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1993년 압하지아 전쟁때 SA-2에 격추된 Su-27사례 짧게 글 하나 작성했었는데, 국내에 잘 정리된 글 있어서 퍼옴.
https://blog.naver.com/sundin13/222260603772 - 내용출처
낡은 무기가 몇세대 뒤의 최신 항공기를 격추하는 일이 불가능할까?
역사는 늘 스펙과 현실은 다르다고 보여준다. 다만 드물기 때문에 방심하고 방심하기에 몇 안되는 사례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1993년 그루지아(현재 조지아)에서는 민족분쟁이 한창이었다.
그루지아는 과거부터 그루지아 왕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다가 러시아 제국에 병합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여기도 여러 민족들이 공존하는 상태였다. 특히 압하지아는 오랜 기간 그들의 영역에서 고유한 민족과 문화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다만, 그루지아 왕국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루지아가 제정 러시아를 거쳐서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이 된 이후, 그루지아에는 압하지아와 남오세티아 라는 해당 민족의 자치지역이 설정 되었다. (오세트인의 조지아 내 자치영역인 남오세티아에 대해서는 논란이 좀 있지만, 압하지아는 오래 전부터 압하지아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며 그루지아 왕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던 역사적 정통성이 있는 영역이었다 )
구다우타 기지의 러시아군 Su-27.
그루지아가 소련연방의 해체로 독립하게 되자, 그루지아 내 압하지아의 분리독립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무장투쟁을 시작했고, 이는 사실 그루지아 공화국의 주류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그루지아 민족주의자들의 과격한 행동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충돌이 격화됐다.
러시아는 과거 자신들의 영역 내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 대외정책의 목적이었던 까닭에 당연히 압하지아 편을 들었다.
이로 인해 양측의 전쟁은 승부가 나지 않고 지리하게 이어졌다. 그루지아는 압하지아를 후원하는 러시아와 수차례 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회담을 했고, (사실 러시아가 구 연방구성 공화국들에게 했던 분리주의 후원 움직임은 분쟁해결이 아니라 분쟁을 더 부추겨서 러시아에 대항할 힘을 빼거나 서구쪽에 붙지 못하게 하는게 목적이었다. 그래서 회담은 소득이 있었던 적이 거의 없다)
"구다우타" 공군기지의 러시아군. 맨패즈 운용병 뒤로 Su-27이 보인다.
3번째 양측간 회담이 1993년 2월 5일에 열렸다.
회담은 당연히 소득이 없었고 압하지아와 그루지아 양측간의 분쟁은 더욱 격화됐다.
이 가운데 당시 러시아 대통령인 보리스 옐친은 압하지아에 러시아군 2개 공수사단과 2개 차량화 소총병 여단을 증파했다.
당시 그루지아 대통령은 구소련 시절 KGB 수장과 외무장관을 지낸 셰바르드나제였다.
양측은 소련 시절에 안면이 있었을 것이 당연하지만, 자국의 이익 앞에서 양보는 없었다.
압하지아의 주요 도시인 "수쿠미"에 대한 압하지아 분리주의자들의 포위 공격이 날로 심각해졌고, 압하지아와 그루지아 양측간의 인명 손실은 눈덩이 처럼 불어났다. 하지만 이미 러시아군 병력이 압하지아군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그루지아군도 러시아군 병력은 신경쓰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제공권의 장악이 중요해졌다.
그루지아 입장에서는 자신의 영공이기에 항공기 동원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루지아군은 구소련 시절 1선급 전투기를 보유한 지역은 아니었지만, SU-25 공격기 생산 공장이 있어 공격기 기종 특히 SU-25는 비교적 전력이 충실했다. 그루지아군의 SU-25는 압하지아 분리주의자와 이들을 돕는 러시아군에게 상당한 위협이었다.
이에 압하지아 분리주의자들이 차지한 지역에 주둔한 러시아 공군은 그루지아군 SU-25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분리주의자 장악지역에 설치된 러시아군의 레이더 기지에서는 하루 14회까지 출격하는 그루지아군 공격기들을 포착했다.
러시아는 이대로 두면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1993년 3월 19일 오후 16시 40분 분리주의자 장악지역의 "구다우타" 기지에서 SU-27 전투기를 발진시켰다.
압하지아 "구다우타"의 러시아군 기지..
이들은 그루지아군이 포위된 "수쿠미"를 향해 남동쪽에서부터 접근 중인 SU-25 공격기의 요격임무였다. 이들은 저공으로 비행 중이었다.
이날 출격한 러시아군 SU-27의 파일럿 중에는 크라스노다르 소재 비행학교 교관인 "쉬프코" 소령도 있었다.
그는 고도 2500피트로 유지하며 적기를 향해 접근했다. 그 순간 갑자기 그의 기체가 폭발했고 소령은 즉사했다. Sa-2 지대공 미사일에 맞은 것이다.
누가 쐈는 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루지아 영내에 설치된 방공시스템은 구식 SA-2(S-75)였고 그루지아군이 모두 인수했기 때문에 인근에서 날아와 명중시킬 수 있는 지대공 시스템은 그루지아군의 것일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군의 SU-27이 격추하려 했던 SU-25 2기는 아무런 위험없이 지상공격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귀환했다.
이 사건은 러시아군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SU-27은 지금에 비하면 초기 모델이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나름 당시로선 최신 기종이었고, 그루지아군의 SA-2는 당시 기준에서도구식장비였다. 현재 전세계에 상당수 퍼져있는 SA-10(S-300)의 초기형만 해도 이미 80년대에 등장했었다.
러시아군은 즉각 구겨진 체면 만회를 위해 병력을 증파했다.
러시아 해군은 2척의 군함을 포위된 그루지아 거점 "수쿠미" 인근에 파견해 그루지아군 거점에 포격을 실시했고, 러시아 공군의 공습 소티를 대폭 늘렸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한 서방측 언론의 보도를 보면,
그루지아측은 러시아군의 SU-27 전투기가 그루지아 정부군을 공격하려다 격추당했다고 발표했고, 러시아측은 이를 부인했다.
러시아군의 이 손실은 흑해연안 지역(수쿠미가 대표적) 압하지아의 통제권을 놓고 충돌 중인 그루지아 정부군과 압하지아 분리주의 무장세력간의 7달째 지속된 무력충돌 중 첫 러시아 군용기 피해이며 러시아는 압하지아 지역의 구소련 기지를 그대로 사용 중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흑해연안 그루지아(현 조지아)의 주요 항구도시가 수쿠미로 압하지아의 주도이기도 했다. 왼쪽 상단에 "구다우타"가 보이는데 분리주의자들의 임시 수도였고 러시아군 기지가 있었다.
언론기사는 당시 격추당한 SU-27이 압하지아 지역에서 그루지아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주도 "수쿠미" 인근에 추락했고 압하지아 내 러시아군 기지에서 이륙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사망한 러시아군 파일럿은 "바클라프 A. 쉬프코" 소령이라고 그루지아 국방부를 인용했다.
러시아 공군측은 쉬프코 소령과 다른 1명의 파일럿이 SU-27 2기로 압하지아 반군의 수도인 "구다우타" 인근으로 접근하는 그루지아 전폭기를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발표했다.
구다우타에는 러시아군 공수부대가 주둔하며 분리주의자들을 도왔다. 러시아공군은 자신들의 전투기에는 지상공격무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셰바르드자네 그루지아 대통령은 러시아 전투기 추락현장을 방문하며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당시 러시아는 기술적으로 중립을 주장하며 평화회담 중재자로 자임했지만, 위에서 언급처럼 분리주의자들을 돕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SU-27은 서방측 고성능 전투기를 상대하기 위해 소련과 러시아가 공을 들인 전투기였다.
다만 구소련과 러시아로 이어지는 저 시기가 재정난 때문에 러시아 모든 부문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 타격은 군부까지 미치고 있어 내부적으로 엉망이었다는 점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당시 러시아군이 선택과 집중으로 핵탄두 미사일이나 잠수함에 집중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부분은 힘겨운 시절을 보냈고, 예전에 상세하게 소개했던 것처럼 이 시절 러시아 방위산업들은 직원 월급 문제도 힘겨워 하며 미국에게 S-300V의 시스템 일부를 판매할 정도로 상황이 나빴다.
구다우타 기지의 Su-27.. 압하지아 분리주의세력의 임시수도였고, 러시아 공군은 89~93년까지 Su-27을 운영하는 비행단을 유지했다. 이곳의 러시아군은 일단 200.1년에 모두 철수했지만, 2008년 남오세티아 전쟁으로 압하지아는 확고히 러시아 영향권에 편입된 상태다
러시아제 Su-27은 여러 나라에 판매 되었고 러시아군에서도 사용하고 있지만 적대적 상황에서 손실된 사례는 상당히 드물다. 더구나 러시아군 제식 Su-27이 낡은 Sa-2에 피격되어 (당시 그루지아군이 쏜 Sa-2는 몇발 되지도 않았다 -1발이란 기록도 있다 - ) 조종사까지 잃은 건 체면이 크게 구겨진 사례였다.
러시아는 2008년 남오세티아 전쟁 때도 대형 폭격기가 격추되어 체면을 구겼다.
남오세티야 때 백파이어 손실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웃음거리임
현 러시아공군 실태도 그렇고 소련 망하고 나서 개선하겠다고 어찌저찌했는데 실전에서 보인 상황들을 보면 결국 복구 못한다고 봐야겟지.
부크에 tu-22m 따였다고 했나..?
부크에 격추된거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