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년] 나는 전위대를 이끌고 살라망카에 진입했다.
그리고 도시가 보이는 위치에 도착했을 때,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두 정찰부대가 상호동의하에 멈춰서 구경하는 동안 한 어린 프랑스 장교와 일대일 결투를 벌이게 되었다.
프랑스 장교는 내가 탄 말의 우월함을 알고 훌륭한 책략과 기술을 발휘했다.
즉, 그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방어를 굳힌 채 내가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리고, 나는 그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서로 공격을 주고받았다.
그는 내 말의 머리를 몇 차례 베었고, 결국에는 왼손에 쥔 고삐와 함께 검지를 베었는데, 두꺼운 장갑 덕분에 손가락이 잘려 나가지는 않았지만 관절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가 마무리 공격을 하려는 순간, 나는 기습적으로 찌르기를 가했고, 그는 비틀거리며 황급히 도망쳤다.
그때는 그저 가벼운 부상을 입혔을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음날 백기를 들려 보낸 사절을 통해 그가 맞은 찌르기가 명치를 관통한 치명상이었음을 알았다.
나는 이 어린 장교의 신사적이고 품위 있는 태도에 감탄했기 때문에 이 소식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내 생각에 그는 군인으로서의 통과의례로 결투를 원한, 그리고 동료들에게 요구받은 소년에 불과했다.
처음 실전에 참가한 프랑스 장교들이 보통 그러듯이.
나는 이 결투 내내, 마치 우리가 검격이 아니라 악수를 교환하고 있는 것처럼 내게 정중하게 말을 걸면서 그가 보인 쾌활하고 매력적인 표정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왼손 검지에 입은 상처 때문에 몇 주 동안 바이올린을 켤 수 없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커다란 불행이었다.
밤마다 숙영지에서 연주를 하는 것이 취미였기 때문이다."
(Col. Henry Blackburne Hamilton, "Historical Record of the 14th Hussars", 1901.)
"이른 아침, 우리는 우세한 병력을 가진 적 기병대와 마주쳤고, 그들을 피해 도망치면서 작은 개울을 건넜다.
그리고 추격해온 적군이 도강을 마칠 때까지 준비를 갖추고 기다렸다가, 우측에서 중대들을 연쇄적으로 투입하면서 공격을 가했다.
먼저 돌격한 1중대와 2중대는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격퇴당했고, 이어서 내가 3중대를 이끌고 돌격했으나, 검에 찔려 오른쪽 허리부터 배꼽까지 6인치 정도 깊이로 관통당하는 부상을 입었다.
내가 먼저 팔을 높이 들어 올린 자세로 상대의 머리를 강하게 타격했지만, 황동 투구에 부딪힌 세이버가 두 동강이 나는 바람에 적의 반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것이다.
옆구리에서 검이 뽑혀 나갈 때 내가 비틀거리며 몸을 숙이자, 상대는 곧바로 칼끝을 조금 당겨 뺐다가 내 가슴 가운데를 찔렀다.
이후 나는 반쯤 기절한 채로, 내가 가장 신뢰하는 고참병의 도움을 받아서 전장을 벗어났다.
그 역시 부상을 입었지만, 자신은 배를 얕게 찔렸을 뿐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검(우리와 싸운 기병대는 곧은 검을 가진 퀴레시어였다)의 찌르기로 입은 치명상의 한 유형이었고, 그 불쌍한 친구는 나를 전장 밖으로 인도하다가 갑자기 비틀거리며 피를 토하더니 쓰러져 죽었다."
(Ibid.)
"[1813년 12월 13일] 우리 여단의 지휘관이자 내 친구인 허시 비비언 경은 내게 명예를 얻을 기회를 주고 싶어 했기 때문에, 특별히 선발된 기병들을 이끌고 선두에서 돌격해서 아스파렝 마을을 점령한 적들을 몰아낼 것을 내게 명령했다.
이에 따라 13일 이른 아침, 나는 부하들과 함께 마을 쪽으로 내려와서 지원부대인 반편된 중대와 합류했고, 마을 진입로의 좁은 다리 건너에 배치된 제13샤쇠르 연대와 제2후사르 연대의 기병들을 발견했다.
나는 즉시, 후방의 지원부대가 들을 수 있도록 나팔수에게 지시해 '돌격'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선두에서 부하들을 이끌고 진격했다.
하지만 다리가 너무 좁아서 나와 사우스웰 중위(내가 직접 선발한 훌륭한 장교)와 당번병 이렇게 세 사람만이 한 번에 건널 수 있었고, 우리가 다리를 건너자마자 권총과 카빈 일제 사격이 우리를 맞이했다.
사우스웰은 타고 있던 말이 총탄에 맞아 죽으면서 낙마했고, 나와 당번병 두 사람만이 적들과 교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당번병도 고삐를 잡은 왼손이 반쯤 잘려 나가는 부상을 입은 뒤 몸통을 깊게 찔려 쓰러지는 바람에 나 혼자 적들 사이에 남겨지게 되었다.
나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베기와 찌르기 공격들을 가능한 한 방어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살라망카 전투에서 찌르기에 몸통을 꿰뚫리는 부상을 입은 뒤로 마드리드에서 만든 물소 가죽 흉갑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약 11번의 찌르기 중 단 3개만이 내게 부상을 입힐 수 있었다.
하나는 목을 스쳤고, 다른 하나는 오른쪽 엉덩이 옆을 찔렀으며, 세 번째는 허벅지를 찔렀다.
그날 아침에 수령해서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잉글랜드발 편지 뭉치가 없었다면 아마도 마지막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칼끝이 종이들을 뚫고 허벅지를 1/4인치 정도 관통했는데, 내 짐작으로는 대퇴 동맥에 가까운 위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더 이상 저항할 수 없게 만든 일격은 머리에 맞은 세이버 타격이었다.
세이버 칼날이 이마를 내리찍고, 투구의 차양이 구부러지면서 코를 짓눌러 반쯤 부러트렸으며, 그 뒤로 정신이 혼미해서 몸을 온전히 가눌 수 없었다.
나는 항복하려 했지만, 사소한 문제 하나 때문에 불필요하게 더 긴 시간 동안 공격을 당해야 했다.
돌격을 명령하기 전에 비단으로 된 피탈방지끈으로 칼자루를 오른손에 단단히 감아둔 바람에, 머리를 강하게 맞고 나서도 검을 손에서 놓지 못한 것이 적들에게는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는 의사로 보였기 때문이다.
한 프랑스인이 공이를 당긴 권총을 겨누고 내 머리를 날려버리기 직전, 나는 가까스로 '항복합니다!(Je me rends!)' 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을 회복했다.
나는 말을 조종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안장에 묶인 채 후방으로 끌려갔고, 바로 이때쯤 허시 비비언 경과 그가 지휘하는 여단 전체가 나를 구하기 위해 진격해오기 시작했다.
이날 내 말은 머리를 깊이 베였지만 대단히 용감하게 싸웠다.
그녀는 말 그대로 뒷다리로 선 자세에서 앞다리로 적들을 걷어찼다.
나는 그녀를 돌려받기 위해 막대한 몸값을 제안했지만, 누가 봐도 순종 아라비아 혈통임을 모를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거부당하고 내 말은 프랑스 제국 종축장으로 보내졌다."
(Ibid.)
"격발음과 함께 몇 발의 총알 소리가 내 귀를 스쳐 지나갔다.
공터를 둘러싼 그다지 멀지 않은 숲에 정찰병들이 매복해 있었고, 그곳에서 젊은 영국군 경보병 장교가 조랑말을 속보로 몰고 나오면서 이렇게 외쳤다. '멈추십시오, 프랑스인. 전 당신과 일대일 결투를 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 공갈에 어울릴 필요가 없다고 느꼈고, 아군 전초기지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 영국인은 계속 나를 따라다니며 심한 욕설을 퍼부었지만 처음에는 무시했다.
하지만 그는 곧 이렇게 외쳤다. '군복을 보면 원수의 참모가 분명해. 어서 이리 오렴. 그렇지 않으면 마세나나 네의 똘마니가 나랑 눈도 못 마주치고 꽁무니를 뺐다고 런던 신문에 실을 거니까!'
나는 그것이 심각한 실수였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더 이상 이 무례한 도발을 참고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검을 뽑아 들고 그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그러나 대결을 시작하기 직전, 숲속에서 영국 후사르 두 명이 내 퇴로를 끊기 위해 달려 나왔다.
나는 함정에 빠졌고, 최대한 열심히 저항하는 것만이 한순간의 실수로 포로가 되는 불명예로부터 나 자신을 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영국 장교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칼날이 내 뺨에 길게 베인 상처를 냈지만, 그 대신 나는 그의 목에 칼끝을 박아넣었다.
그 불한당은 내 몸에 튈 정도로 많은 피를 뿜으며 안장에서 떨어졌다.
그러는 동안 후사르 두 명은 내 온몸에, 주로 머리를 노리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단 몇 초 사이에 내 샤코, 지갑, 펠리스 외투가 걸레짝이 되었지만, 몸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두 후사르 중 나이가 많은 쪽인, 머리가 희끗희끗한 고참병이 결국 칼끝을 내 오른쪽 옆구리에 1인치 넘게 찔러넣었다.
이에 나는 격렬한 백핸드 타격으로 보답했고, 내 칼날이 이빨을 부수고 들어가서 그의 입을 귀까지 찢어버렸다.
고참병은 황급히 도망쳤는데, 그가 젊은 쪽보다 더 강하고 용감했기 때문에 나한테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나와 단둘이 대치하게 된 젊은 후사르는 잠시 망설였다.
우리는 말의 머리가 서로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싸우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도망쳤다가는 등을 찔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 정찰병들이 나를 도우러 오는 것을 보고 결정을 내렸지만, 내 검을 피하지는 못했다.
내가 몇 걸음 뒤쫓으며 분노를 실은 칼날로 어깨를 찌르자, 그는 속도를 높여서 더 멀리 도망쳤다.
이 싸움은 내가 글로 묘사한 것보다 훨씬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곧 정찰병들이 나를 돕기 위해 급히 달려왔다.
실제로 그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옆구리의 상처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기절할 지경이었고, 그들이 나를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안장 위에 앉아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대로 복귀한 직후, 마세나가 내 손을 붙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잘했군. 참 잘했어! 영관급 장교가 전방에서 싸움을 하시다니.'
그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내가 이유를 말하자 그의 태도가 누그러졌다.
더 호전적인 성격인 네는 자신의 사병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외쳤다. '내가 마르보 너의 입장에 있었어도 틀림없이 같은 행동을 했을 거야!'
뺨에 입은 검상은 별로 심하지 않아서 한달 만에 다 나았다.
하지만 오른쪽 옆구리에 당한 찌르기는 심각했으며, 긴 후퇴 작전 동안 말을 타고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도 없었다."
(Arthur John Butler, "Memoirs of Baron de Marbot", 1892.)
"자신의 말이 총에 맞아 죽었기 때문에, 로버트는 두 발로 걸어다니면서 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프랑스 장교 3명이 일시에 그를 공격했지만, 이 용감한 대령은 노련한 용기병이자 훌륭한 검객이었다.
그는 프랑스 장교 한 명을 일격에 베어 넘긴 다음, 그 프랑스인의 검을 왼손에 들고 나머지 두 명을 공격했다.
두 번째 장교가 탄 말의 다리를 베어서 쓰러트리고 나자, 마지막 남은 한 명은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Lt. Col. Charles Cadell, "Narrative of the Campaigns of the Twenty-Eighth Regiment", 1835.)
"억스브리지 백작은 워털루 전투에서 자신의 부관인 호레이스 시모어의 전공을 목격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는데, 그가 주장하기를, 워털루에서의 마지막 격전에서, 호레이스는 자신이 평소 극찬하던 프랑스식 검술을 모방해 긴 검을 들고 돌격해서 6-7명의 퀴레시어를 차례대로 칼끝으로 찔러 낙마시켰다고 한다.
한 돌격에서, 백작은 호레이스가 밀집한 기병 진형의 정중앙으로 돌격해서, 자신이 탄 말의 무게와 힘, 손에 든 긴 찌르기용 검, 그리고 자신의 완력으로 대열을 뚫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
전장에 깔린 연기에 몸을 숨긴 채 그는 다시 말머리를 돌렸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다시 돌격해서 적진을 뚫고 돌아왔다고 한다."
(Rev. Julian Charles Young, "A Memoir", 1871.)
"나는 근위 기병 한 명이 퀴레시어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불리한 전투를 용감하게 수행했고, 1-2분만에 치명적인 목 찌르기로 한 명을 해치웠다.
남은 한 명과의 대결은 약 5분 동안 계속되었으며, 결국 근위 기병이 백핸드 베기로 상대의 목을 머리 위에 쓴 투구와 함께 날려 보냈다.
말이 안장 위에 똑바로 앉은 머리 없는 기수를 태운 채 달려 나가는 동안, 잘린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Recollections of Military Service", 1845.)
"샤쇠르 여단 하나가 우리에게 정면으로 돌격했다.
얼마 뒤 우리는 서로 뒤섞여 싸웠다.
나는 적들 중 한 명의 얼굴을 베어서 뒤로 물러나게 했지만, 곧바로 다른 적에게 다리를 깊게 찔렸기 때문에 더 이상 추격하지 못했다.
다시 또 다른 창기병이 달려들면서 가한 찌르기를 받아쳤으나, 그는 계속 강하게 몸을 부딪혀와서 내 말을 거의 쓰러뜨릴 뻔했다.
나는 고삐를 놓은 왼손으로 그의 허리띠를 붙잡은 채 오른손에 쥔 칼자루로 입술을 찍어서 이빨을 몇 개 부숴버렸고, 그가 뒤로 물러나자 마자 칼끝을 가슴에 꽂아 넣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누군가 내 머리를 샤코가 벗겨져 나갈 정도로 강하게 베었고, 나는 빠르게 말을 몰아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러자 두 명의 기병이 전속력으로 추격해 왔다.
나는 큰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했고, 죽음의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난폭하게 말의 배에 박차를 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기병 중 더 좋은 말을 가진 쪽이 가까이 따라붙어서 내 등에 검을 휘둘렀다.
그 공격을 쳐내자 다음에는 찌르기를 가했고, 그 순간 나는 말머리를 돌리면서 기습적으로 검을 휘둘러 그의 이마를 깊게 베었다.
그사이 다른 기병이 측면으로 붙어서 방어할 수 없는 위치에서 날 찌르려 했지만, 마침 한 아군 보병이 기적적으로 그를 쏴 죽였다.
내가 입은 상처들을 검사한 군의관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상처에 붕대를 감자마자 다시 안장에 올라탔다."
(Q.M. Sgt. Thomas Crawford, 12th Light Dragoons, "Life and Adventures of Thomas Crawford", 1849.)
"사랑스럽던 내 말은 프랑스 제국의 종축장으로 보내졌다" - dc App
Ntr
백핸드 베기가 뭐임?
https://gall.dcinside.com/m/ttwar/1201304
이
글 첫 번째 움짤처럼(오른손에 든 한손검 기준으로 방향이 반대지만) 검을 몸 안쪽으로 당겼다가 바깥쪽으로 휘두르면서 근거리에서 톱질하듯 당겨 써는 것
개추 -푸틴시진핑개새끼
나는 살라망카 전투에서 찌르기에 몸통을 꿰뚫리는 부상을 입은 뒤로 마드리드에서 만든 물소 가죽 흉갑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약 11번의 찌르기 중 단 3개만이 내게 부상을 입힐 수 있었다. 가죽 갑옷 갱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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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추
영관급 장교 개 잘싸우네ㄷㄷ 저 시절 장교는 아직 기사같달까 진짜 장교가 뭔지 보여주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