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야나기 작전이라고 불리는 일본 제국 해군 잠수함의 유럽행 작전은 사실 잠수함이 돌아오는길에 격침당하는 결말로 끝나기는 했어도 어떻게든 유럽에 가서 독일과 접선했다는 점에서, 독일과 일본의 추축 동맹이라는것이 실재했음을 알수있는 한 단편이라고 볼수있다.



1. 일본 제국 해군의 잠수함 I-30는 1942년 일본 히로시마현 구레항에서 출항하여 페낭섬과 희망봉을 거쳐서 독일이 점령중이던 프랑스의 로리앙에 도달

각종 천연자원과 어뢰 설계도를 건네주고 독일로부터 최신 레이더기술이나 기관포나 대전차포등을 받아다가 일본으로 돌아오던중 연합군에 의해 싱가포르 근처에서 격침


2. I-8은 1943년 6월 구레항을 출항 하였는데, 목적은 독일이 무상공여한 유보트를 인수하기 위함이였음.

해당 잠수함은 싱가포르를거쳐 페낭에 들려서 함상기 조종사와 천연고무를 적재한뒤에 인도양을 남쪽으로 최대한 빙 돌아서 대서양에 진입 아조레스 제도근처에서 독일해군의 유보트와 접선하였는데 이때 이 유보트로 부터 최신형 레이더를 건네받아서 장착, 이후 비스케이만 방면으로 이동 루프트바페의 호위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브레스트에 도착. 참고로 이때 접선한 유보트는 바로 얼마뒤에 미군에의해서 격침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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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브레스트에 도착한 I-8은 독일측에 동남아시아에서 가져온 각종 자원과 일본 제국 해군 장비들을 넘겨줬고, 독일측은 기관총이나 기관포등 각종 무기의 견본을 제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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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선전부에서는 동맹인 일본이 대서양에서도 활동하고있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하였으며, 잠수함 승조원들은 파리를 관광하고 고성에서 잠도자고 관광을 즐겼음.

장교들은 베를린까지 가서 되니츠를 면담하기도 하고.


그리고 독일제 장비들과 주독일 일본대사관 해군 무관 요코이 타타오 소장을 탑승시키고 출항한 I-8은 적도를 통과하던중 독일에 보낸 통신이 연합군 감청부대에 의해 감청되어 바로 그 다음날 뇌격기들에게 공격받았지만 아슬아슬하게 해당 해역을 빠져나와서 싱가포르를 거쳐서 12월 말에 구레항에 입항하는데 성공함. 그리고 해당 함선의 함장은 바로 진급.


3. I-29는 구레항을 1943년 4월 출항 모잠비크 해협에서 독일 유보트와 접촉하여 독일에서 활동하던 인도의 독립운동가인 찬드라 보세를 태우고 동남아에 내려주었는데 보세는 거기서 비행기로 도쿄에 도착함.

I-29는 이후 싱가포르에 들려서 각종 천연자원과 주독일 일본대사관에 보낼 자금, 독일에 전달할 각종 해군 무기들, 아카기급 항모 설계도등을 실은 뒤에 마침 싱가폴에 도착한 I-8로부터 독일에서 제공받은 레이더를 인수받아 장착함. 그리고 출항하여 1월경 마다가스카르에서 독일측에 무선 보고를 헀는데 이게 연합군에 의해 감청되었고, 또 얼마뒤에 희망봉을 돌때도 감청되었음.


이후 어찌저찌 독일 잠수함과 접선하여 식량과 연료를 보급받은 I-29는 북상을 하던중 연합군 초계기에 공격을 받았고 간신히 살아남아서 1944년 3월에는 비스케이만에 도달 루프트바페의 호위를 받았는데 영국 본토의 항공대가 이를 포착하고 출격하여 I-29를 격침하려 헀지만 독일 공군의 폭격기를 떨구는 수준이상 성과를 내지못했고 I-29는 독일 점령하 프랑스의 로리앙에 입항하는데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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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항한 잠수함은 독일측에게 엄청난 환대를 받았고 당장 해당 잠수함에는 나치독일의 최신식 레이더가 장착되고 승조원들은 파리관광에 궁전에서 잠도 자고 거기에 함장은 베를린에 가서 히틀러로부터 2급 철십자 훈장을 받기도 함.


이렇게 1달간 머문 일본 해군 승조원은 Me 163 코멧(나치 독일이 개발한 제트 전투기)와 Me 262 슈발베(역시 나치독일의 제트 전투기)의 설계도와 여러 승객들을 태우고 다시 출항하여 큰 일 없이 싱가포르까지 도달하여 중요 인원을 내려주고 잠수함은 화물들을 실고 구레로 이동함.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연합군 측에서 모조리 다 파악하고 있었음. 해당 잠수함의 활동은 미 해군 태평양 함대에 전달되었고 이에 미 태평양 함대 소속 잠수함이 출격 싱가포르에서 구레로 이동중인 I-29를 격침하는데 성공. 승조원중 딱 1명만 살아남았다고 함.


4. I-52는 1944년 3월 구레를 출항하여 각종 기술자들을 싱가폴에서 태우고 인도양과 희망봉을 거쳐서 북상하였음 그러던중 6월에 이르러 독일주재 일본 해군 무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때문에 목적지가 노르웨이로 변경될수도 있음을 알려주었음. 게다가 이 잠수함은 출항시점부터 대서양에 도달할때까지 모든 통신을 모조리 연합군에게 감청당하고 있던 상황.


그리고 6월 22일경에 독일 잠수함과 접선하려고것도 연합군이 감청하였고 카사블랑카에 주둔하고있던 미해군은 출항하여 해당 잠수항을 격침하려함. 그런데 독일 잠수함은 일본군에 물자를 전달한뒤에 교묘하게 해당 지역을 빠져나가 미군의 감시망을 피해 서인도제도로 탈출했지만 일본 잠수함은 미 해군에 포착되었고 결국 6월 23일 격침당함.


결국 일본 정부는 더이상 유럽에 잠수함을 보내지 않기로 결정.


아무튼 신기하기는 한게 용케도 참 제해권을 연합군이 휘어잡다 시피했는데도 용케도 독일까지 갔다 싶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