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6.25 전쟁 중에 전우고 뭐고 나 살려라 빤스런하신 분들이야 적잖이 있다지만, K 대령은 공간사에서 아예 "이 새낀 적전도주했다"고 공인된 인물임. 물론 전쟁 중 K 대령의 적전도주 등에 대해 특무대에서 조사한 게 있으니 사실이 뒤집힐 일은 절대 없다지만, 만일 그가 다른 운 좋은 적전도주자처럼 혼란스러운 전쟁 상황에 휩쓸리는 데 성공했다면, 우리는 훗날 K가 낸 회고록의 다음과 같은 개소리를 두고 갑론을박을 해야 됐을지 모름.


"내가 장관을 이중간첩으로 의심하고 있었는데 그 인간이 선수를 쳐서 날 좌천시켰다"

"내가 사령부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이미 후임자가 정해져 있었다(즉 자신은 절차대로 지휘권을 넘겼을 뿐 적전도주는 아니다)"

"그 와중에 육본의 ㄱ 대령은 나를 죽이려고 암살자들을 보냈으니 하는 수 없이 사령부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그 인간이 도주하자 사령관 대리가 된 참모장은 하루 지나 전사했고, 후임 사령관 역시 같은 날 자결해버린데다, 애초에 사령부랍시고 배치된 인원은 십 수 명이 전부였으니 사령부 상황에 대해 증언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며칠짜리 급편부대 과연 제대로 자료를 남기긴 했을까? 그러고보니 ㄱ 대령조차 전쟁 중에 순직했지.


그런 까닭에 지금 전해지는 증언들도 전선에서 싸운 참전용사 분들, 아니면 후기 상황 위주고, (어쩌면 어느 문헌고에 조용히 잠들어있을지 모르겠다만...) 육본에서 전선지도차 보낸 S 국장의 증언 말고 사령부 내부 사정에 대한 증언은 현재까지 공개된 건 없음.


K 입장에선 조금만 운이 좋았으면... 하고 생각했을까?




사례 둘,


6.25 전쟁 중 공군에서 유명한 모 사찰 폭격 거부 사건, 그리고 특정 표식 관련으로 당사자들이 싹 세상을 등지니까 누군가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돌리려고 시도했음. 회고록 등을 통해 자기홍보가 엄청났기 때문에 해당 인물에게 명예 시민증까지 수여될 정도로 기록 왜곡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여차저차 뒤집어지고 정리된 사건임.




사례 셋,


위의 공훈 논란과 비슷하나, 더 논란이 컸던 경우임.


6.25 전쟁 초기전투 중 육군이 내세우는 어느 전공은 조작이며, 실제 전과를 낸 이는 L 중위(이하 L 준장)이었다는 주장임. 가짜 전공이 생긴 이유는 그 영웅담의 주인공인 S 소위가 전사한 것을 가엾게 여긴 이들과 여기에 기생해 유명세를 얻으려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이하게도 두 얘기는 분명 상충됨에도 불구하고 신편 6.25 전쟁사에 같이 서술돼 있었음. 그러다 수 년 전 L 준장이 작정하고 공개 주장을 시작하였고, 졸지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대 육군군사연구소 대결로 번지고 말았음.


주장 자체가 쇼크였고, 실제 논란의 전공을 두고 의혹이 가시질 않았으니 여기저기서 짧게나마 회자된 사건이었는데 거두절미하고 쓰면, 문헌고를 싹 다 까봤더니 논란의 전공과 유사한 북한군의 피해 보고(262군부대 자동포 3중대 훈장 수여장)가 확인되었음. 또한 과거에 채집하였던 증언들 중에서도 이와 일치하는 것들(가령 6사단 7연대 대전차포중대 오봉환 하사의 증언)이 있었음. 이를 통해 과장된 전공(5인조 특공설)을 수정할 수 있었고, 이전에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전공(6월 25일 전투가 아닌 이튿날 26일 치른 전투로 한미 양국으로부터 태극무공훈장과 은성무공훈장을 수여받음)을 밝혔음.


물론 혹자들은 상황에 경우에 따라 훈장 수여도 조작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반론했는데, 솔직히 그런 것이 횡행하던 시절임은 맞다만... 사실 공적 확인에서 이를 중요시 여긴 이유는 굳이 공신력 찾기만이 아니었음.


왜냐면 타임라인을 검증하고 L 준장의 증언도 제고할 수 있었기 때문.


L 준장은 6월 25일 전투에서 파괴한 북한군 기갑차량은 없으며, 논란의 공적 조작은 1951년에 이뤄졌다고 했음. 하지만 상술한 바와 같이 25일에 북한군 스스로 손실을 인정하였으며 상훈 논의는 1951년이 아니라 1950년 9월(태극무공훈장)과 10월(은성무공훈장)에 이뤄졌음.


이를 뭐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음?


거기다 L 준장이 저술한 서적도 시간이 흐르면서 관련 서술이 변화한 것이 확인되었음. 그는 50년대와 60년대 낸 전투 수기에서는 25일의 전투 상황에 대한 설명과 상당부분 유사하게 서술하였으나 21세기 들어 서술이 지금과 같이 바뀌었음. 그 외에 서술도 전투상보와 다르거나, 모순점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음.


솔직히 L 준장의 행적을 생각하면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고 생각도 들고, 몇몇 사람들은 그 분을 신뢰한만큼 공적 확인 내용을 들여다 볼 생각도 안 했거나 했어도 비판적으로 접근했겠다만, 개인적으로 이 논란이 소름끼쳤던 이유는....


공적 논란 당시 이에 대해 폭넓게 증언할 지휘관급 참전 용사는 L 준장 말고 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단 사실임. L 준장도 논란이 파국으로 치달은지 얼마 되지 않아 작고하셨고.


막말로 7~80년대 증언 채집 안 했다면... 말을 말자.




사례 넷,



http://www.allthatarch.com/client/article/viw.asp?/client/news/viw.asp?cate=C03&nNewsNumb=20170926170&nidx=26171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6261407001


6.25전쟁 중 유격전사는 링크한 인천상륙작전 관련도 그렇고 뒤죽박죽인 게 꽤 있는데 이에 대해 연구 논문이 있긴 함.


그런데 그거 읽다가 허탈함을 주는 지적이 있었는데,


"증언자들은 부대사를 읽고 그걸 자신의 기억으로 윤색하고 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