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8년 5월 3일, 1808년 作)
(1808년 5월 2일, 1814년 作)
스페인의 낭만주의파 화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에 활동했다. 그는 수많은 스페인 귀족들과 왕실인물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궁중 화가였음에도 폭력으로 치장한 권력의 누추한 모습을 권력의 가까이서 보았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스페인을 침공하여 왕을 갈아치우고 스페인을 친프랑스 국가로 만들려고 하자,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 시기 스페인 전 국토는 전쟁의 참화에 휩쓸렸다. 스페인 민중들은 프랑스의 폭정에 저항하며 게릴라전을 벌였고(이 전쟁에서 '게릴라'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탄생함.) 나폴레옹을 50만명이라는 대군을 투입하여 스페인을 어떻게든 붙들고 있으려고 했다. 대불동맹군, 특히 영국은 그런 스페인을 지원해가며 나폴레옹을 괴롭혔다. 유럽 군대가 알고 있던 전열보병들의 기사도 정신이 담긴 전투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끝이 보이지않는 살인과 광란 뿐이었다.
스페인인들은 압재자 프랑스군들 아주 잔인하게 죽였다. 프랑스군들 역시 전우의 보복을 위해 스페인인들을 아주 잔인하게 죽였다. 프랑스를 따르는 스페인 정부군은 게릴라들을 아주 잔인하게 죽였다. 게릴라들도 그런 정부군에게 아주 잔인하게 보복했다.
게릴라들이라고 서로 같은 편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게릴라들을 공격하여 재물을 빼았고 학살했다. 일부 게릴라들은 민중들도 학살하는 일개 도적집단에 불과했다. 그들을 돕는 영국군들조차 지휘관이 보지 않을 때면 스페인인들을 약탈하고, 강-간했다. 명장 웰링턴조차 자신의 부하들을 '쓰레기'라고 칭했다. 스페인인들도 틈만 나면 영국군 패잔병을 습격하고 시체에서 재물을 뜯어갔다.
빵 한조각을 위해 자식을 팔고 사람을 죽였다. 동료와 가족의 복수를 위해 적의 팔다리를 잘라 나무에 매달고, 끓는 물에 산채로 삶아죽이고,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아기를 총검에 꿰어 전시했다. 후환을 없앤다고 마을을 불태우고 마을사람들을 총살했다.
그리하여 1808년부터 1814년까지 약 6년간, 스페인은 현세에 강림한 지옥으로 변했다.
고야는 인간이 만든 광기를 그대로 겪고, 목격 해야만 했다. 대-중들에게 알려진 그의 그림중 전쟁을 다룬 것은 위의 맨 두 점이 제일 유명하다.
그리고 이외에도 아래에 소개할 <전쟁의 참화 Los desastres de la guerra>라는 이름의 82점의 판화를 그렸다.
안 그래도 염세주의적이고 사회비판적이었던 고야는 이런 전쟁의 광기를 직접 목격한 뒤로부터는 아예 인간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안고 살게 되었다. 이는 그의 남은 평생에 걸친 작품활동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야는 조국을 짖밟았던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스페인인들에게 매국노로 찍혔고, 이후 프랑스로 망명하여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채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드라마 샤프시리즈에서도 탈영한 영국군이 도적단에 합류해서 개판치는거 나오지 - dc App
프랑스군이랑 스페인 게릴라끼리만 그런게 아니라 게릴라끼리, 심지어 미친 영길리 새끼들도 학살했네. 스페인 주민들은 무슨 죄냐
1짤 이때까지 피의일요일 그림으로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