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1950년 7월 11일 전북 이리시 이리역(1995년 익산으로 지명 변경)에서 B-29가 의한 오폭 참사 조사보고서에서 발췌한 내용임.

조사내용 전문이 - https://www.iksan.go.kr/board/download.do?bbsBid=66095&bbsFileSeqId=66097 (90페이지 정도됨) 여기 있었는데, 사이트 개편되면서 주소가 바뀐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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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학교강당에서 음악수업을 받고 있던 중 비행기 소리가 나서 6학년 전체가 운동장으로 몰려나갔다. 비행기를 보고 책보와 종이 등을 던지며 장난치듯이 소리를 쳤고, 비행기에서 삐라 같은 종이가 떨어졌는데 조금 후에 폭음이 나서 폭탄임을 알게 되었다. 비행기는 오후 230분쯤 전주 방향에서 날아와 상공을 수회 배회하다가 군산쪽으로 갔는데 다시 되돌아와서 이리 상공을 수회 배회를 하다가 폭탄을 투하하였다. 비행기는 2대였고 양쪽 날개에 프로펠러가 있었으며 비행기에 그려진 그림은 원안에 별모양과 줄무늬가 있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그 비행기가 미군기임을 알았다. 엄청난 폭음이 들려서 같이 공부하던 학생들과 함께 이리경찰서 방향으로 갔다가 철도역에 폭탄이 투여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철도역에는 경찰이 현장접근을 막기 위해 5미터 간격으로 서 있었다. 당시 이리역에는 군 입대를 위해 집결한 장정 200여 명, 국회의원 시국강연을 위해 이리극장에 동원된 학생 30~40, 철도관사에 30여 명, 당시 우시장이 열린 인화동에서 30여명, 역 구내에서 철도공무원과 일반인 80여 명, 송학동 주민 5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 4일 후인 715일에도 호주기로 불리는 전투기 4대가 오후에 이리 상공에 나타나 40여분동안 철도시설물과 만경강 철교 등에 기총사격을 하였다.”


- 이창근 진술조서, 2006.08.02.




송학리 자택에 있었는데 오후 2시경에 비행기 소리가 나서 밖을 보니 미공군기 2대가 군산방향에서 와서 이리상공을 지나 삼례쪽으로 갔다가 다시 이리쪽으로 와서 폭격을 시작하였다. 당시 비행기를 뚜렷이 볼 수 있었는데 미공군기 마크인 별모양과 줄무늬를 보았다. 폭격은 평화동 변전소부터 시작해서 기관차사무소를 거쳐 송학동까지 약 1500미터를 폭격하고 북쪽으로 날아갔다. 10분 뒤에 다른 비행기인 호주기라 부르는 제트기가 낮게 비행하면서 기관총을 지상으로 발포하였는데 약 30분 정도 그렇게 하였다. 사건당일은 이리장날이어서 사람들이 많았으며 이리극장에서 국회의원이 시국강연회를 하여 이리시내 학생들이 동원되어 있었다. 또 이리일출국민학교에는 징집대상자들이 모여 있는 상태였다. 비행기는 평화동 변전소부터 송학동 주택가까지 계속 폭탄을 떨어트렸다. 비행기의 별모양과 줄무늬를 보고 미공군기임을 알았고 B-29가 틀림없었다


- 최경락 진술조서, 2006.10.27.




당시 논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비행기 2대가 전주쪽에서 군산쪽으로 지나가면서 무엇을 떨어트렸다. 그다지 높은 고도가 아니어서 육안으로 식별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하나였던 것이 점점 분리되면서 작은 폭탄이 되는 것 같았다. 최초 이리역에 그 폭탄이 떨어졌고 시내에서 폭격이 있었으며 그 후에 군산으로 향하던 비행기가 다시 전주쪽으로 돌아오면서 평화동의 변전소로 향하였고 이때 형님이 폭탄을 직격으로 맞고 희생되었다. 당시 비행기는 색깔이 검고 프로펠러가 양쪽에 두 개씩 있었다. 두 대가 나란히 움직였으나 폭탄을 떨어트린 것은 1대였다. 비행기는 시내를 한두바퀴 크게 돌다가 변전소쪽으로 오자 떨어트렸다. 당시 폭탄은 웅덩이 숫자로 봐서 3~4개인 것 같다.


- 이덕구 진술조서, 2009.02.06.



당시 저는 집에 있었는데 집과 이리역은 4km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비행기를 직접 보았다. 당시 비행기는 높지도 낮지도 않게 날았는데 양쪽에 프로펠러가 2개씩 4개가 달린 B-29가 분명했다. 비행기는 동쪽으로 가다가 다시 돌려 서쪽으로 오면서 이리역에 폭탄을 투하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 아군기였기 때문에 누구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피해를 당한 것이다.


- 이승교 진술조서, 2010.03.25.



본인은 일제시기에 징용을 가서 B-29를 자주 보았기 때문에 확실히 알고 있는데 B-29는 큰 비행기로서 높이 떠서 폭탄을 떨어트리고 이리역 사건 때도 B-29가 떨어트린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당시 이리에 인민군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폭격을 한 것 때문에 말들이 많았는데 얼마후에 아군이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수원역인지 용산역으로 착각하여 이리역에 오폭을 했다는 공식 답변이 있어서 오폭으로 알고 있었다.


- 김항노 진술조서, 2010.3.25



당시 본인은 이리역 바로 앞에서 살고 있었다. 학생으로서 하교후 굉장히 큰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집으로 왔는데 잠시후 쾅쾅하는 폭탄 소리에 놀라 뒷집 창고에 엎드렸다가 파편 조각을 보았다. 폭격을 한 비행기는 굉장히 컸고, 미군 비행기 B-29라고 했는데 이리를 오산지역으로 오인하여 폭격했다고 들었다. 이런 말들은 철도기관사들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 손종태 진술녹취록, 2010.04.15.



이리역전에 폭탄이 떨어졌다고 해서 놀라서 밖에 나왔다가 비행기가 변전소 위로 폭탄을 떨어트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 후로 만경강 다리에도 폭탄이 떨어졌다. 검은색 비행기였고 여러대였으며 비행기가 하늘 높이 있다가 폭탄을 떨어트릴때는 쉭~하고 내려와서 때리고 다시 올라갔다. 사람들이 B-29라고 했다.


- 김옥주 통화보고서, 2009.10.21.



비행기 2(B-29)가 이리역 상공을 몇 번 돌다가 가스통보다 더 큰 폭탄 3~4개를 떨어뜨렸고 조금 있다가 또 폭탄을 떨어트렸는데 알고 보니 변전소에다 떨어트린 것이었다. 사건 발생 3일 후 호주기라고 하는 프로펠러가 없는 비행기가 삼례, 전주쪽으로 기관총 사격을 하면서 가는 것을 보았다.


- 백인기 진술조서, 2006.10.27.





증언자 인터뷰등을 볼때 태평양 전쟁당시 경험때문인지 어느정도 B-29라는 폭격기 기종은 숙지하고 있었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