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대정고에서 있던일임


개요

모슬포에서는 중산간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지던 11월에 민보단이 조직됐다. 또한 주민들 표현대로라면 건강하고

빨치산에 협력하지않은, 소위 "사상이 건전한 사람들" 이 중심이 되어 특공대가 조직됐다.


특공대원은 하모리에서만 36명 정도 되었고, 이 대원들은 12명씩 3개 소대로 나뉘어졌다.

상모리에서도 특공대가 조직되었으나, 하모리 특공대가 대정면을 주도했다.


당시 대정면 특공대장은 가파도 출신인 이원하였고, 하모리 책임자는 송치수였다.

평상시 특공대는 민보단과 협조하여 마을 순찰을 도는 게 주 업무였으나 산에서 빨치산들의 습격이 들어오면


돌격조로 일선에 나서서 대항하기도 했다. 또한 특공대는 토벌대가 토벌을 나갈때에 총알받이로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기도 했다.

이럴때는 지서나 군부대에서 몇명 동원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특공대는 민보단과 사무실을 같이썼다. 특공대원 학살사건은 1949년 1월 10일 발생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고춘언 씨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증언

특공대원들은 용감했습니다. 이원하가 대정읍 특공대장이었는데... 


원하가 하루는 경찰이나 군대에서 총알받이로 나오라고 하면 죽창으로 대항이 안되니, 군부대에 가서


"우리 특공대원에게 무장을 주면 더 용감하게 잘싸우겠다." 라고 했습니다. 군 부대측에서는


"그러냐" 라고 하면서 "그렇다면 씩씩하고 체격이 좋은 사람들로 하여금, 명단을 보고하라." 였습니다.


그래서 아주 깨끗한 사람으로(사상에 문제없는) 11명 명단을 올려 보냈죠. 


그러자 부대에서는 이 사람들을 다 데려오라고 하더니 가자마자 톡 가두면서 "이새끼들 다 빨갱이새끼들 이다" 이라고 하면서


"총을 준다면 우리들에게 대항할것이다." 라고 하면서 무조건 몇차례 두들겨 팼습니다.


그러다 이원하는 1월6일 먼저 죽고, 남은 열 사람은 12일에 다 죽었어요. 아무 이유없이.


이원하가 명단 제출한 것이 죽기 일주일 전쯤 인거 같아요. 


가장 씩씩하고 용감한 사람들로 제출하니 부대로 오라고해서 이새끼들 전부 빨갱이 새끼들이라고 한거에요. 


그때 죽은곳이 저 대정고등학교 앞에 있는 탄약고 옆이에요. 부대에서 200~300M쯤 됩니다.


당시 길 서녘쪽이었는데,  그길이 지금 고등학교로 편입되었습니다. 이원하씨도 거기서 죽었어요.


날짜만 다를뿐입니다. 그 사람들 보고 자기네 죽을 구덩이를 파라고했어요. 그사람들은 뭣도 모르고 판것이죠. 


시신은 거의 5월이 되어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가보니 갯벌이 되었어요.


손이 민작민작(미끌미끌) 했습니다. 봄이되어 겨우 이장을 한것입니다.


당시 희생자는 이원하,이동춘,박형윤,김석환,안진택,양우상,김택선,김희종,강위창,이용원,김창숙으로


김창숙(19),이원하(30)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20대 초중반이었다.



현황

특공대원 희생터는 현재 대정고 입구 "대정고등학교" 라는 표석이 세워진곳이다.


당시는 밭이었으나, 지금은 대정고로 편입이 되어 흔적은 남아있지않다.



내용출처 : 4.3사건 유적 서귀포시, 남제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