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힌 외할머니의 이야기인데 사실 다른 것보다 이런 이야기는
어디에라도 좀 기록해 놓고 싶어서 써놓을려고.

모든 이야기는 내가 직접 듣지는 못하고 엄마한테서 건너들었음
기억에 의존해서 전해진 이야기다 보니 오류가 있을 수도?

일단 외할머니는 강원도 양구가 고향이심.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동네에서 부모님이 정해주신 남자랑 결혼을 하셨음
(근데 일제강점기때 주변마을에서 일본군이 결혼안한 여자를 끌고 간다는 소문땜에 할머니가 어린나이에 증조할머니,할아버지가 급하게 부랴부랴 준비해서 결혼했다고 하더라.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가 너무 어리니까 성인될때까지 기다려주셨다고 하셨음)

여튼 외할아버지는 전쟁 당시 춘천에서 교도관에서 일하시고 계셨었는데 덕분에 부산으로 갈 기차는 자리가 마련 되어있었음.
정확힌 외할아버지만의 자리였지만 자세한건 나중에.

문제는 외할머니가 춘천역까지 가려면 소양강을 건너야 했음
그래서 북한군에게 들키면 큰일나니까 밤에 아주버님 가족(아들 1명포함)이랑 짐들(뇌물) 챙겨서 소달구지에 넣어 끌고 소양강을 건넜다고 하더라고
중간에 애가 울면 들키니까 울려고 하면 강물에 담궜다 뺐다 하면서, 들키면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렇게 춘천역에 어찌저찌 도착을 했음. 여기서 외할아버지는
교도관이었기에 기차안에 앉아갈 수 있었음. 하지만 외할머니는
아니었음. 그래서 생각해낸게 여교도관으로 속여서 들어가는 거임. 당시 기차안에 들어갈때 미군이 확인을 했다하는데 뭐 말이 통하겠어 어쩌겠어 그래서 영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이 교도관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있었다고 하더라. 외할아버지가 여교도관 옷을 구해서 입고 검사관(?) 앞에서 검사를 받는데 할머니가
나중에 회상하시길 지금 생각해보면 교도관 아닌거 아는데
눈 감아준것 같다고 하셨데.

근데 이건 그나마 자식이 없어서 가능한 방법이었음 아주버님네 가족은 애가 있어서 위장도 못하고 기차 지붕위에 겨우 앉아 가셨다고 하심. 그렇게 겨우 아래로 피난을 왔는데 남쪽에서는
북한군이 있는(강원도)쪽에서 내려왔으니 빨갱이라면서
아주버님을 고문하셨데 뭐 영화보면 코에 고춧가루 넣고 물에 넣고 하잖아 그거 그대로 당하셨다고 하시더라고. 다행히 살아서 돌아오시긴 하셨음.

중간중간 뇌물도 주면서 쭉 부산까지 내려와서 외할머니는 부산에서 안먹고 버리는 시래기(근데 이건 사실 잘 모르겠음, 1950년대에 부산이 실제로 시래기를 안먹었는지 먹었는지;;;)를 주워서
같이 강원도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게 시래기국 끓여서 팔아 겨우 먹고 살아남았다고 하셨음.

그렇게 버티다 전쟁이 끝나고 강원도로 올라가셨음
그런데 외할머니는 시가댁 따라 온거고 친가는 강원도에 그대로
남아있으셨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올라가자마자 친가 먼저 잘 있는지 확인을 하는데 엄마만 있고 남동생 두 명이 없어.

알고보니 전쟁이 나면 북한군이 오는데 딸이 남쪽에 남편따라간거 알면 큰일나잖아;; 그래서 전쟁동안 산속에 숨어 계셨던거임
근데 강원도가 얼마나 추워 결국 폐병(추정)으로 남동생 두 명 다 그때 돌아가셨던거임. (근데 아마 마을에 남아있어도 돌아가셨을것 같은게 양구가 워낙 전선이 왔다갔다 했던곳이라 북한이 내려올때는 남쪽 사람이라고 죽이고, 남쪽에서 올라올땐 빨갱이라면서 쏴죽였다고 하더라. 산 속에 숨어있는게 맞는거긴 했던거지..)

그 후 외할머니가 증조할머니를 쭉 모시고 사셨는데 외할머니 표현으로는 증조할머니의 정신이 완전 돌아버리셔서 고생을 많이 하셨음
(그럴만도 한게 증조할머니께서 살면서 13명을 낳으셨는데 그 중 9명은 어려서 죽고 3명만 살았는데 두 명 마저 전쟁에 눈앞에서 잃고 총 13명에서 딱 1명이 살았으니 원...)

내가 들은 피난 이야기는 대강 여기까지.
오류가 있거나 궁금한게 있어도 알려줄수는 없는데 양해해주셈 나도 궁금한게 있어서 외할머니께 직접 묻고 싶은게 있지만 슬프게도 5년전에 돌아가셔서 이젠 묻고 싶어도 물어볼 수도, 답을 들을 수도 없어

요즘 우크라이나 전쟁땜에 험악한 소식들도 많이 들리는데
외할머니 이야기도 생각나고 전쟁이 진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이유를 알리고픈 마음에 간단히 써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