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냥 총력전인줄 알았는데,
1937~1940년의 기간동안 일본의 전비지출은 gdp의 20%이하에 불과했고, 대중국 전선에 투입한 병력은 항상 50~70만명 정도에 불과했네
아무리 일본군이 병신이어도 겨우 저 정도가 보급능력의 한계였을까 궁금하네
1937~1940년의 기간동안 일본의 전비지출은 gdp의 20%이하에 불과했고, 대중국 전선에 투입한 병력은 항상 50~70만명 정도에 불과했네
아무리 일본군이 병신이어도 겨우 저 정도가 보급능력의 한계였을까 궁금하네
총력전 맞는데? - dc App
다른 열강들이 2차대전때 전비지출한걸 보면 영국, 독일, 프랑스 다 gdp의 최소 30퍼 이상이고 미국도 총력전 전환한 1943~1945에는 30퍼대 후반이더라고
국가총동원법이 쇼와 13년도 일이니까 엄연히 총력전임 - dc App
그리고 예비역 소집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물자도 대미개전 이전까지는 그렇게 심하진 않지만 엄연히 통제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음 - dc App
총동원법의 발령은 1938년이었어도 제대로 징병하고 경제력을 총력전으로 전환한건 1941년부터 아닌가? 반면에 중화민국은 총동원법을 1942에야 내렸는데 그 전의 중국이 총력전체제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잖아
증국전선에 투입한건 총력전 아니지 당장 군비의 70%를 해군에 투입했거 나머지 육군에서도 관동군에 더 돈 많이 쓴게 일본인지라... - dc App
우산순위도 관동군>본토일본군>지나파견군 순이었음 - dc App
ㅇㅇ 나도 비슷한 시각이라 정작 중국전선에 투입한 군비는 높게잡아도 gdp의 5%가 안될거 같음
그리고 지나파견군이 50만을 넘은건 진주만 공습 이후부터임 - dc App
ㅇㅎ 내가 읽은 도표에선 1937년 12월부터 넘어서서 그렇게 썼는데 자료마다 차이가 있나보네
육해군 자원 배분을 실패했다라고 주장은 할수 있겠지만....아니라고 하기에도 무리수인거 같아. 최소한 통제력은 상실한듯
중국 내륙에 주둔한 일본군은 반쯤은 자급자족하며 군벌처럼 행동했었던걸 보면... 왜 그렇게 놔둘수밖에 없었는가가 의문이긴 해
총력전 개념을 무슨 44년 독일처럼 최후의 한사람 이런걸로 잡으면 한가해보이겠지만....군 이외 사회가 전쟁수행을 위해 동원되는게 총력전임
그거 모르는사람은 군갤에 없지... 다만 일본이 중일전쟁때 그런식으로 총력전 양상을 보였냐의 이야기는 별개니까 적은거야 빠르게 잡아도 1937년부터가 아니라 1939년 7월의 국민징용령을 공포한 시기부터로 보는게 적합할거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