서리 부분에는 방어부대인 4정이 위치하게 된다. 이는 구군팔문진의 대원칙으로 실전에서는 언제든 변용될 수 있으나, 반드시 적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은 정이 되도록, 그리고 그 좌우에 기가 배치되도록 진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이어 안명로는 명나라 정덕제 시기의 병과급사중이었던 정림 (鄭林) 이 이에 대해 논한 바를 소개하며 이같은 팔진이 적을 맞이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해 소개하였다. 우선 중앙은 - 비록 공격군인 기로 분류되지만 - 적의 움직임에 결코 대응하거나 움직이지 아니하고, 오로지 기고 (騎鼓, 전쟁터에서 북을 울리는 일) 만을 주관하며, 적이 방어부대인 정을 찔러 들어오면, 그 양 옆의 기가 공격에 나서 적의 측면을 공격해 무너뜨리고 정을 구한다. 이를 통해 팔진의 기본적인 전술은 동시기 유럽에서 사용되고 발전했던 "망치와 모루 전술 (Hammer and Anvil Tactic)" 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등장한 팔진의 운용에서 특이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유병 (游兵)", 즉 "노는 병사" 에 관한 이야기이다. 앞서 대장이 위치한 중앙을 기의 일종인 유기로 삼으나, 이 중군은 다른 기와는 달리 결코 공격에 가세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같은 유 (游) 자를 공유한다는 사실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 이 유기에 해당하는 병사들이 다름아닌 유병이다. 본래 병법상 이 유병은 중앙을 지키는 것이 임무의 전부이나, 이론과 달리 실전에서는 본격적인 전투 돌입 전 적을 교란하거나, 전투 후 적의 패잔병을 추격하는 임무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또한, 배치 덕분에 좌, 우 일정한 방향이 없는 이 유병은 전투 중에도 언제든 대장의 명령에 따라 팔문의 어느 방위로든 출진하여 적의 배후를 타격할 수 있는, 일종의 기동타격대의 역할도 수행했다고 한다.


이런 유병의 존재는 자못 둔중할 수 있는 팔진을 유연하고 재빠르게 만들어 주었다. 안명로는 여기서 명대의 병법가이자, 팔진의 몇 가지 개량안을 제시했던 왕명학 (王鳴鶴, 16C ~ 17C) 이 논한 바를 소개하였다. 그는 팔진은 정에 해당하는 병사가 많아지면 진의 기동과 대응이 둔중해지고, 기에 해당하는 병사가 많아지면 반대로 방어력이 약해지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에, 형세가 변화함에 따라 사방을 서로 엇갈리게 해야하고, 유병과 기마병을 내보내 이를 보조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때, 유병 일부가 아닌 중앙 그 자체가 움직이게 되면 진이 어그러지기 때문에 중앙은 그 위치를 진중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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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로의 <연기신편> 에 등장한 제갈량의 "팔행방진도" 도면. 이미지 출처 세부는 하단의 참고자료 단락 참조


이후 제갈량의 시기에 들어 이 구군팔진은 "팔진도" 로서 완성된다. 역시 <연기신편> 에 따르면, 제갈량은 기존의 구군팔진을 개량한 팔군원진을 다시 한번 개량하여 진법을 완성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우리가 잘 아는 팔진도의 기초이자 원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팔군원진 (八軍圓陣)" 은 기본적으로 사각형이던 구군팔진을 원형으로 바꾼 것으로, 기존처럼 바깥에 정과 기를 번갈아 배치하지 않고 겉은 전부 정으로, 속은 전부 기로 삼아 수비와 공격을 조금 더 철저히 분리한 진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제갈량은 이를 다시 기존 구군팔진의 형태로 되돌려놓고, 이와 동시에 팔군원진에서 장점만을 취합하여 훨씬 더 견고하고 유연한 진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안명로에 따르면 기존의 구군팔진에선 유병이 안에 있었으나, 제갈량의 팔진도에서는 유병이 바깥에 위치한다고 되어있는데, 이는 아무래도 제갈량의 팔진도가 유병의 활용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는 진법이었으며, 따라서 더 유연하고 공격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여겨진다. 위에서 한 차례 언급되었던 정림은 "8문을 열어 3기를 사용한"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역사상 팔진을 제대로 운용하는 법을 알았던 사람은 다만 태공망, 손무, 제갈량, 이정 뿐이라고 평가하였는데, 여기서 "3기" 가 유기 휘하 유병과 공격받는 정 좌우의 두 기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팔진의 진가는 단순히 진 자체의 견고함이나 위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유병과 공격부대의 활용을 포함한 유연성과 파괴력에서 오는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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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상영된, 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 의 한 장면. [이미지 출처]


이제 다시 조인과 서서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어째서 조인은 병법에 따라 완벽히 배치한 팔문금쇄진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서서에게 그토록 허무하게 깨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2008년에 상영된 오우삼 (吳宇森, 1968 ~ )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 (赤壁)> 은 삼국지를 다룬 미디어 중 꽤 드물게도, 팔문금쇄진의 재현을 보여주어 화제가 되었다. 나 역시 이 영화에서 해당 장면을 보며 상당히 감탄했는데, 물론 거대한 진 자체를 저토록 웅장하게 구현해 내었다는 부분 그 자체로도 놀라웠지만, 사실 내가 진짜 감탄한 까닭은 진 그 자체가 아닌 그 세부적인 운용의 묘사에 있었다.


해당 장면에서, 유비-손권 동맹군은 조조군의 선봉 기병대를 저지하기 위해 팔문금쇄진 (영화에서는 팔괘진) 을 치고 조조군에 맞선다. 여기서 손부인이 이끄는 경무장 기병대가 조조군의 심기를 건드리며 그들을 유인하는데, 손부인을 추격한 조조군이 도달한 곳은 동맹군이 미리 일으켜둔 모래먼지가 잔뜩 휘날려 시야 확보가 어려운 황야였다. 모래먼지 속을 내달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조군이 마주한 것은 그 속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동맹군의 병사들이었다.


이후 속수무책으로 진 안에 들어온 조조군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으나, 이미 때는 늦어 그 안에서 관우, 장비, 조운같은 괴물같은 장수들과 잘 훈련된 동맹군 병사들에게 참패를 당하고 만다. 물론 영화적 과장이 많이 들어가있는데다, 액션영화적 특성도 가미되어 진 내부에서 싸움이 시작된 뒤로는 사실상 진삼국무쌍이나 다름없는, 통쾌하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장면만 지속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이라는 개념의 효과적인 운용을 위한 병법의 핵심을 담아낸 부분은 분명 놀라운 것이었다.


여기서 위에 나온 내용을 다시 불러와보자면, 손부인이 이끈 경무장한 기병대는 병법에서 설명하는 "유병" 의 존재와 같다고 말할 수 있으며, 진 안에서 방패를 들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며, 적이 진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병사들은 수비대인 "정", 그리고 그 안에 갇힌 적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관우, 장비 등은 "기" 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유병에 해당하는 손부인의 기병대를 이용해 적을 유인한 것은, "진을 유리한 위치에 미리 치고, 적을 그곳으로 끌어들여 싸운다" 라는 <손빈병법> 의 내용과 일치하며, 그렇게 적을 유인한 곳이 모래먼지로 가득한 황야였다는 부분에서, 동맹군이 의도한 그 "유리함" 이란 것이 "진의 정체를 적으로부터 숨길 수 있다는 점" 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진의 진가는 진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능동적이지 않은 진은 그저 가만히 앉아 뚜등겨 맞을 수 밖에 없는, 그야말로 무생물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조인은 병서에 나온 그림대로 멋지게 진을 펼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정작 그 진으로 적을 끌어들이고, 진법에 유리한 방식대로 싸우기 위한 밑작업, 즉 유병의 활용을 망각했으며, 또 아예 적에게 자신의 진을 맞춰보라며 그 형태를 대놓고 노출하는 커다란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병법을 아는 서서가 보기에는 그냥 나 잡아먹어달라는 소리로 들렸으리라.


무적의 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갈량의 팔진도도, 스페인의 테르시오도,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도, 분명한 강점이 있었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진다는 자연의 섭리와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단순히 진법을 "아는 것" 만으로는 훌륭한 지휘관으로 거듭날 수 없다. 진법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기 위한 전장 선택 및 상황 파악 능력이 필수적이며, 또 적이 진법의 약점을 파악하거나 공략할 수 없도록 끊임없이 방해하여 적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전술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시점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 결국 모든 병법의 핵심 목표인 것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법 단 하나가 아닌, 이를 보조할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전에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제아무리 무기가 좋다 해도, 군대가 크다 해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 그리고 보급 계획 등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면 결과적으로는 패배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군이 그토록 많은 전투기와 전차, 병력을 갖고도 우크라이나에서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까닭은, 조인이 서서에게 패배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사실상 동일한 맥락을 공유하고 있는 것 아닐까.


쉽게 말해, 곡틴쉨은 오늘도 벙커에서 자기 전에 반성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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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참고자료:

나관중 著, 김구용 譯 (2000), <완역 결정본 삼국지연의> 제4권, 솔출판사

손빈 著, 김진호 譯 (1994), <손빈병법>, 명문당

안명로 著, 전호수 기획, 유재성 譯 (2010), <연기신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