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병력동원 수준 계산해서.... 대신에 우리 교과서에서 말하는 머몽항쟁 이후 좀 지나서 조선초 되니께 200만 따리로 떡락해서 그렇지(열심히 강화도에서 무신정권이 치어리딩 했나봄) - dc official App
호적에 안잡혀서 2백만 따리 된거 아니냐 - dc App
호적에 안잡힘+머몽항쟁기 학살+이후에도 부원배들이 개지랄 떰+홍건적+왜구 - dc App
1000만이면 너무 높게 잡았는데 그 당시 국토 대부분이 야생인데 어케 인구 버팀.?? - dc App
고려 동원력 보고 하는말인데 과장도 있겠지? 근데 인간들 다 뒤지면 그냥 자연 되는거임... 참고로 호랭이들은 늪지대 좋아해서 항상 머한에선 평야보다 구릉지가 가치높은 땅이었음 - dc App
내가 아는 범위는 고려를 오히려 200만에서 300만으로 잡던데 1000만이 어케 계산했는지 궁금한데 자료 볼수 있을까? - dc App
1000만은 조선 중기쯤 가야 나오는 인구인데 조선의 강남농법 도입등 없이 고려때 그수치가 나온다고? - dc App
내가 존나 예전에 봤던거기도 하고 술 존나 처먹어서 지금 찾기는 힘들듯? 우러전 상황 보기도 바쁜 야근한 군붕이좀 이해해줘라 ㅠㅠ 그냥 당시 고려의 병력 동원규모 등으로 추정한 인구라 - dc App
일단 삼국사기 견훤전에 언급된 후백제 정토군-건국시절 고려는 10만 5천을 모아서 후백제 잡병 5만 내외를 조져버림 이후 70년쯤 뒤에 여요전쟁으로 서로 대규모 치고박긴 하는데
ㄴ 여요전쟁 이후에 여진정벌할때 십만넘게 일으켰다 쳐발리고 다시 일으키고 쳐발리고를 몇번 반복했을껄 결과적으로 고려가 여진한테 gg치고 여진도 고려랑은 안싸워아겠다 싶게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