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생한다. 수많은 귀족들이 죽거나 해외로 망명하였고,
귀족이었던 대다수의 장교들이 죽거나 해외로 도피하면서 그 자리를 경험없는 미숙한 지휘관들이 대체하고,
병사들의 숙련도도 박살이 나면서 프랑스 군은 개판이 된다.
그나마 프랑스 육군은 나폴레옹이 프랑스군 못지 않게 덜떨어진 적을 상대로 활약하면서
빠르게 숙련도를 올려 전 유럽을 패고 다녔지만
해군은 그딴게 될 리가 없다. 혁명으로 프랑스 해군은 양성하는데 수십년이 걸리는 숙련 항해자들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돛 조종만도 필요한 밧줄이 100개가 넘어가고 그 밧줄 100개가 이름마저 각각 다 다른데 이걸 속성으로 키우겠다고?
거기다 프랑스 해군이 상대해야 되는건 오스트리아군 같은 병신이 아니고 바다를 지배하는 대영제국 해군이다.
거기다 프랑스 해군 3분의 1이 모여 있던 툴룽 포위전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숙련된 프랑스 해군 귀족 장교들도 영국으로 탈출하고
그 동안 만들던 신형함들도 영국에 나포당하면서 프랑스 해군은 병신이 되었다.
당시 영국 해군은 프랑스 해군보다 6배 빨리 포를 장전할 수 있었고,
우수한 항해술로 설계적으로 우수해 기동성이 좋은 프랑스 해군의 배보다 좋은 기동성을 보였으며,
규모마저도 프랑스 해군의 3배인 세계 최강의 해군이었다.(1)
1812년 유럽 세력도.
혼자서는 영국 해군에 맞설 수 없었던 프랑스는 당시 3위 해군국이었던 네덜란드를 점령하고
2위 해군국이었던 스페인과 동맹을 맺었고(Treaty of Ildefonso, 1796)
세계 2~4위 해군국들이 한번에 뭉치자 영국함대는 수적 열세에 빠진다.
1797년 당시 영국 지중해 함대(지휘관 저비스 제독)는 프랑스 해군 기지인 툴룽을 포위 중이었으나,
스페인이 프랑스와 동맹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듣자 포위를 풀고 후퇴한다.
동맹 체결 후 스페인 함대(지휘관 돈 호세 데 코르도바 제독)와 프랑스 함대는 합류해서 영국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이동한다.
이 때 제 때 영국 함대에 합류하지 못한 함장 한 명이 뒤쳐져 프리깃을 이끌고 스페인 함대 뒤를 따라오고 있었는데,
바로 상급함장(Commodore) 넬슨의 40문 프리깃 HMS Minerve이다.
저비스 제독과 합류가 늦었던 넬슨은 짙은 안개를 이용해 스페인 함대 정중앙을 몰래 돌파하여
지브롤터를 지나 영국 함대에 합류하였고, 저비스 제독에게 스페인 함대가 접근하고 있음을 알린다.
영국 함대(전열함 15척, 프리깃 5척) 사령관 저비스 제독은 두 적 함대가 합류할시 대항할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다가오는 스페인 함대(전열함 25척, 프리깃 7척)를 먼저 격파하기로 하고 카디즈로 향한다.
스페인 함대 사령관 돈 호세 코르도바 제독은 수적 열세에 놓인 영국 함대가 공격해 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전투 대형이 아닌 느슨하게 뭉친 대형으로 항해 중이었다.
강풍으로 인해 스페인 함대는 예상보다 훨씬 대서양쪽으로 밀려나 있었고, 영국 함대와 스페인 함대가
서로를 발견했을때는 스페인 함대가 남쪽, 영국 함대가 북쪽에 있었다.
당시 영국 함대는 정확한 아직 대규모인 스페인 함대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스페인 함대와 점점 가까워지면서 보이는 적 전열함의 수 역시 점점 늘어났고
파악된 스페인 함대의 전열함의 수를 보고 받던 저비스 제독은 20척이 넘어갈 시점
적 함대의 전력이 아군 함대를 압도할 정도로 많음을 알자
"알았으니 새로 발견될 때마다 일일이 보고할 필요 없네. 한 50척 넘으면 그때 보고하게. 그러면 바로 적 함대에 돌격할테니."
(Enough, sir. No more of that. The die is cast. and if there are 50 sails, I will go right through them.)
라고 하였고, 이를 들은 한 캐나다 출신 장교가
"맞습니다. 아주 박살을 내 줘야죠."
(That's right Sir John, and, by God, we'll give them a damn good licking!)
라고 대답할 정도로 영국 함대는 사기가 높았다.
세인트 빈센트 곶 전투 진행도. 진하게 칠해진 것이 영국함선, 안에 하얀 사각형이 있는 것이 스페인 함선. 스페인은 전열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스페인 함대는 자기 함대의 절반 밖에 안 되는 영국 함대가 전속력으로 돌격해오자 당황했지만
영국 함대가 먼저 공격해올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느슨한 대형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더욱이 바람 때문에 둘로 나뉘어져 있었다.
둘로 갈라진 스페인 함대의 중앙을 돌파하는 영국함대. 검게 칠해진 것이 영국함선, 안이 빈 것이 스페인 함선
저비스 제독은 영국 함대에 둘로 나누어진 스페인 함대의 중앙을 돌파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세인트 빈센트 곶 전투, Robert Cleveley 작품
느슨한 대형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스페인 함대는 일렬 전열을 형성하지 못해 최대 화력을 발휘할 수 없었고,
반면 영국 함대는 전열을 이룬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적 함대의 중앙을 돌파하며 좌우 양쪽의 스페인 함대에 포격을 퍼부었다.
뒤쳐져 있던 스페인 후위가 영국 함대의 전진을 막아보려 했지만
스페인 후위를 지휘하던 Principe de Asturias에게 후방 래킹샷을 쏘는 HMS Victory, Robert Clevelyl
영국 함대의 100문 HMS Victory(훗날 넬슨의 기함으로 트라팔가 해전에도 참여)가
스페인 함대 후위를 이끌던 112문 1급함 Principe de Asturias에게 두번의 후방 래킹 샷을 날려 무력화 시켜 이를 저지한다.
저비스 제독의 기록에 따르면 Principe de Asturias는 래킹샷을 맞은 후 배를 돌려 이탈에 전투로 돌아오지 않았고,
지휘함이 막대한 피해를 입자 스페인 후위 함대는 과감하게 교전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뒤쳐져 있던 스페인 후위를 어느 정도 정리하자 저비스 제독은 갈라져 있던 스페인 함대가
합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방향을 돌려 이번에는 스페인 본대를 공격하라고 명령한다.
이 때 영국 함대 후위에는 원래 자신의 배인 74문 3급 전열함 Captain호를 지휘하던 넬슨이 있었다.
넬슨은 저비스 제독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했다.
영국 함대가 우수한 기동으로 스페인 함대에 피해를 주긴 했지만
아직 스페인 함대에는 멀쩡한 전열함들이 많았고, 나눠진 함대가 합류하여 제대로 된 전열만 만든다면
수적 우위를 활용해 얼마든지 영국 함대를 박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저비스 제독은 이를 막기 위해 스페인 함대가 합류하여 전열을 구성하기 전에
가능한 빨리 스페인 본대를 따라잡아 두들기려고 했다.
그러나 영국 함대는 스페인 본대를 쫒아가기 위해 무리하게 역풍을 맞으며 태킹을 통해 선회를 했기 때문에
속도가 크게 줄어들었고, 그 사이 스페인 본대는 저 멀리 앞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아군 함대의 속도가 느려져 계획에 차질이 생겼음을 깨달은 넬슨은 우리가 못 따라간다면 적의 발을 붙들고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판단,
전열을 이탈해 뒤에 따라오던 아군 함선들 사이를 가로질러 스페인 본대 한가운데로 돌진했다.
본인 직속상관인 전대장의 명령인 "전열을 유지하라" 는 명령을 어긴 행위였으며,
실패한다면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에까지 이를 수 있는 독단적인 행동이었다.
영국 함대 후위에 있던 64문 전열함 다이아담, 74문 엑설런트는
넬슨이 갑자기 전열을 이탈해 자기들 사이를 가로질러 적 함대에 돌진하자 당황했지만
곧 넬슨의 의도를 깨닫고 넬슨을 따라 적 본대에 돌격했다.
영국 함대 제독 저비스는 항상 함장들과 회의를 진행하거나 식사를 하면서
전술적 식견,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을 강조했었고, 작전회의 등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함대 내 함장들이 자유로이 의견을 타진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했었다.
그리고 영국 함장들은 기회를 발견하자 그 기회를 적극적으로 쫒아 붙잡았다.
돌격해오는 영국 함선 3급함 세 척은 1급, 2급 등 덩치가 훨신 큰 배들이 우글거리는
스페인 본대 한가운데로 돌격했고 엄청난 포화를 맞았지만 스페인 본대를 붙잡는데 성공한다.
넬슨의 전열함 74문 HMS Captain은 총 6척의 스페인 전열함에게 포격을 얻어맞는데,
스페인 기함 130문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를 포함, 112문 전열함 3척, 84문 전열함 한척, 74문 전열함 한척에게 포격을 얻어맞는다.
이렇게 넬슨이 시간을 끄는 동안 뒤따라오던 영국 함선들이 도착했고, 영국 함대는 스페인 본대를 따라잡는다.
스페인 본대가 두들겨 맞는 동안 뒤쳐졌던 스페인 후위가 다시 돌아와 영국 함대를 뒤에서부터 공격하려 하지만
영국 1급 전열함 100문 HMS Britannia가 이를 홀로 막아선다.
스페인 후위는 이미 누적된 피해 때문에 HMS Britannia를 돌파하지 못하고 포격을 주고받는다.
죽어가는 San Nicholas 함장에게서 항복을 받아내는 넬슨, Richard Westall
넬슨의 HMS Captain은 혼자서 엄청난 포격을 얻어맞아 심각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기에 포격을 하면서 전투를 계속해갈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넬슨은 자신에게 포격을 퍼붓던 84문 San Nicolás 역시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것을 발견하고 백병전을 걸었고,
평소 훈련도가 높았고 넬슨에 대한 신뢰가 높던 HMS Captain의 승무원들은 불꽃같이 적함을 휩쓴다.
몇분 지나지 않아 넬슨은 San Nicolás를 장악했고 죽어가는 함장에게서 항복을 받아낸다.
San José 에 올라타는 넬슨, George Jones 작
그 때 112문 San José가 넬슨에게 나포당한 San Nicolás의 옆을 지나가다 돛이 엮이면서 엉켜버린다.
San Nicolás에 있던 넬슨은 아직 HMS Captain에 남아있던 승무원들을 더 모아 San José에도 올라탔고
넬슨에게 항복하는 San José의 함장, Daniel Orme 작
San José 역시 넬슨이 올라타고 영국 함대가 다가오자 몇 분 이내에 항복하고 만다.
112문 San José, 84문 San Nicholas를 나포한 넬슨의 HMS Captain. Nicholas Pocock 작
이 사건은 영국 해군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영국 해군사에서 이미 나포한 적함에서 다른 적함으로 백병전을 걸어
그 적함까지 나포한 최초 사례였으며, 넬슨은 3급함으로 승무원이 훨씬 많은 2급함을 나포한 후 그보다도 승무원이 많은 1급함을 나포했다.
넬슨이 San José를 나포한 전술은 "Nelson's patent bridge"라는 이름으로 1급함 대항 백병전 전술로 채택된다.
세인트 빈센트 곶 전투, EDUARDO DE MARTINO 작
두척의 전열함이 순식간에 항복하고, 자신의 뒤로 영국 1급 전열함 Victory가 접근하는 것을 본 다른 스페인 전열함 두 척이 추가로 항복하였고,
영국 전열함들이 다가오는 것을 본 세계 최대의 전열함 4층 갑판 130문 Santisima Trinidad 역시 항복하려고 흰 깃발을 올리려 하였지만
Santisima를 구원하기 위해 다가오는 스페인 전열함 Infante Don Pelayo, Antonio Brugada 작
Santisima를 구원하기 위해 다가오던 다른 스페인 전열함들이
항복한다면 적으로 간주하고 Santisima의 후방을 래킹샷으로 공격할 것이라고
위협하자 항복을 포기하고 전투에서 이탈한다.
이렇게 되자 스페인 함대는 프랑스 함대와 합류하는 것을 포기하고 카디즈로 전면 후퇴한다.
영국 함대는 73명 사망, 227명 중상의 피해를 입었으며,
스페인 함대는 430명 사망, 856명 중상에 4척이 나포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영국함대는 도주하는 스페인 함대를 쫒아가 카디즈를 봉쇄했고,
스페인 함대는 1802년 스페인이 영국과 평화협정을 할때까지 카디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해 말 11월에는 영국 북해함개 Adam Duncan이 Camperdown 해전에서
네덜란드 함대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네덜란드 함대는 15척의 전열함 중 9대가 나포되어 대부분의 해군력을 상실하였으며,
결국 이 손실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해군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영국이 제해권을 완벽히 장악한 것이었다.
전투의 공로로 저비스 제독은 백작 위를 수여 받아 초대 세인트 빈센트 백작(1st Earl of St Vincent)이 되었으며,
넬슨 역시 기사작위를 수여 받는다. 이후 넬슨은 상급함장(Commodore : 전열함 함장)에서
전대장(Rear Admiral)으로 진급했다. 공로로 인한 특진이 아니라 넬슨의 순서가 되어서,
넬슨 윗 기수 함장들은 전부 진급해서 이루어진 진급이었다.
다른 역스퍼거 글 : https://gall.dcinside.com/m/ttwar/584380
(1) Nelson's Navy(https://ospreypublishing.com/nelson-039-s-navy-hb) : 일반 장전속도는 2배 이상 차이가 났으며, 적과 포격을 주고받는 전투 중에는 화력으로 적을 압도하며 약 6배 더 빨리 장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 http://www.admiralnelson.info/CapeStVincent4.htm, https://youtu.be/f9yoQKOVIpE, (Osprey Campaign 230)Nile 1798
대영제국추
이건 상대가 ㅂㅅ 이기 보단 논영의 압도적 실력이네
스페인이 병신이기도 했음 후위함대는 1급 브리타니아 하나에 막혀서 손가락만 빨았으니 - dc App
스페인은 카를로스 4세 즉위하면서 병신된 나라라 ㅋㅋ
글쓴놈 알거같은데 하도 병신되서 저때 엘랑사략꾼들이 더 많았을걸ㅋㅋ
해군은 병신이 되고 사략만 남은 낭만이 넘치는 오도짜세기합 엘랑해군... - dc App
ㄴ사략선주들이 논영 상선 얼마나 털어대면 나중엔 털어갈 배가없다고 불평함ㅋㅋㅋ 미국도 독립초창기에 그지랄한게 더 웃음벨
출항하면 나포되는 상황에서도 이 악물고 해군 안 키우는 미국의 단합력.....가슴이 옹졸해진다.... - dc App
근데 혁명 때문에 해군 십창나서 능력있는 간부들 다 사략으로 런해서 그런게 더 크지 않을까? 제독은 단두대행 하고 부제독이랑 함대 참모진은 다 영국으로 망명하고 혁명의회에서 새 제독 왔는데 원래 뭐하던 사람이냐고 물어보니까 화가래. 시발 나 같아도 제대하고 사략 뛴다 - dc App
???:니 배 다 조졌는데 그만 항복하지? ????: 나 아직 싸움 시작도 안했어 씨발련ㄴ아 개좆밥 시절 미국해군 ㅅㅂㅋㅋㅋ 원양사략함대를 보내고 자빠졌으니 원
ㄴㄴ그런거 다 차치하고 개뚜들겨맞아가면서 해군뛸바에 걍 배나포해서 한탕 거하게 해먹는 사략질이 나같아도 더나을듯
쉬프랭은 어디있는가
배 설계 부분은 프랑스측이 더 뛰어났음. 의외로 동시대 프랑스측 함선이 세계 최초로 건조에 수학자를 동원하고 설계를 표준화할 정도로 더 우수했음. 원자재의 품질관리도 더 엄격했고. 반면 이 당시 영국 군함들은 싸고 많이 만드는 것에 치중되어 있었고 건조 과정에서의 방산비리도 악명높았음. 영국 해군이 프랑스 해군을 압도한 건 순수 실력빨임. 배 성능은 오히려 뒤쳐졌음. 그래서 영국 해군이 프랑스 군함을 나포하는 데 매우 열을 올렸고 나포할 때마다 선장과 선원들에게 돌아가는 보너스가 아주 짭짤했다고 함
프랑스 설계가 우수했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거 예에에에전에 1700년대 초에 영국이 비리로 이상한거 뽑았을때 영국 해군성에서 나온 얘기임. 그리고 프랑스 배는 설계가 앞뒤로 너무 길게 뽑아서 속도는 빠르지만 선회 느리고 선체 구조가 빈약해서 먼 바다에서 오래 항해할 물건이 못되었음. 영국 해군도 나포한 프랑스 배는 먼 바다 보내지 말거나 - dc App
장기작전 하지 말자는 얘기 계속 나왔음. 영국이 눈대'중으로 대충 해서 설계 스준 떨어지던건 1700년대 초나 1600년대 후반 얘기고 계속 프랑스 배 나포하면서 프랑스 설계 도입하고 더 발전시키면서 훨씬 우수해졌음. - dc App
배 성능이 뒤쳐졌으면 영국 배들이 맷집도 좋고 오랜 원양 작전에도 배 손상이 덜 가는게 설명이 안됨. 그리고 영국에도 유명한 명인 설계자 많음. Thomas slade라던지.
https://ospreypublishing.com/british-frigate-vs-french-frigate
https://ospreypublishing.co
- dc App
프랑스 해군은 전대나 단함이 원양 나가서 사략질하거나 유격전하는 일이 많아서 그짝 배가 단타 속도전에는 좋은데 영국처럼 몇 달씩 원양 항구 어딘가에서 짱박혀서 순찰 도는 임무를 시키려면 배가 못 버팀, 프랑스처럼 빠르고 공간 넓으면서 영국처럼 튼튼한 배를 원하면 미국 전열함을 봐야지
전투 시 맷집도 병신이었음. 컨스티튜션에 쳐 맞고 침몰한 게리에르처럼 영국배면 적어도 침몰은 안 할 상황에서도 파사삭 하는 경우 많았음 - dc App
역퍼들 - dc App
히힉! 싼닷! - dc App
와 넬슨이 진짜 괴물이네... 저걸 어떻게 한거야 ㅋㅋㅋ - dc App
이집트 원정때도 그렇고 존나 겁대가리가 없음
아니. 먼저 첫번째로, 명백하게 프랑스의 조선기술이 좋았었어 니 말대로 18세기초에는.ㅇㅇ 넌 마치 해군성이 그런 얘기가 나왔다더라 정도로 퉁치려고 하고 있지만, N.A.M. Rodger의 보면 당시 프랑스의 조선기술이 17세기말 18세기초 해군 top3 중 나머지 영국 네덜란드를 "had surpassed" 했다고 나옴.
N.A.M. Rodger의 책 The Command of the Ocean: A Naval History of Britain 1649–1815. 책 제목 사이에 괄호 쳤더니 통째로 없어졌었네.ㅇㅇ
이 얘기가 내가 한 말임 18세기 초까지는 프랑스가 우수했다
그 뒤는 잘 모르겠네 ㅎㅎ 어떻게 됐는지 근데 뭐 18세기 중반에 영국 대 스페인 간에 맞붙었던 젠킨스 귀 전쟁의 결과 더 많은 손실을 보고 불리한 조약 맺은거 보면 얼마나 사정이 달라졌을까 싶기도? 영국의 장기랍시고 태평양 대서양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맞붙었는데 육군도 스페인 보다 더 꼴아박고 해군도 스페인이 186대 손실 볼 동안 영국은 407대 손실 보고. 도대체 왜 그런거래냐? 대포 장전도 더ㅓ 잘하고 배도 더 잘만들고 그런데!! ㅋㅋㅋ
젠킨스 귀 전쟁에 이어서 맞붙은 7년전쟁에서는 다시 영국 프랑스 상대로 이득을 보긴 했는데 그 다음에 또 미국독립전쟁에서는 또 영 시원찮았지. 미국 독립전쟁에서는 Armada of 1779 : 프랑스 스페인 연합함대의 브리튼섬 상륙작전을 막느라 급급했지. Armada fo 1779 전역에서는 프랑스-스페인 전열함 66 vs 영국 전열함 38 싸워서 영국이 상륙을 저지하는데 성공하긴 했지 대신 자기도 미국에 지원하는 게 드 그라스 백작의 프랑스한테 짤라먹혔고. 다른 한편 희망봉 동쪽에서는 쉬프랑의 활약으로 다 짤라먹히고. 쉬프랑 급의 그 쉬프랑 맞음.ㅇㅇ
자, 두번째. 미국 독립전쟁은 1783년에 끝났고 툴롱 포위전은 1793년에 벌어졌다. 불과 10년전에는 비록 스페인과 연함함대를 꾸린 면도 있지만서도 프랑스는 단독 함대만으로도 영국해군 짤짤이 막고 거꾸로 영국의 북미 지원을 못하게 막을 수 있던 전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도대체 언제 규모 차가 3배로 벌어진거냐? 불과 10년만에. ㅇㅇ 역스퍼거라며...알려줘 ㅎㅎㅎ
"혁명"
이쯤되면 알겠지만 영국이 프랑스나 스페인 해군 상대로 재미 봤던건 프랑스나 스페인이 유럽 대륙 내에서 육군 작전에 더 큰 자원을 투입했어야 했다보니까 상대적으로 해군에 집중하지 못할 때나 재미봤지, 18세기에도 아직은 스페인하고 단독으로 싸운다든지 거꾸로 자기가 북미 전역 육군 지원에 더 큰 신경을 써야 했다든지 했을 때는 재미를 못 봤다. 네덜란드도 못 넘어섰던 17세기 이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또 누가 퍼거처럼 그런 말 하던데 영국의 단함 전투 승률이 어쩌고 함대간 승률이 저쩌고. 혹시 그거도 너냐? ㅋㅋㅋㅋㅋ
어디 글 얘긴지 모르겠는데 내가 쓴 글은 글 맨 밑에 추가로 넣은 목록에 다 있으니까 그거 보고 확인해 봐
아무튼 그게 니말대로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프랑스는 물론 스페인 네덜란드의 인적 물적 해군자원의 씨가 마르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영국 해군을 상대할 적수가 질적으로놔 양적으로나 없어졌지 무려 19세기에 들어서야.ㅇㅇ 정말 퍼거처럼 하고 싶은 말만 하지 말고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거니 대답해줘 나중에라도 댓글 확인할거니 ㅎㅎ
지금 니가 말하는 혁명 때문에 프랑스 해군 병신되고 영국해군한테 쳐 맞는 그 얘기 하고 있는데 왜 핀트를 못 잡고 부들대냐 어디 가서 맞고 옴?
개병신같은 유동새끼는 혼자 뭐라는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