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볼프
독일남부 헤힝겐에서 태어난 유대계 독일인으로 아버지는 대체의학 전문가에 형 콘라드 볼프는 후에 동독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좀 특이한 집안출신.
1933년 독일의 탄압을 피해 프랑스에 정착했지만 결국 소련으로 이주. 1941년 모스크바 항공대에 입학하지만 그해 독소전이 일어나자 소련정부는 NKVD산하 특별임무학교(러시아 SVR 요원 양성소의 전신)에서 수학할 것을 명령, 요원으로 양성되어 종전까지 대독일 라디오 선전을 담당함.
이후 대학으로 돌아가길 희망하지만 소련당국의 명령으로 1949년까지 베를린 소련관할 지역의 라디오 방송기자로 근무함.
이후 1952년 동독'경제학연구소'라는 대외첩보조직의 수장을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맡게 됨.(전임자인 안톤 아커만이 권력투쟁을 벌이다 정적들이랑 같이 나락간 것이 주 원인)
활약 : 첫 시작은 미약했는데 현장중심 교육을 원했던 볼프는 양성중인 요원들을 서독에 파견했으나 서독과의 경제력 차이로 적은 돈으로 '지나치게 검소한' 생활을 해야했던 요원들이 BfV에 덜미가 잡혀 모두 체포되는 굴욕아닌 굴욕을 겪음.
하지만 끝은 창대하다고 마르쿠스는 자신만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용해 첩보전을 이뜰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미남계를 이용한 작전명 '로미오'로 남성이 부족했던 독일에서 늙어가던 독일 여자 비서들을 유혹해 정보를 얻거나 포섭하는 공작이었음.
볼프는 외모,성격,배경이 모두 합격점인 대학생들을 선발해 서독에서 죽었거나 이민간 사람들의 서류를 조작해 스파이를 침투시킴. 1979년 이 작전이 밝혀지기 전까지 국방부,외교부, '서독 총리실', '나토 사령부' 'BND' 등에서 정보를 얻는데 성공함.
이 외에도 KGB도 성공하지 못했던 NSA(국가안보국)의 비밀기지인 Big Ear의 직원을 포섭한 작전. 빌리 브란트 총리의 비서인 귄터 기욤이 사실은 처음부터 동독 스파이였다는 사실은 서독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을만큼 슈타지 HAV(해외첩보국)의 악명을 톡톡히 견인함.
거기다 무려 1979년에 볼프의 심복이자 과학기술담당(007의 Q같은 존재)인 베르너 슈틸러가 서독으로 망명해 사진을 확인해 주기 전까지 그는 30년 가까이 cia조차 얼굴을 모르는 공산권 정보기관장이었을 정도로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었음.
그 이후 1986년 은퇴했다가 1990년 동독 붕괴후 소련으로 갔으나 91년 소련마져 붕괴하며 독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재판까지 받았지만 '어른의 사정'으로 집행유예로 금방 풀려나 자서전과 요리책(?!)등을 저술하다 2006년 베를린에서 상
망함.
★결론 : 말년까지 완벽한 이상적인 정보부 사령탑 그 자체
아래는 말년의 모습
말년이 편한 게 아주 개 쩌네
저양반이 입 열면 여러사람 다치니까
말년대성공 -푸틴시진핑김정은개새끼
편안한 노후
암살 안한 모양이네. 약점 잡힌 자들이. 죽으면 바로 공개되게 했으려나 - dc App
재판때 워낙 독일 메스컴 노출도 있고 이양반이 입 닫은것도 있어서 암묵적 합의를 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