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8월 12일의 「아리산 3호계획」으로 8대의 RF-104G가 배치되었다.[5626(62-12241),5628{62-12242),5630(12243),5632(62-12244)5634(62-12245),5636(62-12246),5638(62-12248),5640(62-12249)] 이 RF-104G기들은 전부 KS-67A 카메라가 3기 장착되어있었고, 노즈휠 수납창 뒤의 기체속에 장착되어 원래의 20mm기관포는 탈거되었다, 동시에 노즈휠 수납창의 1/3지점에서 뒤로 228cm 지점까지 아래로 볼록한 눈물형 캐노피를 장착해 정찰 장비를 수납했다. 장착된 KS-67A카메라는 1.5인치,3인치,6인치,12인치 4종류의 초점거리를 설정할수있었다.
1967년1월 샤먼(厦门)수역에 잠수함이 출몰한다는 정보가 들어왔고 대만 국방부는 이 사실을 상당히 중시하고있었다, 그러나 이당시 타오위엔(桃园)기지에서 RF-104G 정찰기가 이륙하면 반대편의 중공군도 요격기를 출격시켰다; 반면 타이중 청천강(CCK)기지에서 이륙하는 F-104전투기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그래서 중공군의 요격을 피하기 위해 대만 공군은 작전 하루전 두대의 RF-104G(5632번기와 5640번기)정찰기를 CCK로 이동시켜두었다. 1월 13일 1045시에, 12대대의 예정국(叶定国)상위는 5640번 RF-104G를 타고 복건삼두아오(福建三都澳)연안선을 따라 마하 1.7의 속도로 목표지점을 통과했고 1102시에 중국대륙을 빠져나와 바다로 빠져나갔다. 이때 석문(石门)전투관제센터(CRC)에서 미그기가 요격을 위해 출격했다는 소식을 전파했다, 하지만 RF-104G는 이미 동쪽으로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 중 이였다. 동시에 8중대장 주령운(祖凌云)중교가 편대장으로 F-104기가 엄호를 위해 출격했지만 서로 마주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빛이 부족했는지 이번 정찰의 사진의 결과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래서 1230시 6대대 작전과장 송준화(宋俊化)중교가 5632번 RF-104G기로 재출격했다, 이번 임무는 샤먼항 내부의 중공 잠수함 활동 현황 정찰이 주요 목표였다, 송준화 중교는 우선 200피트의 저공으로 마공(马公)을 지나며 침투했다, 그리고 1256시에 35000피트에서 정찰을 위한 준비를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않아 마공CRC에서 한무리의 적기가 북쪽에서 정찰기를 덮치기위해 남하하고있다는 정보를 전파했다! 동시에 송준화 중교도 45000피트 상공에 4개의 비행운이 그려진걸 확인했다, 그러나 그의 RF-104G는 여전히 목표를 향해 비행했다. 1302시에 샤먼 상공에 도착했으나 목표지점은 바람과 안개로 시야가 불량했다, 동시에 적기도 1시방향에서 공격을 진행했으며 RF-104G도 최대 출력으로 53000피트까지 상승했다 이때 속도는 마하 2였다, 하지만 적기는 여전히 포기하지않았다.
이때 석문CRC도 CCK에서 긴급발진한 4대의 F-104G를 엄호 지점까지 인도했고 이 4대의 스타파이터에는 3대대 8중대 지도장 샤오야민(箫亚民)중교가 후쓰린(胡世霖)상위,양경종(杨景宗)소교와 석배보(石贝波)상위를 이끌고 출격했다; 중공군의 요격대는 장주(漳州)에 주둔하는 24항공대의 8기의 J-6전투기였다. 1306시에 4대의 스타파이터가 현장에 도착했을때 한줄의 비행운이 동북쪽으로 나있었고 편대장의 샤오야민은 석문CRC에 피아식별을 요청했으며 석문CRC에서는 아군이라 답하였다, 그 비행운은 송준화의 RF-104기가 내뿜은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줄기의 비행운이 나타났고 분명히 적군기의 것 이였다, 그러나 이때 스타파이터 편대는 24키로 적군 J-6는 10키로 쯤 거리에 위치해있었다, 스타파이터들에게 남은 방법이라고는 전력으로 RF-104G를 향해 날아가는 방법뿐이였다. 석문CRC에서는 적기가 엄호기를 공격하기위해 바다쪽으로 기수를 돌렸다며 F-104G편대에게 기지로 복귀하라 명령했다, 하지만 편대장 샤오야민은 교전을 회피하면 편대가 불리해진다 판단하여 교전을 요청했다. 1분후 편대장기와 2번기는 적기가 J-6인것을 육안으로 식별할 정도로 가까워졌고, 서로가 2해리 거리까지 좁혀졌을때 샤오야민은 그중 한대를 락온하여 사이드 와인더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나 발사에 실패했다. 하지만 2번기의 후쓰린이 즉시 AIM-9B사이드 와인더 한발을 추가로 발사해 적기를 격추했다! 중공군 편대장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것같자 우측으로 하강하며 도주를 시도했지만 정확히 4번기의 락온범위로 하강했다, 4번기의 석배보는 기회를 놓치지않고 전투통제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8천피트에서 4천피트로 쫒아가 복건상공에서 사이드 와인더 1발을 발사해 적기가 격추되는걸 지켜보며 복귀했다. 공중전이 끝난직후 편대장기의 무전에 2,3,4번기 모두 정상이라 답하였다. 대만에서 60해리 지점에서 편대장은 구름속 비행을 유지하며 비행하라 명령했고 자신의 비행고도가 7천피트인것도 알리며 각각의 고도를 보고하라 하였다. 2번기는 8천피트 4번기는 6500피트 3번기만 대답이 없었다, 이때 편대가 3번기 양경종 소교가 실종되었다는걸 알아챘다. 그후 후쓰린 석배보는 7등급 보위훈장(寶鼎勳章)을 수여받고 상금 2만위안을 받았다. 샤오야민,송준화와 작전관제관 송조량,송진리등 4명은 6등급 보위훈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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