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 105권, 선조 31년 10월 12일 갑자 7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삼로의 군사가 패전하다
이때 동로(東路)의 중국 군사는 2만 4천 명이고 우리 군사는 5천 5백 14명이며, 중로(中路)의 중국 군사는 2만 6천 8백 명이고 우리 군사는 2천 2백 15명이며, 서로(西路)의 중국 군사는 2만 1천 9백명이고 우리 군사는 5천 9백 28명이며, 수로(水路)의 중국 군사는 1만 9천 4백명이고 우리 군사는 7천 3백 28명이었으니, 모두 합하면 10여만 명이었다. 군량과 무기도 이에 비등했는데, 삼로(三路)의 군대가 흔적도 없이 무너지니, 인심이 흉흉하여 보따리를 싸 가지고 있었다.
自倭亂朝鮮七載, 喪師數十萬, 糜餉數百萬, 中朝與屬國迄無勝算, 至關白 死而禍始息
왜가 조선을 어지럽힌지 7년 동안 잃은 군사가 수십만이나 되고 소모한 군량이 수백만이나 되었는데도
중국과 조선이 이길 가망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는데, 관백이 죽고서야 화란이 비로소 종식되었다.
중국정사조선전 > 明史 > 朝鮮列傳 > 朝鮮 > [萬曆 二十六年(1598)]十一月, 淸正發舟先走,
명나라가 이 정도면 전쟁터였던 조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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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조선의 풍속과 문화와 분위기가 조선전기 조선 후기로 나뉘게 되는 결정적인 기점이 되었지. 너무나 많은 게 좆되어버렸어.
ㄹㅇ 세계대전 두 탕 뛰고 온갖 허무주의가 날뛰던 유럽 보는 느낌임
사로병진책 아님? 이때 명군이 존나 미적지근하게 움직여서 실패한 그거 같은데
미지근하게 움직이기 전에 왜성들 쳤다가 너무 털림 그래서 그 뒤로 제대로 공세하기 어려웠음 - dc App
대부분은 선조가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지..그러니 누가 이순신 고문하고 겐킨 앉히라고 했냐고 ㅋㅋㅋㅋ
명나라군이 저러는데 선조가 뭐한다고 전황이 크게 바뀌었을지는 모르지 - dc App
사로병진책때 유정이 고니시한테 뇌물 받아서 명나라군 태업한것도 악영향 끼쳤음
조선왜성 방어력이 ㅈㄴ 높았다지 히데요시가 오래 살았거나 그러면 경상도는 확실히 일본땅으로 되었을까
성의 다른 기능 다 포기하고 방어에만 몰빵한 새키들...
진짜 피 말렸을듯
포스트 아포칼립스 수준의 조선을 캐리한 이순신은 뭐하는 사람일까...
이순신은 사람이 아님 신이지 - dc App
명나라+조선군 공세역량 끌어모아 점령지 탈환하겠다고 밀어붙이고 밀어붙였는데 결국 탈환한 왜성은 0개. 시발 진짜 절망적이었을듯
배틀로얄 150년의 결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