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6.25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올라오길래 그냥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약간 올렸는데 생각보다 많이들 봐줘서 고마웠다.

글솜씨도 별로고 한국전쟁 당시 이런저런 일들은 다들 집에서 들었을거라 생각해서 별 특별하진 않고 "그냥 이런 일도 있었다" 정도로 올렸었는데 말야...  

사실, 교차검증 뭐 이런게 가능할리가 없는 옛날 옛적에~ 수준인지라 뭐 신뢰성 부분은 글 쓰는 나도 뭐라 말할순 없으니 그냥 당시 분위기의 편린 정도로만 받아들여줬으면 고마울거 같어.




1. 밀고자 이야기.


아무래도 밀고자 이야기에 다들 감정적으로 느끼는거 같더라고.


동네에서 원래 평이 안좋은 편이었다고 하는데 누가 댓글로 "저런 놈은 일제시대에는 일제에 붙었겠지"라고 쓴게 있었는데 정말로 친일파였었어. 헌병보조원이었고 그것 때문에 동네에서 왕따아닌 왕따였다고 하더라고.


작은 할아버지가 끌고가서(...) 직접 알아낸거라는데 국군 장교 집안이라지만 그땐 군부대가 전방으로 대부분 빠져있고 지금처럼 연락 할 길도 많지 않으니 일단 신고해서 조부모들이 끌려가고 나면 애들만 있는 빈 집에 들어가 한몫 챙겨서 지방으로 튈려고 했다고 하더라. 이것도 작은 할아버지-할머니-어머니... 라인을 거쳐 들은 이야기이니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친일파+빨갱이 앞잡이+기회주의자라는 기가막힌 조합을 가진 놈인데다 본인 형님 가족들을 정말로 죽일 뻔한 놈이라 작은 할아버지는 죽여버릴꺼라고  했다는데 할머니께서 그 놈도 다 살려고 한거니 죽이는건 불쌍하지 않냐라고 하셨다고 하더라고. 뒤에 노역형 받아 어디로 끌려갔다고 하는데 그놈 끌려가고 그 놈 가족들도 어디로 사라졌다고 하더라고.




2. 할아버지 입대썰



1.4 후퇴때 부산까지 피란을 내려갔는데 그때 할아버지가 말그대로 갑자기 입대하셨다고 해.

이게 뭐 생각하고 자시고가 아니라, 그냥 아침에 외출하셨다가 지나가는데 모병소보고 순간 욱해서 그날로 입대해서 떠나셨다고 하더라고 "집에다 아무 말도 안하고"



할머니 입장에선 피란지에서 아침에 잠깐 외출하러 나간 남편이 갑자기 연락 두절이 되었다가 1년후에 군복입고 제대했다고 털래털래 다시 나타나신걸 보니 꽤나 황당하셨겠지만, 그 시절 분답게 그냥 웃고 한번 구박하고 넘어가셨대(...사실 말이 전해지면서 과정이 많이 순화되긴 했겠지)



전글에서 댓글로 PTSD 이야기도 나왔지만, 사실 그쪽과는 관련없이 원체 파락호 기질이 좀 있으신 분인데다 감정대로 살던 분이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골치를 썩힌 분이거든. 당장 이런 감정적 입대도 집안 살림을 책임진 양반이 아무 말도 없이 입대해서 할머니 혼자 집안 식구들 떠맡게 된 것도 있고... 덕분에 우리 집은 친가와 거의 의절 단계까지 갔지만 이건 중요한게 아니니 패스하고...



아무튼 군대 이야기는 거의 안하시고 그냥 "전쟁에 참전했다"란 이야기만 들었는데 돌아가시고 얼마후에 보훈처에서 연락이 왔어. 할아버지께서 참전용사시니 대전 현충원에 안장하시라고. 그래서 지금 대전 현충원에 할머니와 같이 안장되어 계시고.

(할아버지에게 전쟁에 관한 이야기 들은거라곤 몇개 안되는데 1. 본인은 카빈총이 가볍고 잘맞아서 주로 썼다 2. 군복보다 평복을 많이 입고 다녔다 3. 도망치는 북한군 쫓다가 머리가 아파서 잠깐 철모를 벗었는데 총알이 철모와 화이바(헬멧 라이너) 사이에 끼여서 "뺑그르르 돌고 있더라" 라는 것 뿐이었거든. )

 


그때 할아버지 계급이 하사(지금으로 치면 상병)란 것과 화랑무공훈장을 받게 되었다는 것도 알았는데 어느 부대 소속이었고 어떤 전선에 있었는지는 결국은 못알아냈거든. 나름 이바닥 취미 20년 넘게 하면서 기록 뒤지는건 어느정도 한다 생각했는데도 못 찾겠더라고. 보훈처에도 그냥 군번, 계급, 수훈사실만 있었고 말야.


아무튼 먹고 살기 바빠서 그 뒤로 기록 추적은 포기했어.....




3. 작은 할아버지 이야기



작은 할아버지는 월남 하신후 얼마 안있어 군문에 들어가셨다고 하더라고. 시기적으로 보면 국방경비대에서 국군으로 개편된 얼마 후였던거 같어

(할아버지보단 그래도 전쟁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하신 편인데, 아무래도 "라떼는 군대뻥"이 좀 섞여 들어가 있으니 어느정도 가감하는건 각자의 몫)



앞서 말한대로 정보장교 였다고 하는데 서울 재수복 이후 방첩으로 자리를 옮기셨다고 해. 그래서 그때부턴 전선에 나가는 대신 서울과 인천쪽에서 활동하셨다고 하더라고.


당시에 서울은 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이제 서울까진 절대 전화도 안미치고 UN 원조로 복구도 시작된다!!!'라는 희망이 퍼져서 오히려 활기가 돌 정도였는데 문제는 인천이었다고 하셨어.


당시, 인천에 대해 썰을 푸시면 "거기에는 빨갱이 간첩, 국군 방첩요원과 헌병들 그리고 휴가나온 장병들, 중공 스파이, 동네 깡패들, 정치 깡패, 화교 폭력배들, 놀러나오거나 부패해서 뒷돈 챙기려는 미군들, 쪽바리 밀수꾼들"이 판치는 곳이었다고 해. 전쟁중의 국가 수도 바로 옆의 항구 도시였으니 이해는 가더라.



방첩장교였으니 당연히 위에 언급된 애들 다 잡아들이는 일을 하셨는데, 사실 국군이 간첩이나 중공 스파이(..)들 고문하고 이런 일이 절대까진 아니어도 거의 없었던게 국군엔 그런 훈련을 받은 요원이나 기술이 없어서 그냥 미군들이 다 가로채갔다고 하더라고. (물론 그렇다고 아주 논건 아니고 한밤에 뒷골목이나 야시장에서 권총들고 총격전 벌이는 일도 종종 있으셨다는데 뭐 진실일지는....)


그러다보니 국내 폭력배들이나 밀수꾼들 잡는게 주도니 업무였었는데 가난한 나라 지원도 제대로 못받고 위험한 일을 하시다보니 뒷돈을 꽤나 챙기셨다고 하더라. 본인은 말을 안하시는데 큰 고모 말에 의하면 2-3일에 한번씩 본가에 오셔서 '따블빽 가득한 지폐'를 보여주며 자랑하시곤 그 돈을 그대로 술집 마담에게 처박기만 했다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게 일본인 밀수꾼들 이야기였는데, 당시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걸 구할만한 거의 유일한 루트가 일본이다보니 일본인 밀수꾼들이 많았고 외국인이다보니 보통은 방첩대나 헌병대가 잡아서 미군에게 넘겨줘야 했대.


그런데 아무래도 광복하고 얼마 안지난 시점인데다 전쟁터에 밀수질 하러 오는 놈들이면 꽤나 예의없고 거친 놈들이다보니 잡혀서도 자기네 "제국군 시절"(풋) 군대 시절 계급 이야기하면서 우리쪽 헌병들을 지 당번병마냥 부려먹으려들고 큰소리쳐대고 해댔다고 말씀하시더라.


아무래도 미군에서 인수해가는거니 처음에 얌전히 대해줬더니 이것들이 점점 도가 지나쳐서 -미군이 붙잡아서 일본에 넘겨줘봐야 금방 풀려나서 또 그짓하니까- 백주대낮에 깽판치며 돌아다니기 시작하더란 거야. 그래서 날잡고 헌병들 잔뜩 동원해서 죽이지만 않고 두들겨패서 미군에 넘겨주니 그 다음부턴 자기들도 몸조심했다고 하더라.




뭐 내가 기억하는 친가 이야기는 딱 여기까지임. 알고보면 다른 집들이 모두 전쟁통에 겪었던 이야기의 일부분일테고, 이중 어디까지가 진실일지도 나도 잘 모르겠으니 그냥 '그 당시의 분위기가 이정도였구나' 정도만 들어주면 고맙겠어.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별볼일 없는 글 읽어줘서 감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