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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고구려는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사군을 몰아내고 고조선의 영토를 수복하였으므로 고조선에 대한 계승 의식을 가졌을것이라고 생각하나


고구려의 건국 신화에서 보이듯 고구려의 정통성은 고조선과 동시기에 존재했던 부여에서 갈라져나오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고구려인은 본인들을 부여의 후계국가로 여기며 부여에 대한 계승 의식을 보였다.


또한 고구려는 본인들 스스로를 천손, 즉 하늘의 자손이라고 자칭하였기 때문에 이전 국가였던 고조선에 대한 계승 의식은 크게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고조선 계승의식을 보인 기록은 별로 없다.

(고구려의 토속 신앙에서 기자신이라는 기자 조선과 연관이 있어보이는 흔적은 있지만 문화적으로 고조선을 중요시하진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이 항복후 당나라로부터 조선왕으로 책봉된 것, 소고구려가 고려조선이라고 불린 것, 연남산 묘지의 요동 조선인을 보면 중국 측에서는 고구려를 고조선의 후계 국가로 인식하였으며, 그에 따라 고구려인들도 고조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인식은 가지고 있었던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백제도 대동소이하게 왕성을 부여씨로 하고 한때 국명으로 남부여를 사용하는 등 본인들을 부여의 후계국가로 여기며 부여에 대한 계승 의식을 뚜렷하게 보였으나 고조선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신라도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드물지만,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건국 신화에서부터 고조선과의 연관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건국시기에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6촌(=6부) 주민들이 고조선에서 남하한 유민들이라고 삼국사기에서 언급하고 있다.)


고조선과 신라의 연관성은 고고학적으로도 증명이 되는데, 경상도 지역에서 고조선 양식인 혈구(血溝)가 여러 줄인 동검, 동모(銅矛)의 고리 등 원삼국시대 유물이 출토된 것에서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거리적으로 제일 먼 신라가 고조선에 대한 계승 의식을 뚜렷히 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