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김포공항에 내렸다. 그땐 겨울이었다. 제일 먼저 한 건 간염 예방주사 접종이다. 그건 당시 시험적인 주사였고, 골프공 1개 부피만한 약을 투여했다. 그걸 맞자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리고 밖에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엔 내 이름도 있었다. 우릴 호명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Z로 간다."
“Z가 뭡니까?”
하지만 그는 대답 해주지 않고 가버렸다. 우린 그 Z가 'DMZ'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배정된 곳은 2사단 23연대 3대대 C중대 3소대였다. 문산리에 있는 C중대 막사에 한밤중에 도착했다. 난 소총수가 됐다.
철책경계는 정말 지루하다. 밤이 되면 저 북쪽 하늘에 조명탄이 터지고 예광탄이 날아다니고 폭발음이 들렸다. 우린 다양한 섹터의 교전을 구경했다. 적색, 녹색, 백색 예광탄들이 난무했는데, 나 개인적으로는 그 광경이 정말 멋있었다.
우린 DMZ을 정찰 섹터로 받았고, 그 일대는 우리 작전구역(AO)이다. 정찰은 25명이 나가는데 3일 밤낮을 작전하고, 그 다음 우리 중대 다른 25명이 교대한다. 낮에는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 분산한 다음 우리가 "Snoop'n and Poop'n"라 부른 주간매복을 하고 hammer and anvilsweep을 한다. 차단조를 만들고 일대를 수색하는 것이다.
우리 소대는 임진강을 따라 수도 없이 야간정찰을 나갔다. 그걸 S.C.O.S.I.정찰이라 불렀는데, 임진강 남쪽 방첩정찰이란 뜻이다. 비무장지대는 강 건너 북쪽 아주 가깝다. 매일 진흙에 군화를 찍으며 건너 온 나쁜 놈이 없나 살폈다. 야간 소등 이후 강가에 왔던 민간인 두 명이 거의 총에 맞을 뻔했다. 당시 한국에서 통행금지 이후 걸어 다니면 안 된다. 당시 한국은 밤 12시가 되면 나라 전체가 불을 껐다.
돌아보면, Zone(DMZ)는 참 초현실적인 곳이었다. 우린 사람을 사냥했으나 그건 전쟁은 또 아니었다. 나쁜 놈들은 원하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우린 오히려 DMZ을 제외하곤 좁은 공간에 묶여 있었다. 이건 마치 19세기 서부극 같다. 내가 인디언을 찾아 죽이는 거다. 우리가 하던 정찰의 공식 명칭은 hunter-killer patrol이었다.
우리 정찰은 Guard Post(GP)에서 시작한다. GP는 25-30명이 들어가는 비무장지대 안의 강화된 요새 거점이다. GP들은 JSA(판문점)을 제외하면 아군의 가장 앞쪽에 있는 거점이다. 필요하면 우린 추가 탄약, 물, 증강병력을 GP에서 받는다. 추가적으로 말하면 GP는 우리가 원할 경우 월북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철모에는 위장피를 두르고, 최대한 많은 탄약을 챙기고, 모두 방탄조끼를 입었다. 철책(Barrier Fence)이나 GP 그레디스(Gladys) 부근부터는 반드시 그렇게 착용한다. GP는 성가신 일을 하고 우린 그나마 좀 돌아다닐 수 있다. 기본군장으로 따지면, 물이 든 수통 세 개, 3일치 C-레이션, 소총탄 기본 200발, 수류탄 4-6개, 클레이모어 지뢰 2-3개, M-72 LAW와 M-60 예비탄약 등등....
우린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했고 스스로를 '임진 스카우트(Imjin Scouts)'라고 불렀다. 비무장지대 임무 20회를 하자 임진 스카웃 마크를 군복에 달 자격이 주어졌다. 누구든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건 상부에서 허락한 공식 마크는 아니고 싸제였다. 그러나 비무장지대는 넘나드는 우리에게는 그 마크는 매우 각별한 것이었다.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는 증표이자 훈장이었다.
철책에서 교전이 발생한 경우, 북한군이 침입할 거라는 통보가 내려왔다. 북한군들은 잘 훈련된 침투자들이었다. 우린 북한군을 다음과 같이 불렀다. UI (미확인 인원), Joe Chink, Joe, Gooks. 철책을 넘어오는 적은 3-5인 팀으로 나타나는데, 적어도 3년 이상 훈련 을 받고 남으로 내려온다. 장비는 정말 최소화해서 휴대하고, 가끔 잡아서 보면 그냥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검은색이다.
소지품중 군인 신분이 될 만한 건 하나도 없고, 민간인 옷과 남한 쪽 민간인 신분증을 가지고 있다. 총은 주로 개머리판이 접히는 기관단총을 휴대한다. 생김새는 보통 한 30대로 보였으나, 우린 동양인의 나이를 판가름하기 힘들었다. 공작금으로 한국 돈, 달러, 미군 군표를 가지고 있었고 달러 중엔 위조지폐도 있다. 작전 중 잠을 깨기 위해 암페타민 계열 각성제 알약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남쪽에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신체의 상태라던지 전술은 정말 훌륭했다. 그들은 한번 교전하면 마법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갑자기 다시 나타나서 다시 총격전이 벌어지고, 그때 동료 몸들을 끌고 간다. 우리가 느끼는 건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거다. 그러나 투지나 동기 면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높다.
북한의 대형 스피커는 밤낮으로 울려 퍼진다. 놈들의 심리전이다. 우리가 모두 죽을 거라고 말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방송은 북한군 침투부대의 이동 소음을 차단하기 위한 역소음도 이유 중 하나였다. 꼭 한밤중에 그런 관심을 끄는 방송을 튼다. 우리를 최대한 자극하려고 혈안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스피커에서는 특정 병사 이름을 부르고 가족 이름도 거명한다. 이 정보는 매춘부나 다른 인물이 보충대에 있는 신상명세서를 훔친것 같다. 그러고는 음울한 멜로디의 음악을 틀어준다. 가끔씩 납치된 푸에블로 호 선장의 목소리도 나온다.
북한군들은 우리의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 주로 돌멩이를 던져서 탐침을 했다. 돌은 밤새 여러번 날아왔다. 우리도 돌멩이를 모아서 똑같이 던지기도 했다. 돌멩이가 날아올 땐 서로 사격을 가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어디선가 사격이 시작된다. 그러면 한바탕 총성이 오간다. 그 뒤로는 다시 잠잠해지며 날이 틀 때까지 조용하다.
북한군은 우리 매복조의 이 클레이모어를 잘 알며 훔쳐가기도 한다. 그래서 핀을 뽑은 수류탄 1개를 바로 아래에 심어두곤 했다. 격발기를 쥔 사람은 항상 도전선을 확인해야 한다. 누군가 클레이모어에 손을 대면 도전선 장력이 달라져서 그러면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날 밤, 우리 왼쪽에서 움직임이 있었고 탐침용 돌멩이가 수도 없이 날아왔다. 그러나 우린 적을 볼 수가 없다. 결국 밤은 지나가고 새벽이 되어 클레이모어를 회수하러 나간다.
그런데 클레이모어 방향이 우리 쪽으로 돌려져 있었다. 설치한 수류탄은 그 옆에 안전손잡이와 함께 놓여 있었다. 만약 크레모어를 눌렀다면 우리는 쇠구슬을 뒤집어 썼을 것이다. 하지만 격발기를 담당했던 친구는 도전선 장력이 밤새 팽팽 해서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한군은 정말 작고 은밀한 놈들이다.
우리 중대장 켈리 대위는 베트남에 두번 다녀온 장교였다. 그는 정확히 뭘 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비무장지대에서 교전이 발생했다는 말을 무전기로 들으면 대위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송신했다.
"This Charlie 6, actual I WANT A BODY."
그는 언제나 전투가 끝나면 적의 시체, 혹은 장비, 하다못해 핏자국 같은 증거라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한번은 중대장이 재밌는 구경거리가 있다면서 나에게 장비를 챙기라고 했다. 우린 지프를 타고 임진강으로 갔다. 지프는 임진강에 걸린 자유의 다리를 북으로 건넌 다음 강을 따라 서쪽으로 틀었다.
그곳에는 우리가 게 섬(Crab Island, 초평도)이라고 부르는 작은 모래톱이 있었다. 우린 섬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 섬은 임진강에 있는 진흙과 풀이 무성한 작은 섬인데 우리 작전구역 안에 있다.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 가끔 거기를 통해 남쪽으로 들어왔다. 우리도 그들이 있는 것 같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가끔 들어가 보면 실제로 발자국도 찍혀 있었다. 포병대는 그 섬에 불시적으로 포격을 날리곤 했다. 강변 정찰대들은 탄착점을 관측했다.
밤에 보니 게 섬은 참 산뜻했다. 우린 거기서 앉아서 몇분간 기다렸다. 중대장은 시계를 계속 봤다. 정말 한밤중이었다. 나는 중대장에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이제 거의 다 됐어.”
그리고 순간 쾅! 소리가 나더니 게 섬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린 섬하고 너무 가까웠다. 그러나 켈리 대위는 느긋하게 시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때? 정말 아름답지 않나?”
참 이상하고 두려운 경험이었는데 아무런 사고도 없었다. 그 포격을 구경하던 중대장의 모습은 정말 편안해보였다.
한국의 날씨는 음, 정말 극과 극이었다. 겨울에는 비참하고 춥고, 여름에는 정말 비참하게 덥다. 이 군대 시절 경험으로 하나 얻은 교훈이 있다 : 정말 추워도 날 괴롭히지 못한다. 난 곧 따뜻해진다. 정말 길고 긴 밤을 추위와 싸워야 한다. 여름에도 똑같으나 덥고 비가 온다. 한번 오면 몇 주고 계속 내린다. 참으면 곧 선선하고 건조해진다.
온 나라에서는 냄새가 났다. 특히 여름에는 최악이었다. 한국전쟁의 여파는 다 정리되서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빈곤층이었다. 게다가 사방에 군인들이 깔려있었다. 난 처음에는 이 나라 사람들은 전부 군인이거나 도둑놈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둘 다 부합하는 인간도 있었다.
난 북한군과 친해져 본 적은 없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한국군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생활은 매우 거칠었고 저런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들은 하우스보이나 군무원, 카투사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친절하게 대해줬다. 카투사들은 이 나라의 중산층 자제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들은 기꺼이 우리들과 함께 구르고 생활했다.
개추
군생활 내내 DMZ 작전간 교전은 한번도 없었는데 옛날엔 존나 살벌했네
철책 깔리고 요새화되기 전까진 그냥 상시적 스커미싱 상태였다함
ㄷㄷ -푸틴시진핑김정은개새끼
한국전쟁 직전에 상황인가 했더니만 푸에블로호사건 얘기하는거보니 연도추정이되네
2사단이 임진강 맡게 된건 한국전쟁 이후부터임.
저 2사단은 원래 1기병사단임. 64년에 헬리본으로 11공수랑 미본토 2사간이 신 1기병사단으로 통합되고 한국의 원조 1기병이랑 2사단간 단대호 교대로 지금 2사단이 된 거. 1기병사단은 한국전 개전부터 휴전후에도 미7사단과 함께 계속 주한미군 주축이엇음. 7사단은 닉슨때 철수 - dc App
70년대 DMZ 도발은 제2차 한국전쟁이라고도 불린다던데
자료영상
https://youtu.be/mbpOzKBcWcA
크레모아 ㅅㅂ
벌써 20년 전이지만 나도 수색 돌 때 지금은 도라산역에 있는 녹스 기관차 지나서 장단면 사무소로 이동했음 GP는 235 같은데 근처에 귀순자들이 사용하라고 달아놓은 종이 기억남 초평도 쪽은 썰물 때 수심이 2m 이하로 낮아져 임진강을 건널 수 있음 한 번은 성공했고 또 한 번은 비가 와서 실패해 중간에 대기하던 보트 탔었음 이후 옆 사단에서 비슷한 훈련하다가 사고 나서 전면 중단됨 초평도 내려다 보이는 언덕 말고 통일대교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이 유명함 1년에 한두 번 소초에서 탈영하는데 결국 그 언덕으로 가면 잡을 수 있음 판문점 입구와 그리브스 대대에는 문산에서 버스 타고 들어갈 수 있음 부대에서 차량 지원 없으면 버스 타고 들어갔는데 그리브스 삼거리에서 내려 부대까지 걸어감 아 틀냄세 ㅠㅠ
크레모아 썰은 진짜 오싹하네 - dc App
gook이란 비하단어는 저때도 썼구나
크레이모어는 진짜 섬뜩하네
리비교 ㅋㅋ 저기서 군생활 했는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