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라서 간략하게 씀.

귀양도 귀양나름임.
정치싸움에서 패배해서
총대 매고 귀양가는 거랑

중범죄나 집안이 한미하거나 집안개박살 난 케이스랑 
너무 다름.


1. 귀양 내려갈 때
사극처럼 소달구지 안태움. 
그건 4대문안 조리돌림이고
4대문 밖에서 호송대랑 같이 걸어감.

걸어가는 길에 할 거 다 함.
추사는 제주도 가는 길에 유람할 거 다했음.
심지어 다성 초의선사 만나러 가서 
현판쓴다는 핑계로 한달가량 눌러 앉음.

물론 호송비는 죄인이 다 냅니다^^

다산 정약용도 
유배강때 개 빡쳐서 주막에 짱박혀서
호송대 비용까지 지불해가면서 까지
꼬장부리며 늦짱부림.



2. 숙소
당연히 관에서 마련해줌.
뭐 죄인의 급이 낮으면..... 개판인거고
고관대작이나 정치범이다 싶으면
작은 초가집에 
죄인방 손님방 정도는 구비할정도의
크기의 집을 줌.

근데 추사는 위리안치 당해서
가시덤불을 집주위로 설치하게 되었는데

가시덤불 까는게 하루만에 되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냉큼 한라산 유람하고 돌아옴....

3. 식사
당연히 그 지방에서 나는 음식을 먹음.
근데 양반내들 입에 맞질 않겠지.

그래서 그 비싼 어란(지금도 매우 비쌈)을
집에서 보내게 한다던가...는 식으로 함.

저장식품 위주로 보내는 거지.
추사가 제주도 내려가서 한탄한 것 중 하나가
아씨발 소고기를 못먹네!!!
이동네는 소가 없네 ㅠㅠ 였음.

4. 기타
당연히 종도 내려옴.
종이 귀양생활동안 잘하면 면천도 시켜주고 했다더라.
각종 집안일에 서신 배송 보급품 수급해야하니
종이 한명 가지곤 부족하겠지?

한두명은 기본이었다고 하더라.

이제 또 급이 있으시면
한양에서도 고관대작들이 어찌어찌 내려와서
얼굴 보고 그랬음.

일례로
추사(노론)와의 정치싸움에서 이긴 안동 김가의
영수가(이름 기억 안남) 
본인이 죽기전에 제주도 내려와서
추사보고간 적도 있음.


거기에 추사는 청과 조선 모두에서 핫스타라서
청에서 온갖 서적들을 보내오고
조선에서도 온갖 선비들이 팬래터를 보내는 탓에
쉴틈이 없었다는 카더라...


여튼 돈많고 권력 많은게 최고임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