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탄금대에서 야전군 8000명 전멸하고 나니 더 이상 한양까지 일본군을 저지할 병력이 없었음. 나중에 조선이 16만 동원한거랑 별개로. 현대랑 다름
웰치스빈(wellbinna)2022-07-30 13:27
답글
고구려는 유무선통신이 있었구나
익명(223.62)2022-07-30 14:38
요즘에야 레이더도 있고 그래서...
후일(showe92)2022-07-30 13:26
그땐 해상 초계기가 없어서
익명(winchest7)2022-07-30 13:26
2만명이면 선봉은 몇명이겠니
익명(49.175)2022-07-30 13:26
미리알고 대한해협에서부터 물러나면서 요격했으면 모르겠는데 첩보가 없었겠지
익명(211.248)2022-07-30 13:26
넌 그냥 숫자감각이 없는거임 원해 1,2만명만으로도 왠만한 나라는 뒤집어짐
익명(49.175)2022-07-30 13:27
답글
조선이 상정한 일본 침공규모는 3-5만이었음 근데 그 한참 아래인 1.5만을 못막은거임
익명(121.169)2022-07-30 13:30
답글
답정너할거면 질문하는 척을 하지마세요 좀
ㅈㅈ(125.129)2022-07-30 13:33
답글
선발대가 1만 5천이고 일본 침공규모는 20만 가까이고, 애초에 니가 조선이 상정했다는 규모도 뇌피셜이고
익명(49.175)2022-07-30 13:36
원균
irocro723(irocro2207)2022-07-30 13:28
고니시만 1.8만에 5일 후에 3만 넘는 병력이 뒤이어 상륙하는구만 먼 1만5천 드립임?
익명(175.211)2022-07-30 13:33
답글
1.8만 상륙하자마자 역격해서 물고기밥 만들고 뒤에 오는 놈들 다 바다에 수장시키면 됨
익명(211.199)2022-07-30 13:35
답글
어느 미친 전근대나라가 뒷마당에 2만을 바로 영격할수 있는 군사체계를 마련해놓노?
익명(175.211)2022-07-30 13:45
당시 기술로 적 함대가 오는 걸 미리 탐지해서 요격하기 힘듬.
그보다는 지속적으로 부산 포구를 공격하면서 적이 수송함-전투함 비율을 늘려서 부산에 상륙시키는 전선 규모를 줄이도록 하는 노력 정도는 했어야지.
당시 왜선들이 700척 규모고 대부분이 70-80명이 정원인 세키부네인 걸 생각하면 이걸로 1만 명 옮기는데만 해도 1척에 20명씩 추가로 태워도 500척이 필요함. 여기에 무기나 물자까지 생각하면 중량은 미칠듯이 증가하는 거고. 이렇게 사람과 물자로 가득 채운 수송선은 사실상 전후진만 가능한 수준일 터라 전투는 불가라고 봐야지.
익명(121.144)2022-07-30 13:36
원균이 적극적으로 달라붙어서 한번에 함대 전체를 깨뜨리진 못해도 싸울때마다 호위전선 10척, 20척씩 분멸시키고 있었으면 1,2차 상륙군인 고니시 가토면 모를까, 이후의 병력들은 상륙이 느려질 수 밖에 없었음. 그만큼 우수군이 위협이어서 수송선의 비율을 줄이고 전투선 비율을 늘릴 수 밖에 없었을테니.
익명(121.144)2022-07-30 13:37
실제로 충무공이 뒤늦게나마 옥포 당포에서 분산된 왜군 함대를 하나하나 찾아내서 분멸시키고 있으니 왜군도 함대결전을 회피할 수 없었고 한산대첩이 벌어지면서 견내량 이서 제해권이 충무공에게 돌아온 것과 같은 거임.
첩보전과 전쟁대비 실패도 책임져야할 문제긴하지.
현대처럼 유무선통신이 있는것도 아닌데 어케 가능함 그리고 전근대 국민개병제 이전시대에는 상비군 님 생각보다 디게 적음.
지금처럼 전선이 선형으로 형성되는 시대도 아니고
어느정도 근현대적인 상비군체제를 갖춰서 상시 병력이 수십만이 된건 유럽에서도 1600년대 중후반 이후임
당장 탄금대에서 야전군 8000명 전멸하고 나니 더 이상 한양까지 일본군을 저지할 병력이 없었음. 나중에 조선이 16만 동원한거랑 별개로. 현대랑 다름
고구려는 유무선통신이 있었구나
요즘에야 레이더도 있고 그래서...
그땐 해상 초계기가 없어서
2만명이면 선봉은 몇명이겠니
미리알고 대한해협에서부터 물러나면서 요격했으면 모르겠는데 첩보가 없었겠지
넌 그냥 숫자감각이 없는거임 원해 1,2만명만으로도 왠만한 나라는 뒤집어짐
조선이 상정한 일본 침공규모는 3-5만이었음 근데 그 한참 아래인 1.5만을 못막은거임
답정너할거면 질문하는 척을 하지마세요 좀
선발대가 1만 5천이고 일본 침공규모는 20만 가까이고, 애초에 니가 조선이 상정했다는 규모도 뇌피셜이고
원균
고니시만 1.8만에 5일 후에 3만 넘는 병력이 뒤이어 상륙하는구만 먼 1만5천 드립임?
1.8만 상륙하자마자 역격해서 물고기밥 만들고 뒤에 오는 놈들 다 바다에 수장시키면 됨
어느 미친 전근대나라가 뒷마당에 2만을 바로 영격할수 있는 군사체계를 마련해놓노?
당시 기술로 적 함대가 오는 걸 미리 탐지해서 요격하기 힘듬. 그보다는 지속적으로 부산 포구를 공격하면서 적이 수송함-전투함 비율을 늘려서 부산에 상륙시키는 전선 규모를 줄이도록 하는 노력 정도는 했어야지. 당시 왜선들이 700척 규모고 대부분이 70-80명이 정원인 세키부네인 걸 생각하면 이걸로 1만 명 옮기는데만 해도 1척에 20명씩 추가로 태워도 500척이 필요함. 여기에 무기나 물자까지 생각하면 중량은 미칠듯이 증가하는 거고. 이렇게 사람과 물자로 가득 채운 수송선은 사실상 전후진만 가능한 수준일 터라 전투는 불가라고 봐야지.
원균이 적극적으로 달라붙어서 한번에 함대 전체를 깨뜨리진 못해도 싸울때마다 호위전선 10척, 20척씩 분멸시키고 있었으면 1,2차 상륙군인 고니시 가토면 모를까, 이후의 병력들은 상륙이 느려질 수 밖에 없었음. 그만큼 우수군이 위협이어서 수송선의 비율을 줄이고 전투선 비율을 늘릴 수 밖에 없었을테니.
실제로 충무공이 뒤늦게나마 옥포 당포에서 분산된 왜군 함대를 하나하나 찾아내서 분멸시키고 있으니 왜군도 함대결전을 회피할 수 없었고 한산대첩이 벌어지면서 견내량 이서 제해권이 충무공에게 돌아온 것과 같은 거임.
전쟁이 무슨 스타크래프트인줄 아노?
답정너 개병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