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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9년, 흐멜니츠키의 봉기로 코사크에 대한 폴란드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모스크바 차르국은 형제국을 칭하며 우크라이나 코사크(코사크 헤트만국)에게 접근함.

그런데 단순히 물밑 지원을 해주는게 아니고 코사크들의 마을에 슬금슬금 관리를 파견하고 군대를 주둔 시키고, 말 안 듣는 지도자들은 제거하고 거기다 자신들 말 잘 듣는 꼭두각시를 앉히는 등 대놓고 먹으려는 수작질을 함.


당연히 코사크들은 반발하면서 마을마다 봉기를 일으켰는데, 친러 코사크들과 모스크바 군대가 이를 진압함.


당시 지도자였던 흐멜니츠키가 사망하고나서 구심점이 사라진 상태라 코사크들은 친러-친폴-중도파등으로 상당히 분열된 상태였음. 어느 정도였냐면 그냥 다시 폴란드에게 붙자는 의견까지 나옴.


모스크바의 차르였던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는 굳히기에 들어가려도 약 2만명 정도의 군세를 우크라이나로 보냄. 친러 코사크들까지 합세한 이 군대는 지나가면서 주변의 코사크 마을들을 죄다 개박살 내버림. 


진짜 빡친 코사크들은 있는 병력 다 규합해봤지만 4천명 밖에 되지 않았음. 이때 흐멜니츠키의 후임이었던 이반 비호브스키 (Ivan Vyhovsky)가 나서서 폴란드랑 크림타타르에게 지원을 요청함. 폴란드는 약 4천명의 용병을 보내주었고 틈만 나면 서로 으르렁거리던 크림타타르는 이번만큼은 흐멜니츠키 시절 정을 봐서 칸인 메흐메드 기레이 4세가 직접 3만명을 이끌고 지원을 와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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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군대는 6월 29일 우크라이나 북서부의 코토노프에서 맞붙음. 모스크바군은 자신들이 코토노프 요새를 장악했다는 점과 눈에 보이는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의 수가 매우 적다는 점 때문에 상대를 과소평가함. 모스크바군과 친러 코사크 군대는 평원에서 회전을 벌임. 


선두에 선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은 정면으로 맞붙다가 소스니브카 강 건너로 작전상 후퇴를 함. 이게 낚인 모스크바 군대는 전부 도강하여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을 추적했음. 적들이 강을 다 건너자,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은 머스킷 3발을 하늘로 쏴서 신호를 보냄.


그리고 숨어있던 크림타타르 기병 3만이 모스크바군대를 그대로 쌈싸먹으며 양학을 벌임. 전날 비가 와서 땅이 매우 질척거렸는데 모스크바 군대의 대부분은 중기병이었음. 이에 반해 타타르인들은 전부 경기병 세팅이었으므로 루스끼들은 아무것도 못하고 전멸함.


당시 모스크바 군대의 지휘관들은 대부분 사로잡혀서 연합군의 명목상 지휘관인 메흐메드 4세의 앞에 끌려 옴. 메흐메드 4세는 '나한테 복종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살려줌 ㅇㅇ'라고 조롱을 했고, 포로들중 보야르였던  Semen Petrovich Lvov는 기레이 4세의 얼굴에 침을 뱉음. 빡친 메흐메드 4세는 그 자리에서 포로들 전원을 참수함.


모스크바군대는 이때 장교만 256명이 전사했다고 함.



이 전투로 인해 모스크바 차르국은 남부지역을 방어할 역량이 증발함. 패전소식이 들려오자 러시아 곳곳에서 모스크바로 피난민이 몰려들었고 차르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마저 여차하면 도망치기 위해 짐을 싸놨었다고 함. 어쨌든 이 전투 덕분에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은 약 10년간 모스크바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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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훗날 러시아는 결국 우크라이나를 합병하고 승자가 됐지만, 이 전투만큼은 쪽팔렸는지 역사가들은 '용감한 모스크바 군대가 수적 열세 속에서 영웅적으로 싸우다 전멸 당한 전투'라며 피해사실을 날조하는등 어떻게든 뻘짓한걸 숨겨보려고 했음. 대표적으로 당시 크림타타르에게 지원을 요청했던 우크라이나 헤트만 이반 비호브스키는 제정러시아와 소련시절 '민족의 반역자'로 취급 당했음. (마치 독일 역덕후들이 그룬발트 전투를 영웅적이었다고 뇌내망상 하는것처럼.)


하지만 1992년 우크라이나가 정식으로 독립한 뒤부터 코토노프 전투는 재평가되기 시작함. 2000년대까지만 해도 형제들끼리 치고받다가 외세의 도움을 받은 이상한 전투로 여겨졌지만, 러시아의 침공이 노골화된 2014년 이후부터는 아예 그냥 국뽕으로 밀어주는 추세임. 비록 한때 원수마냥 으르렁거리던 사이였지만 이제는 러시아라는 공동을 적을 두게 된 우크라이나와 크림타타르인들 간의 얼마 안되는 화합가 연대를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으로 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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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토노프 전투를 묘사한 민족기록화. 이 그림은 현재 지토미르에 주둔 중인 우크라이나 특수군(SSO) 사령부 현관에 붙어있음.


만약 SSO 사령부를 방문하는 VIP가 있다면 무조건 이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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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300년 후에는 데자뷰인지, 러시아군 BTG가 코토노프를 통과하려다 보급지연, 우크라이나군의 화망에 걸려서 장비 300대를 손실하고 빤쓰런해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