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났다. 개전 당시 창경원은 그대로 운영되고 있었다. 사육사들이 남아 동물을 보살폈다.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동물들에게는 딱히 관심 없었다. 오히려 구경을 하느라 바빴다. 동물과 이데올로기는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물들은 몇달 뒤인 9월 28일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하게 될 때까지 별 탈 없이 지냈다.
하지만 1년 뒤 중공군이 개입했고, 1·4후퇴가 진행되었을 때 서울에도 소개령이 내려졌다. 창경원은 폐장했고 사육사들도 피난행렬을 따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동물들은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사육사 박영달은 동물들을 두고 떠나는 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앵무새를 품에 안았다. 이 새는 “잉꼬상 곰방와” 하면 “보꾸상 곰방와”로 일본어 대꾸를 하던 반려 같은 새였다. 아내는 “살림도 다 버리고 가면서 새가 다 뭐냐?”면서 핀잔을 줬다. 슬그머니 새를 내려놓았더니 “오마에, 바가바가(너 멍청이)”라며 박 씨를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새를 놔둔 채 그는 피난길에 올랐다.
두 달 뒤 서울이 수복됐다. 박영달은 동물원이 어떻게 됐나 걱정스러워 창경원부터 들렀다. 그 곳은 저승을 방불케 했다. 살아 움직이는 동물은 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낙타와 사슴, 얼룩말은 중공군이 도살해 잡아먹은 듯 잘린 머리만 남아 뒹굴고 있었다. 여우와 너구리, 오소리, 살쾡이는 굴과 돌 틈에 끼어 죽어 있었다. 굶어죽고 얼어 죽고 총칼에 찢겨 죽었다. 그는 망연자실한 채, 죽어간 동물들을 떠올리며 오래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https://www.ajunews.com/view/20200810093335757
동물 잡아먹은거면 그나마 건전하노
그냥 동물원 뷔폐 해먹었누 이제 어디가서 자랑하고 얼룩말 고기 먹어봤다고 자랑하고 다녔겠누
미숫가루만 먹다가 고기보면 못참지
러시아놈들은 우크라에서 사육사까지 쏴죽이고 떠났는데 중국놈들 정도면 건전한거였네
사육사 가만 냅둔건 북한군만 왔을때고 중국 참전했을때는 사육사들도 남쪽으로 도망갔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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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이 없었음 서울에 - dc App
죄다 피난가서 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음. 모택동도 놀랐다고 함.
아예 없진 않겠지만 북괴나 국군보단 훨씬 덜 하긴 했음
아마 그때 점령지 민심 어쩌고해서 안 했다고들 하고 선전용으로 농사짓는 아낙네 돕는 사진 찍고 그랬던거 보면 부대 단위에서는 안 했을듯
우리 모친 외가 동네에 중공군이 들어왔는데 사람은 손 안댔다고 하긴 하더라. 대신 소는 잡아갔긴 했지만. 중공군에 대해선 나쁜 기억이 없으시더라고
나뮈키 피셜이긴 한데 중공군은 포로 잡아도 델꼬다니기 힘들거 같으면 그냥 풀어주기도 했다고 함 자기네 병력 관리하는것도 충분히 빡쎄서
삼대기율 팔항주의라는게 살아있던시절이니까... 애초에 타국이고 파르티잔같은데에 심하게 데아거나 그런것도 아니니 딱히 그럴 이유가 없기도 하고
문혁 전엔 꼴에 삼대기율 팔항주의를 실천하겠다고 별짓 다함 - dc App
중공군의 포로에 대한 잔혹행위 및 살인은 있었고 외국 참전용사들 포로 수기에 꾸준히 나옴
중공군도 북한군처럼 똑같이 부상 입은 포로가 이송 중 힘들라하면 살해해버린다던지, 부상병을 실은 트럭을 불태워 소사시킨다던지 하는 짓거리 하고 다님
이게 맞다 터키군 참전용사 증언한거 보니깐 포로로 잡혀서 끌려가는데 옆에 미군포로 사살하고 지들끼리 낄낄 쪼개고 그랬었다고
Brainwash라는 단어가 한자어 세뇌에서 왔음. 중공군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임
문혁전이라 아직은 인간의 형태를 갖추긴 했음 - dc App
신나서 짱깨 띄워주노ㅋㅋㅋㅋㅋㅋ
동물을 풀어주고 간것도 아니고 다 가둬두고 가놓고 살아있길 기대한거래? 불쌍했으면 초식동물이라도 풀어주고 갔어야지 - dc App
짱
난 궁궐을 저때까지도 동물원으로 쓰고 있었다는게 더 놀라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