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https://twitter.com/kamilkazani/status/15523247651546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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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소련 농담 하나,
Q) 길고, 초록색이고, 소시지 냄새가 나는 것은?
A) 모스크바-트베르 노선 기차
왜일까? 말하자면 소련의 지방 거주민은 모스크바로 장을 보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지방의 상가엔 음식이 없었다. 흔히 정말 문자 그대로 말이다. 오늘은 '공급 범주'란 표현에 대해 배워볼 것이다.
중앙계획경제 하에서 특정 지역에 식량을 공급하는 건 국가였다. 국가는 각 도시에 4가지 '공급 범주' 중 하나를 배정해, 상점에 얼마나 많은 식량이 공급될 건지를 결정한다. 모스크바는 트베르 등의 도시와 비교해 소름끼칠 정도로 잘 공급받는다.
낮은 공급 범주인 소련의 지방 도시들은 상점에 식량이 전혀 없을 수도 있었다. 어쩔 땐 고위 범주의 도시들에서 가져가고 남은 찌꺼끼만 갖게 될 수도 있었다. 해조류나, 아니면 개같은 '바다 반죽' 같은 거. (1972년 소련의 요리사들이 만들어낸 크릴 새우 반죽. 소스나 스프레드로 쓰임.)
여기서 현대 서구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기에 반복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 '식량이 없다'고 할 때, 이는 무슨 별식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1980년 펜자를 방문했던 내 모스크바 친구는 식재 선반이 말 그대로 비어있는 걸 보고 충격받았다. 살 게 없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존할까? 이제 다차(러시아식 시골 주택)의 유용성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휴양 농업이 아니라, 식량을 얻기 위한 자급자족 농업이다. 극도로 피곤하고 비효율적이었지만, 많은 지방 거주민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선반이 비어 있으니, 감자 같은 건 직접 재배해야 한다.
또한 회색 지대가 있었다. 본인이 식량을 재배하지 않아도, 식량을 재배하거나 훔치는 사람한테서 살 수는 있었다. 소련엔 거대한 지하 경제가 존재했고, 이는 많은 인구에게 생계수단을 제공했다. 현재 러시아처럼 말이다. 시몬 코르돈스키의 글 '차고 지대(гаражный сектор)'를 보라.
물론 지하 경제의 많은 부분이 국가의 부수입이었다. 예를 들어 대기근동안에도 토르그신(='외국인과의 거래'란 뜻, 그 이름과 다르게 소련 시민이 애용했다.)에선 확실히 식량을 구할 수 있었다. 루블로 지불할 수 없다는 걸 빼면.
스탈린 통치기 최악의 기근동안 토르그신에선 무슨 음식이든 금은은 물론이고 달러 같은 경화로 살 수 있었다. 이는 굶주린 인민에게서 재산을 짜내기 위한 국가적 수단이었다. 금을 가져와 식량과 교환하라. 루블은 받지 않는다.
소련 후기에 이 역할은 '집단농장 시장(колхозные рынки)'이 수행했다. 가게는 비었어도 이런 시장(=국가)에선 식량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가격은 정가보다 몇 배씩 높았다.
이렇듯 지방은 기초적인 생계 문제에 시달렸지만 모스크바는 풍족하게 공급을 받았다. 그 결과 대다수의 지방에서 수백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모스크바까지 장을 보러 갔으며, 이는 '소시지 열차'라 불렸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자기들' 가게를 털어가는 이 외지인들을 싫어했다.
소시시 열차는 종종 지역 기업이 조직했다. 공장은 노동자들을 위해 모스크바의 '박물관'으로 '관람'을 기획한다. 실제로 노동자들은 장을 볼 것이다. 사라토프 노동자들은 사라토프에선 구할 수 없는 사라토프제 식량을 사기 위해 모스크바로 왔다.
모스크바 당국은 굶주린 지방 거주민들이 식량을 다 쓸어가지 않게 '한손' 분량만 사갈 수 있다고 제한했다. 지방 거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줄을 서고, 결제한 뒤, 다시 줄을 선다. 이를 반복했다. 계속해서.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모스크바는 지방 거주민에 대해 더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1990년엔 현지인만 받을 수 있는 의무 '지불 카드'를 도입했다. 글자 'MA'는 최상위 범주인 모스크바를 의미한다. 모스크바'주' 출신이라면, 'MO'가 된다. 이 정도도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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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불 카드는 풍족한 모스크바 상점에서 굶주린 지방 거주민을 거부하기 위해 도입됐다. 실제론 직원들이 항상 서류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지방 사람들은 옷차림과 생김새만으로도 구분가능했으니, 의심스러워 보이는 사람들한테서만 카드를 요구했다.
소시지 기차는 '중앙계획경제'의 핵심이 '중앙'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중앙계획적인 소련은 극심한 불평등의 계층 사회였다. 음식을 살 수 있냐없냐를 결정하는 건 현금이 아니라 할당된 신분이었다.
또한 이런 계층과 불평등은 지리적 차원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 중심에 가까운 곳에 사는 이들은 풍족하게 공급받는다. 하지만 불과 두세시간 거리에서부터 극빈층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별세계가.
모스크바는 '경제'나 '문화' 중심지가 아니다. 막스 베버가 모스크바를 봤다면 '궁정도시(Fürstenstadt)'라 불렀을 것이다. 궁정 주변에 형성되어, 왕, 궁정신하와 공직자가 쓰는 돈으로 굴러가는 도시. 그 근대적 번영은 제국 체제에서 중앙의 지위가 갖는 기능이다.
이는 모스크바에서 전쟁의 경제적 여파가 거의 보이지 않는 이유다. 왕은 쓸 수 있는 모든 수와 재화를 쏟아 자기 궁정도시에서의 삶과 사업체의 품질을 유지하려 들 것이다. 제국의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지.
이는 또한 러시아 제국에 빈번한 빈곤을 설명한다. 여긴 아르한겔스크, 역사적으로 부유한 축에 속했던 포모르인들의 중심지다. 거대하고 탐욕스런 궁정도시를 먹이기 위해 해당 지역의 모든 자원이 착취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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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도시'를 유지하는 비용이 너무 크기에 러시아는 가난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크기의 도시들 중에서 모스크바는 지리적으로 이상한 위치에 있다.
1) 많이 북쪽이다.
2) 깊숙한 내륙에 위치했으며 수로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3) 농업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유지 비용이 너무 크다.
세계 대도시의 대부분은 대양을 접한 곳(리우데자네이루)이나 거기서 가까운 곳(상파울루), 혹은 대양과 수로로 연결된 곳(시카고)에 위치한다. 이는 물류 비용을 낮춰 도시를 유지하기 쉽게 만든다.
해안을 접하지 않거나 수로가 없는 소수의 도시들은 매우 비옥한 식량 생산 지역이 주변에 있다. 멕시코 시티, 보고타, 델리처럼. 물류비용이 비싸서 대다수가 가난하게 산다. 하지만 식량은 풍부해서 가난할지언정 계속 살 수는 있다.
모스크바는 다르다. 가장 가까운 항구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7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 정도면 괜찮아보이긴하는데, 실제론 화물열차는 볼로그다와 야로슬라블을 가로지르는 훨씬 긴 순환 철도를 사용한다. 직항로는 고속열차가 차지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모스크바는 독특하게 북쪽에 위치해 추운 거대도시다. 이렇게 북쪽에 있으면서 척박한 지역이 또 없다. 이곳은 비흑토(Нечерноземье)라 불린다. 흑토가 아니라. 남부의 흑토와 비교해 얼마나 척박한지를 보여준다.
또한 궁정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드는 이 엄청난 비용과 노력은 무모한 제국주의 정책으로 인한 우려나 불편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이제 왜 모스크바가 제국을 빨아먹는지 알 수 있다. 유지 비용이 너무 크다. 궁정도시의 끝없는 탐욕은 러시아 제국 탈식민화의 주된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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