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제주군 애월읍 하귀 2리에 있던일임.


위치

가문동 돈지동산 및 원벵듸


개요.

1948년 5월 25일 새벽, 신엄지서 경찰과 대청단원, 서청이 가문동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가가 호호 수색하며 주민 70~80 명을 돈지 동산에 집결시켰다.

경찰은 한 사람 씩 취조했다.

그리고 주민들을 짝 지워 뺨 때리기를 시키거나 싸움을 시키다 마을 건너 서편 '원벵듸' 에서 주민 세 명을 총살했다.

가문동 젊은이들은 5.10 선거 거부 이후 경찰이 하귀와 그 인근 마을에서 주민 몇몇을 총살하자 거의 마을을 떠났었다.

이런 과정에서 이날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에 대해 임찬부 (남, 2003년 74세) 씨는 다음과 같이 중언했다.


5.10 선거를 반대하기 위해서는 모두 산으로 가야된다고 해서 저는 당시 유신동으로 피신 했습니다.

선거가 끝나자 곧 마을이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주민들을 보이면 총살한다는 소문도 돌았죠 그러자 동네 청년을 사이에서는 돛단배라도 타서 추자도로 피하자는 의견이 돌았어요

숨었던 청년들 몇 명이 가문동으로 내려왔죠.

아마 이런 정보가 경찰에 들어간 모양이에요 5월 25일 동틀무렵 신엄지서에 주둔하고 있던 경찰과 서청들이 들이닥쳤어요 이들은 가가호호 수색하며

동네사람들을 돈지동산에 다 모이라고하고는 서로 싸우게 했어요.

이날 임석부, 현을호, 문수택 세 명을 '원벵듸'로 끌고 가서 총살했습니다. 가문동 첫희생자죠

임석부 씨는 원래 광령3리 '자종이' 사람인데, 나무 가지러 산에 갔다 잡혔고

문수택 씨는 좀 바보스런 분 이었어요 현을호 씨는 말을 길렀는데, 서청이 말을달라고해도 못 준다고하자 죽여 버린 거예요 

추자도 피신은.. 당시 김관수라고 우리 동네 출신자가 거기 살고있어서 임시로라도 피하자고 해서 배를 마련하고했던거죠.

그런데 거기에 갔던 사람들 조차 나중에 재검거되어 제주 경찰서로 돌아왔어요 15명 정도가 잡혀 왔는데 그 중에 회생 된 사람은 없어요..


이날 총살된 임석부도 좀 모자란 사람이었다.

임씨는 취조 과정에서 때려도 배시시 웃고, 아파도 배시시 웃자 죽여버렸다한다


하귀 가문동 돈지동산 주위는 팬션 건물들이 들어서있다. 돈지동산에서 남서쪽 맞은 편이 원벵듸이다.

이곳 역시 팬션이 속속 들어서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