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은 1919년 중강진에서 순천의원을 개원, 아편장사를 겸업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냈음

애비부터가 브레이킹 배드였으니 그걸 보고 배운 김일성 역시 아편을 고부가가치 자산으로 주목하고 1945년부터 마약류의 생산과 밀매에 직접 개입함

중국 공산당이 1940년대부터 재정충당을 위해 양귀비를 재배하는 등 마약산업을 활용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 추정됨


북괴의 마약사업 역사에서 7,80년대를 좀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이전의 마약사업과 달리 대남적화통일을 위한 직접적 도구에서 간접적 도구로 변화하였기 때문임


북괴는 1967년 이른바 5.25 교시를 기점으로 수령 개인숭배를 심화,

1976년이 되면 대남혁명 부문을 포함한 모든 정권 기관에서 김정일의 비준과 친필지시가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게 됨

또한 김정일은 1972년 내각에서 군수 부문을 독립시키고, 군수 및 당 경제 부문의 대외결재은행을 다수 설립해 사실상 외화를 독점하였음

그 결과 북괴의 수령독재는 경제부문까지 잠식하게 되었고, 경제 침체를 초래하게 됨


그와 별개로 김일성, 김정일은 막대한 양의 외화를 사치를 위해 소모하였고, 이를 뒷받침할 외화벌이 수단이 필요하였음

그래서 선택한것 중에 하나가 마약사업이고, 60년대 일시적으로 중단했던 마약사업을 다시 부활시켜 80년대 후반 대량생산기반을 형성하였음


70년대까지 북괴는 마약생산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특정 지역(주로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에서 마약을 구매한 뒤 외교공관, 만수무역회사 등을 판매기지로 하여 밀매하였음

그러다 84년 미 하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불가리아, 소련이 연계된 킨텍스라는 회사의 밀수행위가 공개되는 등 공산권 국가들의 마약 밀매와 테러개입이 이슈화되었고, 레이건 행정부에서 북괴를 5개 테러 국가로 지정하는 등 돌아가는 게 심상치 않자 "해외 공관을 통한" 마약밀매를 일시 중단함


그러나 북괴가 마약사업을 접을 리 없었고, 80년대 후반부터 해외공관에서 아예 야쿠자, 러시아 마피아 같은 국제범죄조직으로 타겟을 바꾸어 마약밀매를 진행함

또한 39호실, 군 보위국(현 보위사령부), 보위부에도 마약사업권을 주고 참여시킴

황장엽 증언에 의하면 이 시기 부터 각 도, 정치범수용소 등 양귀비 재배를 확대하고, 제대군인을 인력으로 투입시키는 등 아편의 대량생산기반을 마련하고, 만수무역회사를 통해 헤로인, 메스암페타민의 대량생산기반 역시 마련함


따라서 90년대가 되면 북괴는 마약의 대량 생산, 판매 모두 스스로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며

마약판매 자금은 핵, 미사일 등 WMD 개발에도 사용되었으리라는 추정도 존재함


Ref) 이관형, 전략연구, 29, 1, 263-308 (2022), 한국전략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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