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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수동 비학동산 폭낭 및 그 앞밭
(폭낭은 표준어로 팽나무 라고 합니다.)
북제주군 애월읍 하귀 2리 에서 있던일임
개요
개수동 비학동산 앞 밭에서는 1948년 12월 10일 경찰이 개수동 주민과 소개민들을 모아놓고 구중 36명을 학살했다.
개수동 비학동산 학살 경위는 다음과 같다.
경찰은 1948년 12월 초 개수동 청년들에게 자수하라는 통보를 보냈다.
무슨 근거가 있엇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을에 있던 청년 10명의 이름을 지목해 자수하면 무사하지만 그렇지않다면 마을 전체가 크게 당할것이라는 통보였다.
이에 마을 청년들과 유지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이 나지않았다.
주민들은 경찰을 믿을수없었기 때문이다.
며칠전 장작사건으로 외도지서에 갔던 청년들도 실려가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지목된 청년중 한명인 김씨 (20대 중반)이
"나 가보쿠다. 가봥 내가 무사하민 경찰 약속이 증명되는거난 그때 자수합서."
[나 가보겠습니다. 가봐서 내가 무사하면 경찰약속이 증명이 되는것이니 그때 자수하세요.]
라고 하면서 홀로 외도지서로 갔다. 그후의 상황은 고씨(2003년 기준 69세)의 증언으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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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김씨 아내가 말했습니다.
[남편이 지서로 갔더니 경찰이 다른 사람들도 설득해서 데리고 와라. 그러지 못하면 너라도 와라.]
라고 말이죠. 김씨는 결국 아무도 못데려갔고 혼자만 지서로 갔습니다.
그런 김씨를 경찰은 12월 17일 총살하고 개수동에대한 소탕령을 내렸습니다.
그날 (12월 10일) 아침 개수동 사람들을 죽일것이니 미리 대처라하는 연락을 받긴 받았어요.
그러나 우물쭈물 하는 사이 군인과 경찰이 합동으로 아침 9시경 마을을 포위하고 들어왔죠.
토벌대는 이미 비학동산에 사람들을 다 모아 놓고 우선 도피자 가족들 전부 나오라고 했습니다. 이때 김씨는 이미 죽었는데
73세된 그 아버지는 아들이 없으니까 나갔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토벌대에서도 전후 사정을 알아보고 해야하는데
무작정 쏴버렸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그 분은 아들이 먼저 죽었다고 말을 해줬다면 살았을건데....
이날 도피자 가족 집들은 전부다 불태워졌고
소개민을 포함 36명 (개수동 출신 31명)이 총살당했어요. 토벌대는 10경부터 선별한 주민들을 앞밭에 몰아넣고 총살해버린다음
1시경에는 집들을 불태웠습니다. 그때 사람들 죽인곳이 지금 동민회관 바로 앞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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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주민들을 학살하기 전 토벌대는 또 하나의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 토벌대는 주민들이 비학동산에 모이자마자
먼저 한 여인을 끌어내서 옷을 전부 벗겼다. 배가 부른 임산부였다. 고모씨의 부인이었는데 남편이 없다는 것이 죄였다.
토벌대는 여인의 겨드랑이에 밧줄을 묶어 팽나무에 매달아놓고 경찰 3명이 소총에 대검을 착검해서 마구 찔렀다.
차마 눈으로는 볼수없는 광경이었다. 주민들은
"차라리 정할거민 총으로 쏴붑서 저게 뭐꽈?" 라고 눈을 돌리자
[차라리 저럴거면 총으로 쏴버리세요 저게 뭡니까?]
경찰들은 "잘구경해라!" 라고 소리쳤다.
현황
개수동 비학동산에 있던 팽나무는 그 후 마을 주민들이 베어버렸다. 임산부 학살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순례 행렬이
잇따르자, 주민들이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떠올리기 싫어 베어버렸던것이다. 현재 그 자리에는 마을 회관이 들어섰다.
한편 비학동산 앞밭은 당시 그대로 남아 농경지로 이용하고있다.
본문출처 : 제주 4.3유적 제주시 북제주군
어우 동네사람들 경찰이라면 이를 갈겠네
4.3끝나고 전쟁 참전용사들이 경찰 패고다녔다는 이야기도 있음.
어릴때 제주도 어르신들이 옛날이야기하다가 경찰차 지나가니 입 싹다물고 에헴에헴하다 말 주제 돌리는걸 본적 있는데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