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백제 부흥세력 입장에선 신라도 ㄹㅇ 찢어죽일련들아니었음? 실제로 나당전쟁직전에도 신라는 구백제지역 완전히 통제하지못한걸로 아는데 당이아니라 신라를 택해서 신라랑 같이 당이랑싸우고 나당전쟁이후 부흥보단 통일신라로 살았으니
- dc official App
댓글 17
말이 통하잖아
익명(175.205)2022-07-01 10:40
답글
생각해보니 ㅅㅂ ㅋㅋㅋ 인사가 니하오가 될뻔했네 ㅋㅋㅋㅋㅋㅋ - dc App
띠용옹(wlsdnals12)2022-07-0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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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이 말이 통했다라는거 아닐수도있다고 어디서본거같음
익명(112.145)2022-07-0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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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봤는지 가져올때까진 실제로 남아있는 기록에 더 믿음이 가네
익명(175.205)2022-07-01 10:44
내가 배우던 시절 정설은 삼한일통론에 따른 동족의식?이라는 식이었는데 나도 고대사를 엄청 깊게 공부한건 아니라 모르겠네
30사단(58.143)2022-07-0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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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의식도 저땐없었던거로아는데..
익명(112.145)2022-07-01 10:42
답글
삼국 통일에 대한 관점이 삼한일통에 따른 통일이냐, 아니면 단순 정복전쟁이었다가 나중에 삼한일통 드립치면서 정당화한거냐 설로 나뉘는데
주류는 삼한일통에 따른 통일론으로 기억, 물론 학부 수준에서 들은거니
30사단(58.143)2022-07-01 10:43
결국 제대로 동화 못 시켜서 다시 찢어졌잖아 - dc App
익명(botcgn8krh4z)2022-07-01 10:41
답글
잔존 세력이 그대로 내려왔다기보다는
명분만 이용한 쪽에 가깝긴 해도 - dc App
익명(botcgn8krh4z)2022-07-01 10:44
짱개는 말이 안 통하고 노예처럼 부림. 약탈 ㄱㄱ같은 전쟁범죄 상당했다고 하고 대륙으로 상당수 끌고감
익명(210.178)2022-07-01 10:42
당이 더 더럽게 했으니까?
그리고 후삼국때는 말이 부흥세력이지 그냥 반란명분찾기자늠.
..(222.114)2022-07-01 10:42
답글
ㄴㄴ 후삼국시대는 통일신라 말기구 신라가 당과 같이 백제와 고구려 끝냈을때도 백제부흥군 고구려부흥군이 실제 영토를 차지하고 신라와 대립중이었는데 그때 당이 치고내려왔을걸 - dc App
띠용옹(wlsdnals12)2022-07-01 10:44
답글
왕건이 있던 패서호족들은 고구려 후예 자처하긴 했으니 좀 다르지 후백제면 몰라도 - dc App
익명(211.228)2022-07-01 10:45
답글
후백제도 견훤이 의자왕의 원한 운운하면서 백제 팔이한게 먹히긴 했을걸 ㅇㅇ
본인이랑은 아무 연관성도 없지만 - dc App
익명(botcgn8krh4z)2022-07-01 10:47
답글
후삼국은 정통성은 조각도 없는 참칭세력이지.. 원본은 도적떼들이니
익명(210.178)2022-07-01 10:48
고구려 부흥운동에서 고구려가 비교적 늦게 복속한 지역인 평양성 이남과 황해도지역은 반신라감정이 적어 반당세력으로 신라와 연합에 거부감이 적었음..반면 요동지역의 고구려 부흥운동에선 신라와의 연계는 시큰둥한 면이 있음..백제부흥운동은 처음부터 반당나라 감정만큼 반신라 감정이 높아 초기부터 신라와 연계는 어불성설이었음..이후 당나라의 백제 점령통치가 구백제 왕실이나 동의했지 백제유민들과는 동떨어지게 돌아가자 백제 왕실부흥과 분리된 백제부흥세력이 일어나고 이들은 신라와 연계가 필요하게 됨..
ㅅㅅ(222.112)2022-07-01 10:51
신라는 패전국 지도층 흡수후에도 대우 해주거든
그래서 금관가야 멸망후 김해김씨가 진골이되고 김유신-김춘추 동맹이 중요한거+골품제덕분에 왕족/귀족에서 천민이 안 된다는 보장이 되니까 우르르 백제나 고구려 호족들이 붙은거지
말이 통하잖아
생각해보니 ㅅㅂ ㅋㅋㅋ 인사가 니하오가 될뻔했네 ㅋㅋㅋㅋㅋㅋ - dc App
삼국이 말이 통했다라는거 아닐수도있다고 어디서본거같음
어디서 봤는지 가져올때까진 실제로 남아있는 기록에 더 믿음이 가네
내가 배우던 시절 정설은 삼한일통론에 따른 동족의식?이라는 식이었는데 나도 고대사를 엄청 깊게 공부한건 아니라 모르겠네
동족의식도 저땐없었던거로아는데..
삼국 통일에 대한 관점이 삼한일통에 따른 통일이냐, 아니면 단순 정복전쟁이었다가 나중에 삼한일통 드립치면서 정당화한거냐 설로 나뉘는데 주류는 삼한일통에 따른 통일론으로 기억, 물론 학부 수준에서 들은거니
결국 제대로 동화 못 시켜서 다시 찢어졌잖아 - dc App
잔존 세력이 그대로 내려왔다기보다는 명분만 이용한 쪽에 가깝긴 해도 - dc App
짱개는 말이 안 통하고 노예처럼 부림. 약탈 ㄱㄱ같은 전쟁범죄 상당했다고 하고 대륙으로 상당수 끌고감
당이 더 더럽게 했으니까? 그리고 후삼국때는 말이 부흥세력이지 그냥 반란명분찾기자늠.
ㄴㄴ 후삼국시대는 통일신라 말기구 신라가 당과 같이 백제와 고구려 끝냈을때도 백제부흥군 고구려부흥군이 실제 영토를 차지하고 신라와 대립중이었는데 그때 당이 치고내려왔을걸 - dc App
왕건이 있던 패서호족들은 고구려 후예 자처하긴 했으니 좀 다르지 후백제면 몰라도 - dc App
후백제도 견훤이 의자왕의 원한 운운하면서 백제 팔이한게 먹히긴 했을걸 ㅇㅇ 본인이랑은 아무 연관성도 없지만 - dc App
후삼국은 정통성은 조각도 없는 참칭세력이지.. 원본은 도적떼들이니
고구려 부흥운동에서 고구려가 비교적 늦게 복속한 지역인 평양성 이남과 황해도지역은 반신라감정이 적어 반당세력으로 신라와 연합에 거부감이 적었음..반면 요동지역의 고구려 부흥운동에선 신라와의 연계는 시큰둥한 면이 있음..백제부흥운동은 처음부터 반당나라 감정만큼 반신라 감정이 높아 초기부터 신라와 연계는 어불성설이었음..이후 당나라의 백제 점령통치가 구백제 왕실이나 동의했지 백제유민들과는 동떨어지게 돌아가자 백제 왕실부흥과 분리된 백제부흥세력이 일어나고 이들은 신라와 연계가 필요하게 됨..
신라는 패전국 지도층 흡수후에도 대우 해주거든 그래서 금관가야 멸망후 김해김씨가 진골이되고 김유신-김춘추 동맹이 중요한거+골품제덕분에 왕족/귀족에서 천민이 안 된다는 보장이 되니까 우르르 백제나 고구려 호족들이 붙은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