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전 넷상에 panzerkatz(장갑묘)가 작성했던 글
대전차전을 본격적으로 상정한 돌격포 F형의 등장
1943년 2월 스탈린그라드에서 전멸한 기갑 사단 및 차량화 보병 사단들에 돌격대 대대를 배속하라는 명령서를 기갑총감에 임명된 구데리안이 작성했습니다.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어째서 구데리안은 이러한 명령을 내렸을까요. 단순히 더 많은 기갑 차량을 확보하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돌격포는 1943년 초 시점에서 다시 말해 판터가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이전에는 꽤 매력적인 기갑 차량이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돌격포는 보병 부대의 근접지원을 주목적으로 한 독일 포병 병과의 '직사 자주포'입니다. 허나 이러한 돌격포의 개발 목적은 독소전 발발 이후 독일 전차의 심각한 화력 부족 및 숫자 부족으로 인해 무시되게 됩니다. 화력상 돌격포보다 더 나을 게 없는 당시의 3호, 4호 전차를 불러봐야 소용이 없던 상황에서, 돌격포가 조우한 적 전차를 상대로 그냥 전투를 벌여도 무방했기 때문이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돌격포는 어쩔 수 없이 대전차 임무에도 뛰어들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42년 3월부터 '75밀리미터 40형 장포신 돌격포'를 탑재한 돌격포 F형이 생산되게 됩니다. 1941년 9월 28일 독일 국방군 총사령부는 히틀러의 돌격포 성능 향상 지시를 육군 총사령부에 전달했습니다. 이러한 지시가 떨어진 배경에는 소련의 신형 전차인 T-34와 KV-1에 대항하기 위한 급응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죠. 아예 대놓고 돌격포를 대전차 임무에 써먹겠다는 소리였죠.
이렇게 장갑과 화력이 강화된 신형 3호 돌격포는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 전차 9대를 20분만에 격파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쿠르트 프로인트너(Kurt Pfreundtner) 기병영사(Oberwachtmeister)가 지휘했던 독일 제244 돌격포 대대가 달성한 위업이죠.
* 영사(令士, 英士): '대한민국 국방개혁 2020'의 일환으로, 하사·중사·상사·원사 4계급으로 이뤄져 있는 부사관 계급 체계를 5계급으로 늘리는 방안에 포함돼 있는 원사와 상사 사이에 존재하려고 했던 계급. (퍼온이 주 - 해당 글쓴이가 글작성 당시 Oberwachtmeister를 번역할 계급이 마땅치않아 사용한듯)
구축전차라는 개념은 이 때 완성이 된 걸로 여겨집니다. 대전차전을 충분히 소화 가능한 장갑과 화력을 가진 돌격포로 말이죠. 1942년 12월에 개발요구서가 제출된 4호 구축전차는 이 3호 돌격포 F형의 개량형으로, 3호 돌격포 F형의 강화형인 3호 돌격포 G형과 개발 개념이 크게 다르지 않았죠. 돌격포가 어쩔 수 없이 대전차 임무의 한축을 담당하면서 구축전차화되었고, 그 결과 돌격포에 매력을 느낀 구데리안이 기갑 전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포병 병과를 압박, 기갑 병과로의 돌격포 편입 행위를 시도했습니다.
그게 아니어도 당시 구데리안은 독일의 모든 기갑 차량은 효율적인 기갑전 수행을 위해 기갑총감 휘하에 있어야 한다는 타 병과 입장에서 보자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죠.
기갑총감 구데리안의 개혁 혹은 폭거
당시 포병 병과와 파워게임을 벌였던 구데리안은 히틀러의 중재로 월별로 100대의 돌격포 배치권을 부여받았는데, 1943년 4월 1일 구데리안이 내린 편제명령 1107과 동년 4월 10일에 내린 편제명령 1157 및 1158에 따라 기갑 사단에 배속될 전차돌격포 대대 편제가 결정되었고, 이는 3호 전차 3대, 돌격포 93대 구성이었죠. 추가로 구데리안은 기갑척탄병 사단에 배속될 전차돌격포 대대 편제 명령을 6월 20일에 내렸습니다. 편제명령 1157a와 1159 A형에 따라 이 기갑척탄병 사단 예하 전차돌격포 대대는 총 45대의 돌격포를 보유하기로 돼 있었죠.
따라서 구데리안이 이양받은 돌격포 100대는 기갑 사단의 경우 1개 돌격포 대대를, 기갑척탄병 사단의 경우는 2개 돌격포 대대를 편성할 만한 분량이었죠.
구데리안이 기갑 총감에 취임한 1943년 2월부터 12월까지 3,115대의 돌격포가 생산되었고, 3월 분량부터 구데리안이 100대씩 떼어갔다고 추정하면 무려 1,000대가 기갑 병과에 넘어간 게 됩니다. 1년치 돌격포 생산량 중 결코 일부라고 할 수 없는 1/3 분량이 구데리안 수중에 떨어진 것이죠.
이렇게 포병 병과를 압박한 구데리안이 또다른 먹이로 삼은 건 희미한 존재감을 가진 독일 전차엽병부대(Panzerjagertruppe)였습니다. 페르디난트, 야크트판터, 야크트티거는 이 독일 전차엽병 병과에 속한 차량이었죠. 독일 전차엽병 병과는 독자적인 병과이긴 한데, 워낙 존재감이 없어서 1943년 기갑총감이 된 구데리안의 영향력하에 들어간 후에는 기갑 병과와 경계가 점점 모호해집니다. 본래 전차엽병들은 검은색 전차병 제복을 입지 않았는데, 1944년에는 이들 또한 검은색 제복을 착용하게 됩니다.
게다가 전차엽병차량(Panzerjager)이 구축전차(Jagdpanzer)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면서 전차엽병차량에 전차엽병이 아니라, 전차병이 탑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는 구데리안이 포병 병과의 기갑 차량을 제외한 모든 독일 기갑 차량의 개발, 배치, 운용, 관리, 편제를 담당하게 되면서 기갑 병과로 위주로 관련 업무가 이루어졌기 때문이죠.
당연히 전자엽병차량 또한 구데리안이 관할이 되었고, 자부심 넘치는 이 독일 기갑 장교는 전차엽병 병과의 사정 따위 봐줄 아량이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구데리안은 자신이 기갑총감에 취임한 후 개발 중에 있던 Panzerjager를 Jagdpanzer로 창씨개명해버렸으니까요. '전차를 사냥하는 차량(Panzerjager)'이 '사냥하는 전차(Jagdpanzer)'가 되면서 사실 독일 전차엽병 병과는 망한 거나 다름 없다고 해야겠죠.
전차엽병(戰車獵兵)이라는 일본식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독일 전차엽병 병과가 대전차(Panzerabwehr)라는 명칭을 지양했기 때문입니다. 대전차라는 명칭은 '전차를 막는다'는 수동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죠. 이에 비해 전차엽병은 '전차를 사냥한다'는 능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죠. 주요 논지는 언제까지 적 전차가 아군을 유린하는 꼴을 보며 수세적으로 대응할 것인가였죠. 선제 대응, 바로 적 전차를 찾아서 부수자는 공세적 개념에 바탕을 둔 용어였죠.
1937년과 1938년에 걸쳐 독일 전차엽병 병과 내부에서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대전차부대(Panzerabwehrtruppe)라는 구태의연한 이름은 곧 버려지게 됩니다. 이에 따라 1940년 초부터 기갑 사단과 차량화 보병 사단 예하의 소대, 중대, 대대 급 대전차 부대의 명칭이 전차엽병부대로 모조리 개칭되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 시점에서 선제 대응이 가능한 기동성이 있는 전차엽병차량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거죠.
독일 전차엽병 병과는 이러한 공세적 개념을 현실화하기 위해 차량화를 진행하고 있을 뿐이지 여전히 유연성이 부족한 견인식 대전차포를 주력으로 삼고 있었으니까요. 전차엽병 개념을 사용하면서 독일 전차엽병 병과는 1940년 3월에 1호 전차 B형을 개수해 최초의 전차엽병차량인 1호 전차엽병차(Panzerjager Ⅰ)를 개조생산했습니다. 그리고 독일 전차엽병 병과의 이 기념비적인 차량 5대가 제5 전차엽병 대대에 배치되어 1940년 서부 전역에 투입되었습니다.
1호 전차엽병차는 비교적 성공이었지만, 그 성능적 한계를 절감한 독일 전차엽병 병과는 더욱 큰 대전차포를 탑재한 전차엽병차의 개발을 서둘렀죠. 1942년 4월에는 알케트 사제 2호 전차 차체인 LaS 138에 노획된 76.2밀리미터 대전차포를 탑재시킨 LaS 762가 개조생산되었고, 이어 동년 5월에는 프랑스제 견인차량 겸 병력 수송 장갑차인 로렌을 바탕으로 마더Ⅰ이 개조생산, 동년 6월에는 그 유명한 마더Ⅱ가 생산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수많은 전차의 차체를 이용해 전차엽병차량이 생산되었고, 중전차 개발 경합에서 패배한 포르셰 티거의 차체를 이용해서 만든 최초의 진정한 근접전투용 전차엽병차인 페르디난트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비록 경합에서 떨어진 전차의 차체를 유용한 것이었지만, 이는 전차엽병 병과 입장에서 전환점이기도 했습니다. 나스호른까지만 해도 화력만 강력했지, 얇은 장갑으로 근접전투는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중장갑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300마력 엔진 2개를 장착한 신형 차제를 확보하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새로운 전차엽병차량은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애시당초 1942년 9월 총통 회의에서의 결정은 실패한 호랑이 전차의 차체에 88밀리미터 71구경장 주포를 얹은 전면장갑 200밀리미터의 중돌격포를 개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초기 개발명 또한 Sturmgeschutz mit der 8.8cm lang, 즉 '88밀리미터 장포신 주포 탑재형 돌격포'였습니다. 당연히 중돌격포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페르디난트는 제190, 제197, 제600 중돌격포 대대에 배치될 예정이었죠.
하지만 1943년 2월 28일 구데리안은 중돌격포 또한 기갑총감 관할하에 있다며, 원래 페르디난트를 지급받기로 한 포병 병과 소속의 중돌격포 대대인 제190 및 제600 중돌격포 대대를 경돌격포 대대로 편제변경해버리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쐐기를 박기 위해 앞서 언급된 돌격포 대대들에 3호 돌격포를 지급하는 기행을 벌였죠. 추가로 제197 중돌격포 대대는 제653 중전차엽병 대대로 개칭해 전차엽병으로 소속을 바꾸어버렸습니다.
그걸로는 성에 안 찼는지 1943년 3월 31일 구데리안은 '포르셰 티거 차체를 이용한 88밀리미터 돌격포'라는 명칭을 '포르셰 티거 전차엽병차'로 개명했습니다. 구데리안 상급대장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던 거죠. 이 때문에 공식적으로 페르디난트는 중돌격포 겸 중전차엽병차로 분류됩니다. 전차엽병 병과 입장에서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죠.
이러한 구데리안의 기행에 화가 난 건지, 어이를 상실한 건지 육군 총사령부 편제과는 1944년 2월 27일자 보고서에 페르디난트가 돌격포라는 점을 환기시키기 위해 "Elefant" fur 8.8cm Sturmgeschutz Porsche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편제과의 태도에도 상관없이 기갑총감 구뻔뻔 상급대장은 1944년 4월 24일자 기갑총감부 공문서에 모르쇠 식으로 그저 페르디난트라고만 기록했죠.
중장갑, 대화력의 전차엽병차량인 야크트판터와 야크트티거는 공세적 개념을 지향하는 독일 전차엽병 병과의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었죠. 그래봤자 중장갑과 대화력으로 전선에서 아군 보병을 근접지원하고, 적 전차까지 무력화한다는 개념을 돌격포 F형으로 1942년에 이미 실현한 돌격포병(Sturmartillerie)의 재래에 지나지 않았죠. 게다가 페르디난트의 경우처럼 이 두 차량의 개념을 정립하고 개발을 요구한 것은 독일 포병 병과였습니다.
'독일 기갑교 교주'라고 불러도 반대할 사람 하나 없는 기갑 병과의 거두인 구데리안이 전차엽병차량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기갑총감이라는 직책에 오르면서, 돌격포가 모태인 대전 중후반의 전차엽병차량이 구축전차라는 묘한 이름을 가지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고 할까요.
구데리안의 유산
결국 돌격포나 전차엽병차량이나 구축전차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거죠. 돌격포는 포병 병과 입장에서, 전차엽병차량은 전차엽병 병과 입장에서, 구축전차는 기갑 병과 입장에서 부르는 이름에 지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개발 개념이나 운용 실태를 보면 셋 다 같으니까요.
돌격포는 대전차전의 한축을 담당하면서 '보병 지원용 직사 자주포'라는 정체성을 상실했고, 중장갑의 전차엽병차량은 구데리안이 기갑총감이 되면서 돌격포에서 창씨개명된 존재들이고, 구축전차는 단지 앞서의 차량들에 기갑 병과가 구데리안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멋대로 붙인 이름이라고 하면 요약이 될 듯합니다.
끝으로 《히틀러 최고사령부》의 저자 제프리 메가기는 구데리안이 기갑총감으로서 독일군 내부에 새로운 갈등을 초래했다고 했는데, 구데리안이 독일 포병 병과 및 전차엽병 병과를 상대로 저지른 행위들로 볼 때 메가기의 주장은 틀린 주장이 아닌 듯합니다. 타 병과 입장에서 보자면 구데리안의 행동이 폭거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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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L. Jentz, Panzertruppen 2: The Complete Guide to the Creation & Combat Employment of Germany's Tank Force 1943-1945 (Schiffer Publishing 2000)
George F. Nafziger, GERMAN ORDER OF BATTLE IN WW II: panzers and artillery in World War II (London, Greenhill Books 1999)
Peter Chamberlain, Hilary L. Doyle, Technical Editor: Thomas L. Jentz, Encyclopedia of German Tanks of World War Two (Arms & Armour 1993)
Walter J. Spielberger, Hilary L. Doyle , Thomas L. Jentz, Heavy Jagdpanzer: Development - Production - Operations (Schiffer Publishing February 2007)
Tom Jentz & Hilary Doyle, Sturmgeschutz III Assault Gun 1940-42 (Osprey Publishing 1996)
Tom Jentz & Hilary Doyle, Sturmgeschutz III and IV 1942-45 (Osprey Publishing 2001)
Bryan Perrett & Mike Chappell, Sturmartillerie and Panzerjager 1939-45 (Osprey Publishing 1999)
Thomas L. Jentz & Hilary L. Doyle, Panzer Tracts 08 Sturmgeschuetz - s.Pak to Sturmmoerser (Panzer Tracts 2000)
Walter J. Spielberger, Sturmgeschutz & Its Variants (Schiffer Publishing 1993)
아흐퉁판처, 3/4호 돌격포 항목
Orca 님의 Panzerjager에 대해서 간단히 - http://note100.egloos.com/532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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