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말에 방어력이 판금갑옷이 등장하면서, 갑옷이 상대적으로 덜 막는 충격력으로 승부 보는 둔기들이 대세가 됐다고 알려져 있는데, 말에서 내린 중기병들이 보행 전투 시 검과 방패를 들고 싸우던 사슬 갑옷 시대와는 달리 폴해머, 폴액스 등의 무기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틀린 말은 아님. 하지만 말 위에서 전투할 때 쓰는 무기 중에선, 둔기를 상대적으로 비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남.
당대 무술서나 회화들을 살펴봐도 랜스를 잃은 중기병들 대다수가 칼을 뽑아들고 상대 갑옷 틈새를 찌르고 드잡이질 하면서 백병전을 벌이는 모습들이 묘사 됨
그리고 당대 저술에서도 관련된 언급들이 있는데,
15세기 용병대장이었던 피에트로 몬테는 중갑을 걸치고 말에 탄 중기병들의 백병전 무기로 에스톡이 가장 많이 쓰인다고 꼽았고
16세기 스페인 기사는 랜스가 부러진 후 백병전에서 뽑아 들어 쓸 무기를 차례대로 에스톡, 한손 검, 워해머(장도리만한 작은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검을 꼽았음. 워해머가 작은 만큼 무기 우선순위에서 많이 밀려 후순위인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럼 왜 당대 중기병들은 1kg대의 보조무기로 둔기를 제치고 에스톡을 가장 선호했을까? 충격력이 핵심인 둔기는 갑옷 상대로 강력하고 중기병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 중기병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전장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일텐데 왜 둔기는 후순위로 밀렸을까?
우선 판금갑옷이 들어서기 전 갑옷들을 살펴 보자면, 고대에 쓰였던 판갑은 당대 기술력 부족으로 그다지 인체공학적이지 않은 구조라 착용자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점으로 인해, 유연하여 착용자의 움직임을 훨씬 덜 방해하는 사슬갑옷과 찰갑 등에게 밀려났음
문제는 그 유연함 덕분에 충격 흡수 능력이 크게 떨어져, 맨몸에 맞는 것 보다야 낫다지만 둔기에 굉장히 취약했음
때문에 판금갑옷이 대l중화 되지 않은 시대 및 문화권의 중기병들은 상대 중기병들을 상대하기 용이하게 큰북채만한 큼지막한 철퇴들을 애용했음
문제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판금갑옷이 등장하면서, 체급에 제한이 있는 한 손으로 휘두를 수 있는 철퇴의 효율이 상당히 감소함. 이는 나중에 후술할 문제점과 함께 둔기의 선호도를 낮추는데 일조함.
물론 문제가 생기면 답을 찾아내는 만큼, 워해머나 플랜지드 메이스 등 단순히 충격력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타점을 집중하는 형태 둔기들이 유럽에서 많이 쓰임.
아시아에서도 가시 박힌 철퇴들이 많이 쓰였지만 저런 둥글둥글한 구체형 철퇴도 제법 보이는데, 중세 말 서유럽에는 충격력 전달 원툴인 저런 형태의 금속 철퇴를 찾아보기가 어려움. 금속 둔기보다도 더 싼 블랙잭이나 목봉이 저랬지
그리고 둔기의 단점을 둘 꼽자면, 검에 비해 길이가 짧으며 무게 중심이 손잡이에서 멀기 때문에 다루는 데 유연성이 떨어지고 둔함. 백병전이라는 게 그냥 맞고 때리고만 단순히 반복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 나의 무기가 서로 얽히면서 추가타로 이어지는 과정이 중요한데, 둔기는 이 부분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음.
위에 커다란 철퇴를 들고 있는 중기병들을 다시 보면, 모두 방패를 지니고 있음. 전투에서 방패는 수동적으로 가만히 막는 것이 아니라 상대 무기가 휘둘러져 오는 경로를 적극적으로 막아 가속도를 덜 받게 하는 것부터, 상대를 방패로 후려치는 것까지 능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짧고 둔한 둔기를 충분히 보완하는 것이 가능함.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판금갑옷이 널리 퍼진 전장에선 최소한 중기병들은 대부분 방패를 안 썼던 것을 알 거임. 결국 갑옷의 발달로 이전 시대에 비해 효율성도 떨어진 마당에 단점을 보완해줄 좋은 단짝마저 사라지니 한 손 둔기가 설 자리가 줄어든 것임.
물론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음. 큰 체급의 철퇴가 도태되었지만, 가격 부담도 적고 튼튼해서 쉽게 부숴지지 않는 둔기는 훌륭한 예비용 무기가 되어줄 수 있음. 그리고 이러한 작은 둔기들도 위에서 언급했듯이 나름의 대책을 갖추어서 관절이나 머리같은 약점 부위를 타격한다면 여전히 판금 갑옷을 걸친 적들을 무력화 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함. 작은 무기니까 상대 무기를 제쳐놓고 그런 공격을 먹이는 게 쉽진 않겠지만
그리고 말에서 내린 기사들은 이전 시대에 흔히 쓰이던 검과 방패 대신, 길고 무거운 폴액스 폴해머로 풀플레이트를 갖춘 상대들을 두들기고 찌르며 제압하였음.
전에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메이스 류의 한손둔기류가 오래 사용하기 힘든 물건이라던데. 손잡이에 따로 핸드가드나 고리형태의 줄을 달아서 놓치지 않게끔 해놓아도 팔이 힘들던 손이 힘들던 결국 장시간 휘두르기엔 근력부담이 너무 커서 결국 보조무기로 전락한거라는 내용을 본듯. 게다가 타점을 살린 형태도 충분한 타격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크게 움직이는 어깨/팔동작이 따라야하는데. 말 위에서건 땅에서건 이렇게 동작이 큰 움직임이 강제되는 건 선호되지 않는다고도 한듯.
특수부대원들이 권총에 장총열에 대형 컴펜세이터, 배율조준경 안다는것처럼 대규모 중기병들이 동원된 전면전 상황에선 걍 보조무장인데 쓰기 불편한거 안쓴거 아님?
불편해서 안썼다기에는 후기형 판금갑옷이 보편화된 15세기 이전에 너무 잘만 쓰였고 17세기까지도 기병들에게 아주 잘 쓰였음. 검이나 둔기만 따로 들고다닌다기 보다는 둘 다 지니는 경우가 더 많았고. 본문 내용은 둔기가 안쓰였다가 아니라 줄었다는 뉘앙스에 가까운 것 같음
이 글이 맞는듯. 간혹 판금갑옷 때문에 둔기가 보편화됐다는 주장이 보이는데 인과관계를 반대로 생각하는 경우임. 철퇴 맞으면 골로 갈 걸 버티게 만들어주는 게 갑옷이고 종례에 사용되던 사슬, 찰갑, 두정보다 판금갑옷의 충격 흡수가 더 뛰어난데 그걸 무시하는 주장임
내가 잘못알았었구나. 아머피어싱공격이 체인메일에 적용되기에 체인메일이 피어싱에 취약한줄 알았는데 - dc App
사슬갑옷이 그런 찌르기 공격에 제법 취약한 것도 맞긴 함. 사실 판금 갑옷에 찌른다는 것도 틈새에 사슬갑옷 덧대놓은 부분이나 찌르는 거지 철판엔 씨알도 안 먹히고
조선의 도리깨 기병은 주변국들이 판금갑옷을 안써서 유지된건가? - dc App
기병들이 쓰던 편곤 체급쯤이면 판금갑옷 입고 맞아도 위험한 것 같긴 한데, 유럽 중기병들 돌격대형이 존나 촘촘해서 그런가 휘두를 공간 많이 필요한 무기를 잘 안 쓰던 느낌임
당장 후스 전쟁 때도 농민병들이 편곤으로 기사들 잘만 패기도 했고
조선 전기 기병은 창을 썼고 편곤은 왜란때 창검 훈련시킬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도입된 건데 호란때 쳐발린 이후로 주변국과의 전쟁 자체가 없어서 그냥 계속 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