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읍 와산리 1420번지 일대 에서 있던일.
장소
굴거리궤
개요
와산리는 1948년 11월 20일경 함덕주둔군인들에 의해 마을이 불태워지면서, 해변마을로 내려 가지 못한 주민들은 인근 곶자왈이나
궤 등에 피신 하는게 일상사였고, 굴거리궤도 그러한 곳이었다.
1948년 12월 22일엔 토벌대들이 와산리에대한 대대적인 토벌이 있었다 이날 양근철(24세), 양근숙 등 여러 사람이 마을 부근에서 밥을 해먹다
들이 닥친 토벌대에 붙잡히게 되었다.
또 이날 고보홍(여, 20세)은 굴거리궤 속에 숨었다가 잡혀 죽었고, 이 날의 토벌전은 매우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토벌대는 주민들이 숨어있는 굴이나 궤를 찾느라 혈안이었다.
양도봉 (남,2003년 76세)씨는 이 날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자 비밀을 지키며 죽어간 송정봉(당시 28세) 여인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증언
내가 숨었던 곳은 '굴거리라는 곳에 있던 궤였어요.
그 곳엔 나 말고도 송씨 라는 여인 그 분의 시아버지, 4살난 아들 등 5명이 함께 있었어요.
그 날 마을 안에서도 밥해 먹다가 6명이 토벌대에 잡혀 죽었죠 그런데 그 송씨 여인이 굴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자
시아버지인 줄 알고, '아버님입니까?' 라고 말해 버렸어요. 군인들에게들켰어.
그 여자는 어쩔수없이 밖으로 나갔지만, 아무리 위험해도 굴속에는 자기뿐이었다고 말을 했죠.
군인들이 다른굴을 가리키라고 했지만 '죽어도 혼자죽는다.' 라며 버틴거지.
결국 그 분만 불타버린 대흘국민학교 터로 끌려가서 죽었습니다.
결국 그 여인이 우릴 살린거요. 또 우리가 있던 굴 말고 다른 굴에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여인 아니었음 희생이 매우 컸을겝니다.
이렇듯 굴거리 일대에는 양도봉, 송정봉이 숨었던 궤 이외에도 많은 궤가 산재 해 있고 주민들도 많이 숨었다.
그 날 송정봉 여인의 목숨을 건 함구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 났지만.
이후 토벌대에 의해 발각되면 대흘국민학교로 끌려가 총살 당하곤했다.
현황
와산리 마을 남서쪽에 위치한 굴거리 머들에는 크고 작은 궤들이 산재 해있다 송정봉, 양도 봉 등이 토벌대를 피해 은신했던 굴은 입구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으나 안에는 방 하나 정도의 공간이있다.이 곳은 당시와 비슷한 머들이 있고 그 곳에 해가있다. 무남 밧은 여전히 경작을하고있다.
와산리에서 교래리가는 길에 와산 잔디 운동장이있다.
운동장을 끼고 오른쪽 으로 가면 조이빌 리조트가 나오고 여기서 300m쯤 올라가면 오른쪽에 무남밧이라 불리우는 밭이있다.
그 밭 중간에 큰 규모의 머들(돌무더기의 제주어)이 있는데 그 곳에 궤가있다
내용출처 : 제주 4.3유적 북제주군
이거도 시리즈로 묶어주면 아주아주 감사드립니다 - dc App
아아아 알겠읍니다 충성 충성
개추드렸어용 - dc App
올렸읍니다
너모 무섭다
섹파 구하는건 여기가 제일 쉽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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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도 개념글 가는데 5.18 얘기도 해도됨?
에라이
병신소리말고 글쓴이 처럼 쓰면됨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