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림과 혼란
남군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시간이었다. 병력은 남북으로 길게 분산되어 있었고, 모두가 깊이 잠들었을 때 기습적인 폭발과 포격으로 인한 혼란은 조직적인 저항을 불가능하게 했다. 그대로 세미터리 힐을 넘어 500m만 나아가면 피터스버그였다. 그러나 두 여단은 거기서 머뭇거렸다. 그들의 사단장인 레들리가 폭발에서 안전한 멀리 후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여단장들도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아침 7시가 되자, 그 사이에 이미 폭심지 위에 있었던 엘리엇 여단의 잔여 병력이 결집하여 치열하게 총알을 퍼붓고 있었다. 이미 폭발의 일차적인 충격은 사라졌고, 남군의 증원 또한 결집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북쪽과 남쪽으로 다른 사단들도 진출하려고 시도했지만 폭발의 잔해와 어지럽게 꼬인 참호선, 연기와 박명으로 부족한 시야, 훈련받지 않은 지휘관들과 병사들이 자아낸 혼란으로 인해 많이 진군하지 못 했다. 분화구를 중심으로 2~300m의 공백을 만들어냈지만, 3개 사단의 병력은 그 안에 너무 밀집된 상태로 있어서 전열을 꾸리는 것도 채우는 것도 불가능했다. 점점 크레이터를 둘러싼 인간의 벽이 얇아지고 있었다.
8시, 완전한 교착 상태가 되자 페레로 사단의 두 여단(즉 모든 병력)이 투입되었다. 제1여단은 조슈아 K. 시그프리드 중령이 이끌었는데, 분화구 북쪽으로 150m 정도를 나아갔지만 남군은 종대의 측면을 호되게 강타했다. 불운하게도 여러 연대가 공간이 없어서 구덩이로 들어갔다. 헨리 G. 토마스 대령이 이끄는 제2여단도 혼란 속에서 가까스로 전열을 정비하여 1여단과 함께 진군했지만, 이미 공세를 실패하고 돌아오는 아군에게 오사를 가하는가 하면 많이 전진하지도 못했다.
남군 반격
그럼에도 9시가 되자 고작 1개 사단인 남군의 저항도 사그라들었으며 북군 병사들은 혼란 속에서 가까스럽게 진격 준비를 끝마쳤다. 그러나 결국 계획되었던 단호한 일련의 돌격은 이뤄지지 못했다. 대신 윌리엄 마혼 준장이 몸소 이끈 2개 여단이 공격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북서쪽 1마일쯤에 위치했던 마혼 사단은 리의 명령을 받아 저루살렘 플랭크로드를 따라 빠르게 이동해온 것이다. 세미터리 힐을 올라 이미 많은 손실을 입었던 부대들을 남북으로 밀어내며 교대한 마혼 사단은 흑인 병사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포트 필로우를 기억하라!” “포로는 없다!” 포레스트 기병대가 4월 12일 테네시의 포트 필로우에서 흑인 주둔군을 학살한 사건을 두고 하는 외침이었다. 이미 착검을 마치고 190m 거리 바깥에서는 사격을 금지할 것을 명령받은 웨이지거 여단의 병사들은 일제히 돌격했다. 흑인과 백인이 뒤섞인 어지러운 백병젼이 펼쳐졌고, 신병이었던 페레로 사단 병사들은 곧 밀려나 크레이터로 떨어지거나, 여러 줄의 참호를 넘어 후퇴했다. 다른 연방군 병사들도 무질서하게 도망치거나, 가까스로 질서를 갖춰 후퇴했다. 분화구 남쪽으로는 홀의 조지아 여단이 한 차례 돌격했지만 격퇴당했다. 그러나 오후 한 시에는 결국 샌더스의 앨라배마 여단이 진군하여 크레이터의 가장자리에 닿았으며, 그때부터 조직적 후퇴는 존재하지 않았다.
빽빽하게 밀집되어있던 백인과 흑인 병사들은 개별적으로 응사하거나, 혹은 겉보기로나마 군율을 유지하면서 일제사격을 하거나, 혹은 항복하거나, 동쪽 벽을 필사적으로 기어올랐다. 어느새 크레이터 바로 위까지 올려진 포들이 쉴 새없이 캐니스터를 크레이터 너머 100m 앞으로 쏟아부었다. 그리고 분노에 찬 남군 병사들은 총검이나 병을 던져대다가 아예 구덩이 안으로 뛰어들어 백병전을 했다. 점차 구덩이 안은 남군이 장악해갔고, 백인 병사들과 그들의 직속 백인 상관을 따라 흑인 병사들도 항복했다. 그에 따라 전투도 종료되었고, 그날 오후에 벌써 양측 병사들은 참호선을 복구하거나 연장하기 위해 열심히 땅을 파고 자재를 옮기고 있었다.
피바다Bloodbath
전투의 첫머리에, 오래된 습관대로 구덩이 안에 들어온 병사들은 엄폐물이 제공되는 훌륭한 참호로 들어와 순간적으로 안도했을지 모른다. 어둠과 이후에 이어진 혼란은 그 구덩이의 정체를 오인하게 만들었다. 구덩이는 앞으로 나와 돌격하기도, 뒤로 후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넓고 깊었다. 사격호로 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당연했다. 전투가 진행됨에 따라 자기 여단, 연대, 중대를 놓친 수천명의 병사가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밀집했고, 그들을 향해 남군 병사들이 총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살육이 시작되었다. 영어 관용구 표현에 피바다, 대학살을 의미하는 bloodbath라는 표현이 있었다. 분화구 안은 실제로 피바다가 만들어진 몇 안되는 곳이었다.
그 현장의 경험을 수기로 남긴 다양한 병사들의 표현은 과장되고 거칠지언정 그 참혹한 현장을 묘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한 제16 미시시피 연대의 데이비드 홀트는 “심지어 최고참 병사들조차 본 적이 없는 가장 무서운 광경”은 “스팟실베이니아의 피가 흐르던 배수로나 챈슬러즈빌의 양키 흉벽”하고만 비교할 수 있었다고 썼다. 제25 노스캐롤라이나 연대의 매튜 러브 중령은 “전투가 끝나고 흑인과 백인이 무더기로 참호 안에 누워 있었고, 모두가 세네 겹으로 누웠다”라고 썼다.
그리고 그들은 휴전이 늦어지는 바람에 벌어진 참사에 대해서도 썼다. 명시적인 휴전이 결정된 8월 1일 아침까지 병사들은 크레이터나 참호선에서 부상자나 시체를 수습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부상자들이 사망한 것은 물론이다. “구더기가 전부 파먹은” 병사들을 삽으로 파내면서 “수천 조각으로 바수어져 네 모자만큼이나 검게 된 병사들! 머리카락만 봐서 누가 흑인인지 백인인지도 구분하지 못 할 것이다.” (해밀턴 던랩, 제100 펜실베이니아 연대)
사상자와 수습
남군은 일관되게 흑인 포로에 대해 무관용 입장을 지켰다. 포로로 잡은 흑인 병사들을 일관적으로 사형에 처하는 관행 때문에 남북간의 포로 교환도 중지될 지경이었다. 이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병사들도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마혼 장군이 살려줄 것을 간청하는 바람에 못 했어요.” 한 병사는 그런 마혼에게 이렇게 말했다. “뭐 장군님 한 놈만 더 죽입죠.” 그러고는 “의도적으로 포켓 나이프를 꺼내 목을 베었어요.” (한 남군 병사의 편지)
방치로 인해 사망한 인원을 제외하더라도 북군 병력 피해의 상당수는 이렇게 발생했고, 40%가 페레로 사단에서 발생했다. 그래도 마혼 같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극소수나마 살아남아, 백인 병사와 같이 피터스버그의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북군 사상자는 총 3,798명으로 504명 사망, 1,881명 부상, 1,413명 실종 혹은 포로였다. 남군 사상자는 1,491명으로 361명 사망, 727명 부상, 403명 실종 혹은 포로였다.
평가
이런 대패의 책임은 번사이드와 휘하 장군들에게 돌아갔다. 물론 번사이드는 군단장으로서 가장 큰 책임이 있었다. 번사이드는 결국 직위해제당했고 무보직 상태로 전쟁의 남은 기간을 보냈다. 전투 전날에 계획을 바꾸도록 종용한 미드 본인이 번사이드를 기소했으며 4명의 사단장(윌콕스, 레들리, 포터, 페레로)도 기소당했다. 그러나 레들리만이 12월에 지휘권이 박탈당하고 1월에 직위해제당했을 뿐이었다. 나머지 장군과 영관들은 이후에 명예 진급을 하는가 하면, 번사이드 본인마저도 ‘전쟁수행에 대한 합동위원회’에서 실패에 책임이 없다고 선언되었다. 오히려 최종적인 책임은 미드에게 돌아갔지만, 이미 번사이드는 철저하게 수모를 당한 뒤였고, 미드 본인도 실질적으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전투 과정에서 특히 레들리와 페레로의 무책임함은 크게 부각되었다. 윈필드 스콧 행콕이 맡은 특별 조사 위원회에서 그 둘은 “습관적으로 폭발로부터 안전한 곳에, 그들의 병력을 보지도 그들이 뭘 하는지 세미터리 힐을 점령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곳에 있었음”을 지적받았다. 심지어 그들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부하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받았다. 심지어 인종적 편견에 의해 평가가 엇갈릴 수 있었던 흑인 부대에 대해서도 그들의 상관과 주변 백인 병사들에 의한 찬사가 있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리고 백인 병사들이 비난하기 가장 쉬운 것이 흑인 병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랜트와 미드, 번사이드를 욕하며 “그랜트가 지휘하는 동안에 우리는 피터스버그 앞에 오래도록 있을 겁니다, 맥클랠란이 리치먼드 앞에 죽치고 있던 것보다 훨씬 오래요.”라고 말한 것과 같은 편지를 쓴 것은 당시 병사들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한편 기습공격을 당한 남군은 그대로 방어선이 일도양단 당할 수 있었음에도 잘 대처하여 위기를 성공적으로 진화했다. 윌리엄 마혼은 그의 휘하부대를 빠르게 이동시켜 최적의 시간에 역공을 가함으로서 북군의 의도를 끝내 좌절시켰다. 남군 병사들은 “악마도 말리지 못”할 정도로 분노에 차서 전투에 임했고 그들의 돌격은 끝내 북군의 전열을 와해시키고 이전까지 보여준 적 없었던 무질서한 도주를 강요했다.
그러나 결국 그가 이뤄낸 빛나는 전술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선은 변하지 않은 채로 유지되었다. 이후에 이뤄진 일런의 습격과 전투에서도 북군은 훨씬 많은 피해를 입은 채 남군의 방어선 앞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남군도 점점 고갈되어 갔다.
미드가 오더조졌네 -푸틴시진핑김정은개새끼
아게 그 콜드 마운틴 영화 오프닝 인가?
잘 읽었음
크레이터 연재 오랫동안 안올라오길래 중단된 줄 알았는데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