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문화 : 도스토옙스키의 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러시아 문화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광기를? 도스토옙스키의 이야기 속에서 잔학행위는 매우 특별한 사고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푸틴의 정치는 문학이 아니다. 그저 폭력의 흔적을 찾는 것뿐이다.


기사번역(독일어, WELT)


- 이 글은 독일의 사회학자 볼프 레페니스(Wolf Lepenies)가 WELTPLUS에 기고한 칼럼임.


- 이 글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미리 설명을 하겠음.


- 나(볼프 레페니스) : 독일 사회학자.


- 콘스탄틴 아자돕스키 : 러시아계 독문학자.


- 옥사나 자부쉬코 : 우크라이나인. 독일어 작가.


- 밀란 쿤데라 : 체코인. 과거 망명작가. 프라하의 봄 이후 탄압받다가 망명. 체코 민주화 이후에도 국적 회복을 거부하다가, 2019년 체코 정부의 설득으로 체코 국적을 회복함. 현재 생존 중(93세)


- 요셉 브로드스키 : 러시아계 미국인. 소련 시절 망명작가. 1972년 망명하였다가 1996년 미국 뉴욕에서 사망.


- 이 칼럼은 볼프 레페니스가 위에 열거된 러시아인 아자돕스키, 우크라이나인 자부쉬코의 의견을 인용하고, 과거 있었던 밀란 쿤데라와 요셉 브로드스키의 "도스토옙스키 논쟁"을 통해 현재 푸틴이 러시아 문학을 어떻게 선전에 써먹고 있는지, 정말 도스토옙스키로 대표되는 러시아 문학과 문화가 전쟁에 영향이 없는지, 또한 이 또한 러시아 문학가들의 원죄인지를 분석하는 칼럼임.


- 꽤 흥미로운 사설이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론 군붕이 고정닉에서 볼 수 있듯이 러시아 문학에 흥미가 많고 최근에 읽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흥미로 가져옴.



3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계 독문학자 콘스탄틴 아자돕스키(Konstantin Asadowski)는 독일어 운문 아카데미에 편지를 썼다. 러시아 시민으로서, 아자돕스키는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책임을 공유한다. 80세의 아자돕스키는 위대한 독일문학 전문가로, 1990년 독일 문화를 해외에 알린 공로로 프리드리히 군돌프(Friedrich Gundolf)상을 수상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와 시인 마리나 츠베테바(Marina Tswetaeva)간 관계를 다룬 그의 연구는 탁월하다. 아자돕스키의 새 책 <러시아-독일의 상호의존성>이 막 출판되었다.


나(볼프 레페니스)는 Wissenschaftskolleg zu Berlin(베를린 소재 학회) 회원으로서 1990년 아자돕스키를 알게 되었고, 곧 존경하게 되었다. 지난 3월, 그의 “자책”(학회에 썼다는 위 편지를 가리킴)을 읽었을 때 나는 아자돕스키에게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대해 그(아자돕스키)가 책임이 없다고 반박해야 한다고 편지를 썼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푸틴 정권을 러시아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콘스탄틴 아자돕스키.


아자돕스키는 하루 후 답장을 보냈다. "현재 체제를 국가 전체와 동일시할 수 있는지 여부는 어려운 질문이다. 100퍼센트 동일시할 수 있는 건 물론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인구는 열광하고, 박수를 보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광기는 한 사람이 아니라 수백만 명의 광기이다. 내 스스로가 러시아라는 거대한 나라의 작은 점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 언어, 문화 및 역사에 속한다. 그리고 바로 이 소속감 때문에 오늘날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우려되는 사항이다...(중략. 필자가 생략한 듯.) 나는 공동 책임을 생각하고 또 믿는다. 1945년 독일인들이 경험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게 오늘 내가 겪는 기분이다."


친구와 동료간의 모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오랫동안 주요 논쟁거리로 군림해온 코로나19를 대체했다. 특히 '미필자'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명되는 군사전략적 고려사항 외에도, 국제법을 위반하는 침략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물론 푸틴이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서방, 특히 NATO의 공동 책임에 대한 논의가 줄어들지 않고, 푸틴의 병사들이 저지른 파렴치한 만행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인의 공모에 대한 질문도 있다. 궁극적으로 러시아측이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여기에 아자돕스키와 같은 진술의 중요성이 있다.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러시아를 탈출한 의사이자 작가인 막심 오시포프(Maxim Osipov)는 아사돕스키의 말에 명시적으로 동의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물론 러시아인들은 세뇌되어 있다. 그러나 푸틴이 사라지면 상황이 바뀐다. 사람들은 마음을 빨리 바꾼다.”



문화는 그 자신을 변호해야 할 필요가 없다. 아닌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서방에서 일하는 러시아 예술가들은 입장을 표명하라는 압력을 받았고, 어떤 경우에는 아예 해고되었다. 뮌헨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경우에는 이미 늦었다. 크림반도 병합 이후에도 푸틴의 문화선전가로 활동했기 때문에, 독일이 계속 급여를 줘야 할 이유가 없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아직 언급하지 않은 모든 러시아 지휘자, 모든 작가, 모든 감독에게 입장 표명을 요구해야 하는지 여부는 다른 얘기다. 합의가 있다. 러시아 문화는 그 자체를 변호해야 할 필요가 없다. 푸틴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든 우리는 계속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베프의 음악을 듣고,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고 싶어한다. 그렇지 않은가?


Times Literary Supplement(타임즈 산하 문학 주간지)와 Neue Zürcher Zeitung(취리히의 독일어 일간지)에 처음 등장한 격렬한 논쟁에서 우크라이나 작가 옥사나 자부쉬코(Oksana Sabushko)는 러시아 문학을 푸틴이 저지른 전쟁범죄의 공범으로 지목했다. 자부쉬코에게 있어서 러시아 문학을 '유럽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서구의 실수이며, 오히려 “범죄자를 단죄하지 않고, 후회하고, 불쌍히 여기는”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옥사나 자부쉬코.


자부쉬코는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한다 :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은 없다." 자부쉬코에 따르면, 러시아 문학이 유럽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 의견을 읽었을 때 나는 몇 주 전에 베를린에서 있었던 "우크라이나 토론"을 떠올렸다. 저명한 (우크라이나인) 독일어 작가 자부쉬코는 독일인들이 오랫동안 러시아 문학을 읽는 습관을 소홀히 해왔다고 불평했다. 이는 러시아 문화를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궁극적으로 러시아 정신과 정치에 대한 이해의 상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앞으로 러시아와의 피할 수 없는 화해가 도래하는 시대에도,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다시 읽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야 한다고 말이다.



2006년 드레스덴의 도스토옙스키 기념관. 블라디미르 푸틴과 앙겔라 메르켈


자부쉬코의 주장은 독일인이 러시아 문학에 가지는 “독서 르네상스”의 열망을 거부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녀에게 있어 2월 24일 개시된 푸틴의 침공은 "순수한 도스토옙스키주의"였다. 순수하게 증류된 사악함, 오랫동안 억눌려온 역사적 시기와 증오, 절대적 면죄부가 뒤섞였다는 것이다.


자부쉬코가 "도스토옙스키주의"에 대해 말하는 것은, 1985년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와 요셉 브로드스키(Joseph Brodsky)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암시하고 있으며, 여기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깊은 문화적, 정치적 구조가 오늘날 가시화되고 있다. 1985년 1월, 체코의 밀란 쿤데라는 뉴욕 타임즈의 문헌 부록에서 도스토옙스키를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얼마 후 러시아인 요셉 브로드스키는 "밀란 쿤데라가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틀린 점"을 지적하며 응수했다.


소련군의 전차부대가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끝내자 쿤데라의 책은 금지되었고, 그는 더 이상 법적인 작가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를 돕기 위해 연극 감독은 쿤데라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The Idiot)>를 각색할 것을 제안했다. 쿤데라는 이것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굶어 죽더라도 작업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과장된 몸짓, 흐릿한 깊이, 공격적인 감상의 세계에 거부감을 느꼈다.”



밀란 쿤데라.


쿤데라는 도스토옙스키와 거리를 두는 자신의 행보가 조국의 점령으로 충격을 받은 체코인의 반(反)러시아적 정서를 반영한다는 추측을 부인했다 : "아니다. 나는 여전히 체호프를 사랑했다." 쿤데라는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분위기"를 거부한 것이다. "가장 고귀한 감정은 가장 큰 공포를 정당화하며, 서정적인 열정으로 부풀어 오른 그의 가슴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최악의 잔학 행위를 저지르는 인간을 정당화한다." 작가 카렐 차펙은 "도스토옙스키의 세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전에도 비슷하게 대답했다. “누군가 잔혹한 행위를 하고 (뉘우치며) 가슴을 치기 시작하면, 도덕, 질서가 회복되고 인간의 영혼이 구원받는다.”


쿤데라는 도스토옙스키와 같이 감정이 합리적 고려를 대신할 때,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그 결과 편협하게 만든다고 썼다. 쿤데라는 1978년 하버드 연설에서 “러시아는 르네상스의 부재로 특징지어지며, 러시아인의 영혼은 이성의 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고 강조한 알렉산더 솔제니친(Alexander Solzhenitsyn)의 말을 인용했다. 쿤데라는 우울한 어조로 연설을 끝맺었다. “1968년의 프라하에서 러시아의 밤이라는 영원함을 마주하면서, 나는 근대 초에 개인과 이성, 생각과 관용, 다원주의에 기초한 서구 문화의 폭력적인 종말을 목격했다. 작은 서쪽 나라(체코)에서 나는 서구 문화의 끝을 목격했다. 이는 크나큰 이별이었다.”


이는 거대한 비극처럼 들리지만, 브로드스키는 이것이 단지 연극이고, 꾸며낸 것이며, 자기중심적이라고 비판했다. 쿤데라는 도스토옙스키를 두고 미학적인 해석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인 해석을 내렸다는 것이다. 너무 성급히 정치적인 잣대로 문화를 결론지었다는 것이다. "(쿤데라의) 두려움과 혐오는 이해할 수 있지만, 책이 아닌 무기를 든 군인은 문화도, 문학도 대표하지 않는다."



요셉 브로드스키.


동방 대 서방 - 감정적 급진주의 v 합리주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서구적" 요소를 지적하면서, 브로드스키는 쿤데라에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서양의 작품보다 우월한 것으로 판명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변호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형이상학적 인물은 쿤데라의 상처입은 합리주의자보다 더 가치있다. 비록 그 합리주의자가 겉보기에 더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궁극적으로 서구의 합리성은 동방의 감정적 급진주의와 견줄 수 없다는 것이다. 브로드스키는 “영리한 사람은 이성(합리성)이 정말로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이미 알려진 지식만을 사용하여 표현되는지를 질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쿤데라와 브로드스키는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방과 서방에 대해 논쟁했다. 거의 40년에 걸친 논쟁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푸틴은 단순히 나토에 대항해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서방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핵심 증인”으로 내세워지고 있다. 토마스 만이 제1차 세계대전 말 "비정치인의 반성"에서 독일이 서구와의 내적 거리를 역사적-철학적 방식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도스토옙스키를 인용한 것처럼 말이다.


"기생(Parasitentums)" 혐의로 기소된 요셉 브로드스키는 소련에서 18개월 동안 강제노동을 해야 했으며, 1972년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소련 붕괴를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으로 본 푸틴과 다르게 반응했다. 브로드스키는 "소련에 해로운 모든 것은 절대적으로 옳다."라고 썼다.


그러나 막상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선언했을 때, 브로드스키는 되려 민족주의자가 되었다. "우크라이나의 독립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그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독일놈들(Fritzen)" 및 "폴란드놈들(Polacks)"와 함께 소련을 배신한 "흙덩어리들"이라고 질책했다. 더 나쁜 것은 또 다른 배신은, 위대한 러시아 문화에서 우크라이나가 분리되었다는 것이었다.


모스크바의 철학자 미하일 리클린(Mikhail Ryklin)이 말했듯이, 브로드스키는 자신이 그렇게 모욕적인 시를 썼다는 사실에 스스로 충격을 받았는지, 1996년 죽을 때까지 이를 출판하지 않았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동시에 "우크라이나의 독립에 대하여"는 러시아에서 "올해의 시"로 선정되었다. 브로드스키의 시를 떠올리면서 리클린은 러시아에서 널리 퍼져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증오가 선전의 효과로만 이해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선전이 대.중의 "무의식적 태도"에 호소 하는지, 아니면 오히려 단지 그 태도를 강화할 뿐인지 말이다.


자부쉬코의 경우 러시아 문학,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무의식적인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푸틴이 대.중 사이에서 그의 "특수 군사 작전"에 대해 쉽게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열의를 갖게 한다는 것이다. 모든 러시아 문학을 푸틴의 잔혹한 정책에 대한 문화적 청사진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넌센스다. 러시아 문화를 싸잡아 의심하는 것으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가학적인 선전에 대응할 수 없다.


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분노가 고조되는 이 시기에도, 러시아 내에서도 품위와 용기를 찾을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적절하다. 내가 콘스탄틴 아자돕스키에게 우리가 나눈 서신을 인용해도 되겠는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 “물론입니다. 마음껏 인용하십시오. 전쟁과, 전쟁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나의 입장은 분명하며,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불이익'과 뒤따를 '대가'에 관한 한, 나는 이 부분을 전혀 신경쓰지 않을 것입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십시오!”




이상임.


읽어줘서 감사.


Dostojewskis Schuld

Stand: 10.05.2022 | Lesedauer: 9 Minuten

Von Wolf Lepenies


Lässt sich der Krieg gegen die Ukraine aus der russischen Kultur heraus erklären? Aus dem Wahn eines Volkes? In Dostojewskis Geschichten lag den Grausamkeiten zwar eine ganz eigene Mentalität zugrunde. Aber Putins Politik ist nun mal keine Literatur – eine Suche nach den Spuren der Gewalt.


Im März schrieb der russische Germanist Konstantin Asadowski aus Sankt Petersburg einen Brief an die Deutsche Akademie für Sprache und Dichtung: Als Bürger Russlands trage er Mitverantwortung für das, was jetzt in der Ukraine geschehe. Der 80-jährige Asadowski ist ein großer Kenner der deutschen Literatur, 1990 erhielt er den Friedrich-Gundolf-Preis für die Vermittlung der deutschen Kultur im Ausland. Herausragend sind seine Forschungen zu den Beziehungen zwischen Rainer Maria Rilke und der Lyrikerin Marina Zwetajewa. Sein neues Buch „Russisch-deutsche Verflechtungen“ ist eben erschienen.


Konstantin Asadowski habe ich 1990 als Fellow am Wissenschaftskolleg zu Berlin kennen und schätzen gelernt. Als ich im März seine „Selbstbezichtigung“ las, schrieb ich ihm, ich müsse ihm widersprechen, er trage keine Mitverantwortung für den Krieg gegen die Ukraine. Das zu sagen, hieße, Putins Regime mit Russland gleichzusetzen.


Asadowski antwortete einen Tag später: „Ob man das heutige Regime mit dem ganzen Land gleichsetzen kann, ist eine schwierige Frage. Hundertprozentig gewiss nicht. Aber der überwältigende Teil der Bevölkerung ist begeistert und klatscht Beifall. Der Wahnsinn, den wir heute beobachten, geht nicht von einem einzelnen Mann aus, es ist der Wahnsinn von Millionen. Ich empfinde mich als ein winziges Körnchen des großen Landes, das Russland heißt. Ich gehöre seiner Sprache, Kultur und Geschichte an. Und gerade dieses Gefühl der Zugehörigkeit macht mich verantwortlich für alles, was heute geschieht. Das geht mich persönlich an ... Ich denke und glaube an die kollektive Schuld. Die Deutschen, die das Jahr 1945 erlebt ... haben, wissen, worum es geht. So ungefähr ist mir heute zumute.“


Bei Treffen im Freundes- wie Kollegenkreis hat der Ukraine-Krieg seit langem Covid als Hauptstreitpunkt abgelöst. Dabei stehen – neben militärstrategischen Überlegungen, die besonders rabiat ausfallen, wenn sie von „Ungedienten“ kommen – Fragen nach den „Schuldigen“ für den völkerrechtswidrigen Angriffskrieg im Vordergrund. Natürlich gilt Wladimir Putin als der Hauptverantwortliche, aber die Diskussion über die Mitverantwortung des „Westens“, insonderheit der Nato, wird dadurch nicht geringer – und wirkt umso obszöner, je mehr Gräueltaten der Putinschen Soldateska ans Tageslicht kommen.


Gefragt wird auch nach der Mitschuld der russischen Bevölkerung. Eine Frage, die letztlich von russischer Seite beantwortet werden muss. Darin liegt die Bedeutung einer Äußerung wie der von Konstantin Asadowski. Der jetzt in Berlin lebende, aus Russland geflohene Arzt und Schriftsteller Maxim Osipov stimmt Asadowski ausdrücklich zu und ergänzt: „Natürlich ist die Bevölkerung indoktriniert. Aber wenn Putin einmal weg ist, ändert sich das. Das Volk wechselt seine Meinung schnell.“


Die Kultur muss sich nicht rechtfertigen. Oder?


Der Ukraine-Krieg hat im Westen arbeitende russische Künstler unter Erklärungsdruck gesetzt und in manchen Fällen zu ihrer Entlassung geführt. Bei Valery Gergiev, dem Chefdirigenten der Münchner Philharmoniker, war diese überfällig: Seit der Krim-Annexion hat Gergiev als Putins Kulturpropagandist gewirkt, es ist nicht einzusehen, warum er dafür in Deutschland alimentiert werden soll.


Anders steht es mit der Frage, ob jeder russische Dirigent, jeder Schriftsteller, jeder Regisseur, der sich bisher zum Ukraine-Krieg nicht geäußert hat, zu einem Offenbarungseid aufgefordert werden soll. Ein Konsens besteht: Die russische Kultur muss sich nicht rechtfertigen. Welche Verbrechen Putin auch immer begeht, wir wollen weiter die Musik von Schostakowitsch und Prokowjew hören und die Romane von Tolstoi und Dostojewski lesen. Oder?


In einer wütenden, erst im „Times Literary Supplement“ dann in der „Neuen Zürcher Zeitung“ erschienenen Polemik hat die ukrainische Schriftstellerin Oksana Sabuschko eine Mitschuldige für die Kriegsverbrechen Putins ausfindig gemacht – die russische Literatur. Für Sabuschko ist es ein Fehler des Westens, die russische Literatur für „europäisch und humanistisch“ zu halten, in ihr zeige sich vielmehr ein Weltbild, „in dem man den Verbrecher nicht verurteilt, sondern bedauert und Mitleid mit ihm hat“.


Sabuschko zitiert Tolstoi: „Es gibt keine Schuldigen auf der Welt.“ Die Behauptung vom europäischen Charakter der russischen Literatur, so die ukrainische Autorin, sei ein Mythos. Als ich dieses Verdikt las, erinnerte ich mich an eine „Ukraine-Diskussion“, die ich wenige Wochen zuvor in Berlin erlebt hatte. Dabei klagte ein bekannter deutschsprachiger Schriftsteller unter allgemeinem Beifall, im Leseverhalten der Deutschen sei die russische Literatur seit langem vernachlässigt worden. Dies habe zu einer Entfremdung von der russischen Kultur und letztlich auch zu einem Verlust des Verständnisses für russische Mentalität und Politik geführt. Die Zeit der kommenden, unausweichlichen Versöhnung mit Russland müsse auch eine Zeit sein, in der die Lektüre der Romane von Tolstoi und Dostojewski wieder selbstverständlich sei.


Wladimir Putin und Angela Merkel am Dresdner Dostojewski-Denkmal im Jahr 2006


Sabuschkos Polemik klingt wie die Zurückweisung des deutschen Wunsches nach einer Leserenaissance der russischen Literatur. Für die ukrainische Schriftstellerin war Putins Angriff am 24. Februar „pures Dostojewskitum“: „Genau unter dieser Perspektive lässt sich der Feldzug richtig verstehen: Unberührt vom Denken Kants oder Descartes, aber auch von Clausewitz, handelte es sich um die Explosion reiner destillierter Bösartigkeit, eines lang unterdrückten historischen Neids und Hasses, verstärkt durch das Gefühl absoluter Straflosigkeit.“


Wenn Sabuschko vom „Dostojewskitum“ spricht, spielt sie damit auf einen Streit zwischen den Exilanten Milan Kundera und Joseph Brodsky aus dem Jahre 1985 an, in dem heute die kulturpolitischen Tiefenstrukturen des Ukraine-Kriegs sichtbar werden. Im Januar 1985 hatte sich der Tscheche Milan Kundera in der Literaturbeilage der „New York Times“ kritisch mit Dostojewski auseinandergesetzt; wenig später antwortete auf ihn der Russe Joseph Brodsky: „Warum Milan Kundera mit Blick auf Dostojewski Unrecht hat“.


Als 1968 sowjetische Panzer den „Prager Frühling“ beendeten, wurden die Bücher Milan Kunderas verboten, auf legale Weise konnte er als Schriftsteller nicht länger seinen Lebensunterhalt verdienen. Um ihm zu helfen, schlug ein Theaterregisseur vor, Kundera solle in seinem Namen eine Dramatisierung von Dostojewskis Roman „Der Idiot“ inszenieren. Kundera fühlte sich dazu nicht in der Lage: „Selbst wenn ich verhungert wäre, hätte ich die Inszenierung nicht übernehmen können. Dostojewskis Universum der übertriebenen Gesten, der trüben Tiefen und der aggressiven Sentimentalität stieß mich ab.“


Kundera wies die Vermutung zurück, in der Distanzierung von Dostojewski habe sich der antirussische Reflex eines durch die Besetzung seines Landes traumatisierten Tschechen gezeigt: „Nein, ich hörte nicht auf, Tschechow zu lieben.“ Kundera stieß das „Klima“ der Dostojewskischen Romane ab, in dem alles zum Gefühl wurde: „Die edelsten Gefühle müssen den größten Horror rechtfertigen und der Mensch, die Brust geschwellt von lyrischer Inbrunst, begeht im Namen der Liebe die schlimmsten Grausamkeiten.“ Der Schriftsteller Karel Čapek hatte die Frage „Was ist Dostojewskis Welt?“ früher ähnlich beantwortet: „Jemand begeht eine grausame Tat, fängt an, sich auf die Brust zu schlagen und, siehe da, die moralische Ordnung ist wiederhergestellt, die menschliche Seele ist gerettet.“


Wenn – wie bei Dostojewski – Gefühle an die Stelle rationaler Überlegung treten, schrieb Kundera, bewirken sie, dass das Verstehen anderer unmöglich wird, Intoleranz ist die Folge. Kundera zitierte Alexander Solschenizyn, der 1978 in seiner Harvard-Rede hervorgehoben hatte, für Russland sei das Fehlen der Renaissance charakteristisch, der „russischen Seele“ fehle das Vertrauen in die Kraft der Vernunft. Kundera endete im depressiven Ton: „Angesichts der Ewigkeit der russischen Nacht erlebte ich 1968 in Prag das gewaltsame Ende der westlichen Kultur so, wie sie am Beginn der modernen Zeit konzipiert worden war, basierend auf dem Individuum und seiner Vernunft, auf dem Pluralismus des Gedankens und auf Toleranz. In einem kleinen westlichen Land erlebte ich das Ende des Westens. Das war das große Farewell.“


Das klinge groß und tragisch, konterte Brodsky, sei aber nur theatralisch, affektiert und egozentrisch. Kundera habe auf Dostojewski nicht ästhetisch, sondern politisch reagiert – und habe zu schnell von der Politik auf die Kultur geschlossen: „Angst und Abscheu sind verständlich, aber nie repräsentieren Soldaten die Kultur, oder gar die Literatur, sie tragen Waffen, keine Bücher.“


Ost gegen West – radikal gegen rational


Auch wenn Brodsky auf „westliche“ Elemente im Werk Dostojewskis hinwies, verteidigte er gegen Kundera einen Autor, dessen Werk sich im Vergleich mit dem westlichen Kanon als überlegen erwies: „Der metaphysische Mensch in den Romanen Dostojewskis hat größeren Wert als Herrn Kunderas verletzter Rationalist, obwohl dieser die modernere Figur ist.“ Letztlich war die westliche Rationalität der emotionalen Radikalität des Ostens nicht gewachsen: „Ein kluger Mann“, so Brodsky, „müsste fragen, ob die Vernunft wirklich zu neuen Entdeckungen führt oder ob sie nur das schon bekannte Wissen zum Ausdruck bringt?“


Kundera und Brodsky stritten über Dostojewski – und stritten über Ost und West. Dies macht die Aktualität einer fast vierzig Jahre alten Kontroverse aus. Denn Wladimir Putin führt seinen Krieg nicht gegen die Nato, er führt ihn gegen den Westen. Dostojewski lässt sich dabei als Kronzeuge nutzen – so, wie Thomas Mann es tat, als er am Ende des Ersten Weltkriegs in den „Betrachtungen eines Unpolitischen“ Dostojewski zitierte, um die innere Distanz Deutschlands gegenüber dem Westen geschichtsphilosophisch zu begründen.


Wegen „Parasitentums“ angeklagt, musste Joseph Brodsky in der UdSSR 18 Monate lang in der Verbannung Zwangsarbeit leisten, 1972 wurde er ausgebürgert und ging später in die USA ins Exil. Auf den Zerfall der Sowjetunion reagierte er anders als Wladimir Putin, der darin „die größte geopolitische Katastrophe des 20. Jahrhunderts“ sah. „Alles was schlecht ist für die Sowjetunion“, schrieb Brodsky, „ist absolut richtig.“


Als aber die Ukraine sich 1991 für unabhängig erklärte, wurde Brodsky zum Nationalisten. In einem Gedicht „Auf die Unabhängigkeit der Ukraine“ beschimpfte er die Ukrainer als „Dreckspack“, das zusammen mit „Fritzen“ und „Polacken“ die Sowjetunion verraten habe. Schlimmer noch wog ein anderer Verrat, die Abspaltung der Ukraine von der großen russischen Kultur.


Brodsky war anscheinend, so schrieb der Moskauer Philosoph Michail Ryklin, über sein Schmähgedicht selbst erschrocken, er publizierte es nicht, las aber bis zu seinem Tod 1996 gelegentlich daraus vor. 2014 wurde „Auf die Unabhängigkeit der Ukraine“ – pünktlich zur Annexion der Krim – in Russland zum „Gedicht des Jahres“ gewählt. Sich an Brodskys Gedicht erinnernd, fragte sich Ryklin, ob der in Russland verbreitete Ukraine-Hass einzig als Effekt der Propaganda verstehbar sei. Ob die Propaganda nicht vielmehr an „unbewusste Einstellungen“ der Bevölkerung appelliere, die es nur verstärke.


Für die Ukrainerin Sabuschko lassen sich in der russischen Literatur, insbesondere im Werk Dostojewskis, die „unbewussten Einstellungen“ entdecken, die es Putin leicht machen, bei der Bevölkerung nicht nur Zustimmung, sondern Enthusiasmus für seine „spezielle Militäroperation“ zu finden. Die gesamte russische Literatur als kulturelle Blaupause der mörderischen Politik Putins zu denunzieren, ist Unsinn. Auf die russische Schmähpropaganda gegenüber der Ukraine kann man nicht mit einem Generalverdacht gegenüber der russischen Kultur antworten.


In einer Zeit wachsender Wut auf die Aggression Russlands gehört es sich, daran zu erinnern, dass Anstand und Courage auch in Russland zu finden sind. Als ich Konstantin Asadowski fragte, ob ich unseren Briefwechsel zitieren dürfe, antwortete er: „Natürlich dürfen Sie meine Worte zitieren – ganz frei und ohne Vorbehalt. Meine Stellung zum Krieg und allem, was damit zusammenhängt, ist eindeutig und ich möchte daraus keinen Hehl machen. Was ‚Nachteil‘ und mögliche ‚Folgen‘ angeht, so würde ich diesen Aspekt überhaupt ausklammern. Tue, was Du für richtig hältst, und geschehe, was geschehen so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