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 제목보니까 누가 푸틴을 저격했나?
따끈따끈하지 못해서 미안, 좀 된 글임 2009년
우드로 윌슨 재단 기관지에 올라온 기고문
출처: https://www.jstor.org/stable/20048362
중간에 이상한 숫자 껴있으면 본문이 아니라 금지어우회임
선요약:
'실패한 군사개입이 잘 만들어진 출구전략 덕분에 성공적으로 바뀌는 경우는 없다', 꿈깨셔
개입하기 전에 생각하고 했음? 설마 플랜 B가 없어서 이제 고민하는걸 출구전략이라고 부를거야?
체면을 살리기 위한 기나긴 평화협상특) 협상하는 정2권의 국내정치용임. 실제 분쟁에는 하나도 도움 안됨
출구전략을 쓰는 법: 꼴아박는다 싶으면 빨리 발빼라, 긴 출구전략은 국내정치용이지 나라에 도움이 안된다
'군사'개입을 했으면 군사적으로 승리할 방법을 고민하라, 정치적 이득을 굴리다 군사적으로 망하는 경우가 많다
본문:
"러시아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군요.
서구를 위해서 일하는 우리도 역시 그들을 돕고 싶습니다. 하지만 역시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를 협상하던 80년대에 UN에서 중재를 위해 온 디에고 코르도베즈 [Diego Cordovez]에게
한 서쪽에서 온 외교관이 전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이런 경우는 소련에게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군사개입을 시작하는 것은 언제나 끝내는 것보다 쉬웠다. 특히 일을 그르친 군사개입은 항상 그랬다.
베트남의 미국이 그랬듯며, 아프가니스탄의 소련이 그랬고, 레바논의 이스라엘이 전부 똑같았다.
나빠진 상황에서 자신이 시작한 개입에서 발을 빼는 행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느껴야만 했었다.
지금 이라크에서 [이 글은 2009년 글임 시리아 내전과 ISIS 이전임] 미국이 배우고 있듯이,
철수하려는 의지가 제아무리 강력하더라도 그걸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말보다 항상 어렵다.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는 베트남에서 미국이 끔찍한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이 당시 몇몇 외교 사상가들은 이 사태를 통해, 군사개입을 하기 전에 출구 계획이 필요해졌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논쟁은 냉전이 끝난 1990년대에 미국이 필수적이지 않은 분쟁에 연속해서 개입하면서 더 심화되었다.
당시 콜린 파월 합참의장은 파월 독트린이라고 불릴 내용을 정리하면서 미국이 해외에 개입을 하기 전에
충족되어야할 조건 중에 출구전략을 넣었다. 그러나 소말리아, 발칸, 아이티, 그리고 그 외의 장소에서
1990년의 미군이 개입한 곳에서 파월의 체크리스트는 지켜진 것이 없었다. 심지어 파월이 정한
근본적인 원칙인 모든 군사개입이 미국의 장기적인 안보이익에 깊게 연관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조차 무시당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비용의 개입들은 지켜보던 사람들이 사태가 어떻게 끝날지에 관심을 두게 만들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1년 전에, 조지 W. 부시는 당시 대통령이던 빌 클린턴이 1999년에 코소보에 개입하기로 했던
것을 비판했다. "승리는 출구전략을 의미합니다. 대통령이 우리에게 출구전략이 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출구전략에 대한 여태까지 논의들은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고 효용성을 검증해보는 것에 인색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그들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미국은 세계 곳곳에 개입했으나,
대규모의 군사개입에 있어서 유일한 행위자가 아니었다. 전후 시대의 또 다른 주요 행위자인 소련을 제외하고도,
이집트는 예멘에 개입했으며 [60년대 북예멘 내전을 말함, 2004년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후티 내전말고],
쿠바는 앙골라와 에티오피아에 개입을 했고, 인도는 스리랑카에 개입을 한 것이 대표적인 예시들이다.
대부분의 군사개입은 실패로 돌아갔다. (적어도 개입세력에게 수용가능한 결말이 이루어졌던 소수의 예시로는
50년과 53년 사이에 미국이 남한을 방어하는데 성공한 것과, 1956년 소련군의 헝가리 침공, 그리고 미국이
파나마의 부패 정치인 마누엘 노리에가의 정5권을 1989년에 무너트린 것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개시된 20개 약간 넘는 군사개입들을 통계내어보자면
오직 1/3의 경우에서만 효과적인 출구전략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경우는 모두 공통적으로 개입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성공한 경우였다.
다양한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들은 빠져나가는 방법에 있어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해준다.
교훈 1: 어떻게 떠나는가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2008년 미국 대통령선거 시기에, 전 국가안보보좌관 두 명이, 민주당을 위해 일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
공화4당을 위해 일한 브렌트 스코크로프트가 미국 대외전략에 대한 책을 같이 출판하면서 서로의 이라크에대한 인식을 비판했다.
브레진스키는 이라크인들이 자신들의 정부에 대한 책임을 기를 것이라며 빠른 철군을 주장했으며,
반면 스코크로프트는 신속한 철수는 이라크와 그 주변지역, 그리고 미국에게 파멸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 비판했다.
두 외교가 거물은 철수 과정이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에 공통적으로 동의했다. 표면적으로 저들의 인식은 이렇다,
급작스러운 귀환은 내전을 발생시키거나 적대적인 세력이 이용할 수 있는 힘의 공백을 만든다는 것이다. 반면에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철수를 한다면 개입국이 안정도를 크게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 평판을 지키면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현명한 출구전략은 어떤 형태를 가져야할까? 개입 이후의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체제가 만들어진다는 내용을 담아야할 것이다.
철군은 천천히, 단계적으로 진행될 것이며, 1993년에 소말리아 미군의 "블랙호크다운"처럼 난도질을 내놓고 도망가는 형태가 결코 아닐 것이다.
미국이 남한에서 했었고, 몇몇 국가가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했듯이 소수의 병력을 계속해서 주둔하여 평화를 유지한다는 조항을 넣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런 선택지들은 [개입 이후의 결과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어떻게 철군을 잘 결정하고 진행시켰는지보다, 개입 그 자체를 끝내버린 요소들이 이후 불안정과 개입국의 평판 피해에 항상 더 영향을 미쳤다.
"실패한 군사개입이 잘 만들어진 출구전략 덕분에 성공적으로 바뀌는 경우는 없다"
이 말은 출구전략이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선택지는 분명히 다른 선택보다 났다.
그러나 출구전략 그 자체보다는 언제나 그 이전에 일어난 군사개입의 성공여부가 더 중요하다.
미국이 남한에 개입을 했을 때 좋은 결과가 있었던 이유는 좋은 군사개입이었기 때문이었다.
승리라 부를 수 있는 무승부는 천재적인 출구전략을 떠올렸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 그리고 보스니아와 코소보에
더 많은 군대를 주둔시켰어도 군사개입 자체가 그 지역국가를 안정적으로 만들지 못했었다면 어떤 효과도 없었을 것이다.
소말리아에서 미군이 전면적으로 철수를 했든, 소련군이 아주 천천히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뺏든,
결과적으로 철군의 방법에서는 다양한 형태가 있음에도 나가는 방법에 따라서 개입의 성공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교훈 2: 패배를 승리로 보이게 하는 일은 정말 힘들다.
지도자들은 교훈 1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철군에 대한 논의에 시간을 쏟아붓고는 한다.
이럴 때 이들은 어그러진 군사작전이 성공적으로 변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겉모습은 그럴싸해져서
국가 (그리고 지도자 자신의) 명예, 평판, 지위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사항을 떠올리는 것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토마스 셸링 [Thomas Schelling]은 저서 "무기와 영향력 (1966)" (Arms and Influence)에서
"'체면'은 국가의 '가치', '지위'나 '명예'의 영역이 아니라 행동에 대한 평가이다.
어떤 종류의 '체면'을 위해서 전쟁을 해야하냐고 묻는다면, 이런 체면 때문에 전쟁을 해야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체면을 지켜내려는 노력은 주로 기나긴 철군에 대한 협상으로 나타난다.
양측은 자신들이 분쟁과정에서 무언가 중요하고 긍정적인 것을 달성했다고 주장할 기회를 얻는다.
철수의 조건을 정하기 위해 수년간 평화협상이 지속되는 것은 베트남, 앙골라,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이런 협정에서는 통치와 공권력을 담당할 철군 이후의 정부에 대한 논의와 새로운 정부를 위한 경제 및 다양한 방법의 지원책이 등장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 협정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며, 오래 가지도 않을 것이고, 서명당사자들도 말도 안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1973년의 파리 협정이 맺어진지 2년도 안되어서 북베트남의 전차들이 사이공에 들어왔다.
앙골라, 남아프리카 공화3국, 쿠바의 3자 회담이 1988년에 쿠바의 13년 간의 개입을 끝냈지만
철군에는 18개월이 더 소요되었고 앙골라 내전은 10년을 더 끌을 것이었다. 1988년의 제네바 협정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의 개입을 끝냈지만
역시 내용을 지키는 것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고,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혼란에 잠기었다가 1996년에 탈레반의 손에 넘어갔다.
사전에 협의한 내용에 어떤 가치도 없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외부에서 온 군대가 물러나면서 그 땅의 권력구조는 움직여버리고만다.
어떤 세력에게는 새로운 기회이며, 어떤 존재들은 갑자기 위태로워진다. 자신들의 시간이 올 것을 기다리던 적대적인 존재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그랬듯이 철군을 세력확장의 기회로 삼는다.
왜 지도자들은 그들의 협상이 체면을 위한 것이며 존중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시도 하는 것일까?
역사적으로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정치지도자들에게 협상시도는 단기적으로 국내정치에 도움이 되어준다.
결국 휴지가 되어버릴 조약이더라도, 협의된 명예로운 철군은 지도자가 재신임되거나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할 정도의 기회를 제공해줄지 모른다.
둘째, 만일 다행히도 그 조약이 시간을 좀 벌어준다면 지도자들은 철군 이후의 폭력사태에 대해서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닉슨 정부가 베트남에서 보여준 전략은 이 두 가지 점을 모두 염두해두고 있었다. 남베트남에서의 미군의 철수는 계획적으로
파국까지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의 표현을 빌리자면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도록 설계되었다.
그는 1972년 6월에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공산주의 정부가 집권하도록 둘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후 역사적인 과정에 따라서 그런 일이 어느날 생긴다고 한다면,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겠습니다."
협정은 리처드 닉슨을 재선시킬 정도로 일찍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1972년 경선에서 조지 맥거번의 발목을 잡는 것에는 성공했다.
적어도 닉슨은 "명예로운 평화"라는 주장을 할 수 있었고, 그 공허한 말을 해석하는 것을 후대의 몫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렇듯이 체면을 챙기는 기술은 엄청난 기만을 요구한다. 그러나 어떤 지도자가 국내 정치에서 자신의 시간을 벌 수 있을지라도
국제적인 단위에서 마법적으로 인식을 호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진실된 평가가 끝내 고개를 들 것이다.
최대한 철군을 질질 끄는 것으로, 이것이 철저하게 계획된 행위이며, 개입국에게 유리한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인식을 만들 순 있겠지만
결국 이것이 패전이 아니라 승리였다는 것을 장기적으로 속이려는 것은 성공하기 힘들다.
교훈 3: 아닌 것 같으면 나가라.
잘 진행되고 있지 않은 군사개입을 장기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전략의 수정이 승리로 이어질 때만이다.
물론 자신이 전략적으로 잘못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잘 알지 못하는 지도자는 멀리 가지 못한다.
모든 것은 당연히 불확실할 것이다. 어떤 전략도 부시정부의 2007년 "서지" [증원] 전략만큼이나 논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다시 말해, 모든 지도자는 자신이 어떤 정치적 이익을 얻을지까 아니라 개입이 성공적일 수 있는지를 고려하며 계획을 준비해야한다
승리전략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면, 철군은 늦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해야한다. 이 현실은 지도자들이 마주하기 힘들어한다.
그들은 승리 없는 철군에 대한 정치적인 비용을 두려워하지만, 얻는 것 없이 늘어나는 인적인 물적인 비용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닉슨 정8권이 자신의 출구를 찾기 시작한 1970년부터 약 20,000명의 미국인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끔찍한 결과를 피하기 위해 철군하는 국가가 할 수 있는 행위가 몇가지 있다. 지역의 다른 국가가 철군 이후 힘의 공백을 이용하지 않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과, 국제연합을 포함한 단체에게 위험에 처한 소수집단을 보호하고 평화를 유지시켜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실패한 군사개입의 뒷처리를 맡아서 고쳐낸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천구백구십사년에 UN군은 미군이 떠난 소말리아에 왔었고,
1995년에는 아이티를 인수 받았으나 악화되는 폭력사태와 정치적인 혼란을 통제하는 것에 실패했다. 지금 소말리아는 해적들의 천국이고,
아이티는 9,000명의 UN 개입에도 불과하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폭력이 계속되는 상태이다.
너무 늦게 떠나는 것보다는 너무 일찍 떠나는 것이 났다. 물론 일찍 떠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잘못된 군사개입이 만들어낸 피해를 고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이미 그곳에 존재하던 문제에 한겹을 더 바른 것이나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외세가 떠나겠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점령지의 사람들이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간다는 신화는 희망사항에 가까운 것이지 증명된 사실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기 때문에 외세가 개입할 수 있었다는 점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문제를 일으킨 요소들은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많은 피바다와 함께 스스로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교훈 4: 국내정치가 제공하는 출구전략을 조심하라
군사적이고 외교적인 이유로만 출구전략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정치의 과정에서도 등장하고는 한다.
이스라엘의 1982-85년 레바논에 대한 개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돌아보도록 하자.
1982년 사브라와 샤틸라의 학살에서 수 천명의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국민들이 이스라엘군이 방조하는 동안 팔랑헤주의 민병대에게 죽었다.
이때 철군을 주장한 것은 레바논에 대한 전략적인 목표가 존재하지 않으며 인적이고 도덕적인 비용을 낼 수 없다고 주장한 내부 정치였다.
국내정치에서의 압박은 상반된 두가지 방향으로 가해진다. 하나는 개입에서 사용하는 비용과 희생을 줄이라는 요구로,
눈에 보이는 여론조사와 항의시위의 형태를 가진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잘 보이지 않으며 따라서 잘 분석되지 않는다.
바로 지금 자신의 정3권이 실패자의 것이 되지 않으려는 압박이다. 어느 지도자든 그들은 "공을 멀리 차버리고"
그 이상의 고민을 후대의 몫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결론적으로 출구전략에 있어서 국내정치의 요구를 완전히 분리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좋은 지도자는 항상 자신의 정치를 연명시키는 것보다,
군사적인 승리의 가능성에 더 중점을 둬야한다. 국내정치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것은 지도자들이 빠른 결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개입에 대한 고집을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교훈 5: 모든 개입에 출구전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려는 해둬라.
대8중적으로 출구전략을 논할 때는 그 단어가 단지 개입에 대한 반대를 밝히는 또 다른 표현일 때도 있다.
1995년,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이 보스니아의 평화유지를 위해서 20,000의 병력을 파견한다고 했을 때,
공화4당 지도자 로버트 돌 상원의원은 "빌 클린턴에게 입구전략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었다.
모든 개입에 구체적인 출구전략의 청사진이 필요하다면 진행되는 개입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본주의적인 개입을 포함해서
모든 개입에 출구전략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출구전략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미리 준비해서 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마주한 전장의 상황에 전략적으로 맞춰지지 않은 개입 이전의 출구전략은 제대로된 형태를 가지고 있기 힘들다.
그러나 모험을 떠나기전에 지도자들은 철군에 대한 시나리오를 가지고는 있어야한다. 정치적으로 패배라는 선택지는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전략가라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교전을 멈춰야하는 신호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을 해두어야한다.
필요하다면 어떻게 병력을 빠르게 되돌릴지 짜두고 준비해야한다. 신속한 철군 과정에서 손실될 체면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개입이 시작되고 나서가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계산이 되어있어야한다.
이 다섯 가지 교훈은 여러가지 경우에 접목될 수 있겠지만, 특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글은 2009년 글임 오바마에게 하는 충고 등은 이미 시의성을 잃어버렸으니 중간 생략하겠음]
역사는 출구전략에 대해서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1973년 1월, 헨리 키신저는 자신을 보좌하는 존 네그로폰테와
닉슨의 핵심 조언가 중 한 명인 존 얼릭먼과 함께 파리 협정에 대해서 논하고 있었다. 얼릭먼이 먼저 물었다.
"이 협정이면 남베트남이 얼마나 살아있을 것 같습니까?" "운이 좋다면 내 생각에는 일년하고 반이겠군요." 키신저가 답했다.
네그로폰테는 이런 협상이 남베트남의 국익에게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다고 물어보았다. "자네, 우리가 평생 여기 있었으면 좋겠나?" 그의 답이었다.
군사개입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키신저의 질문이 매우 익숙하다. 잘못된 개입에서 발을 빼는 쉬운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기발한 출구전략도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주지 못한다. 가장 복잡한 협상조차도 상대방이 개입국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서
발을 빼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해주지 못한다. 여태까지의 교훈은 가장 먼저 철수하는 것이 더 늦은 판단보다는 났다는 것이다.
빠른 철수는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원래 국제정치라는 것은 나쁜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하나를 고르는 행위가 아니던가.
계획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가장 먼저 열어야하는 문은 출구이다. 적어도 다른 선택지보다는 났다.
요약하면 어설프게 일 벌려 놓고 똑똑하게 나갈방법은 없가는 거네 ㅋㅋ 확실히 아떤 출구전략에 푸틴을 회생시키진 못할것샅긴함
문제는 저건 군사개입을 옵션으로 취급할 수 있는 강대국 관점의 논리이지 국가생존을 위해 사생결단으로 투쟁하고 있는 약소국 관점의 논리는 아니지. - dc App
젤렌스키는 출구전략 필요없지, 필요한건 푸틴이지 ㅋㅋ
강대국 수뇌부가 출구전략 카드를 만지려고만 해도 파트너 포지션의 약소국 수뇌부 입장에서는 생사문제로 받아들여지면서 동맹국간의 균열을 개같이 터뜨린다는 부분에 대한 고려가 너무 부족한 사고거든 저게. - dc App
아하, 그런 점이라면 동의. 되게 글이 2000년대스럽다 싶더니 그게 내 느낌의 정체였구나
바이든은 아직 입구 열지도 않았는데 미국이랑 우크라쪽은 출구전략 필요없지
2021년 "아프간"도 떠오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