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城濱海, 倭寇不測, 欲遷都內地. 會耆老尹桓等, 書動·止二字, 議可否. 衆雖心不肯, 恐後有變, 禍將及己, 皆占動字書名, 唯崔瑩否. 慶復興·等, 詣太祖眞殿, 卜之, 得止字. 曰, “倭寇密邇, 可從卜耶?” 遣政堂文學權仲和, 相宅于鐵原諫之, 事遂寢.


개경이 해안 근처이기 때문에 왜구의 침략을 당할지 모른다고 우려해 내륙으로 도읍을 옮기고자 국가 원로인 윤환(尹桓) 등을 소집해 동(動)·지(止) 두 글자 가운데 한 글자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가부를 묻게 했다. 모두 비록 마음으로는 천도에 반대했지만 뒤에 변고가 있을 때 화가 장차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워 모두 동(動) 자에 이름을 썼으나, 다만 최영만이 반대했다. 경복흥(慶復興)과 최영 등이 태조의 진전(眞殿)으로 가서 점을 쳐서 지(止) 자를 얻었는데 우왕이 말하기를, “왜(倭)가 가까이 침략해왔는데, 점괘를 따르는 것이 가한가?”라고 하고 정당문학(政堂文學) 권중화(權仲和)를 철원(鐵原)에 보내 도읍에 적합한 땅을 살펴보게 했지만 최영이 간언하여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三女者, 江華府吏之處子也. 辛禑三年, 倭寇江華, 恣殺掠. 三女遇賊, 義不辱, 相携赴江而死.


세 처녀는 강화부(江華府) 향리의 딸이었다. 우왕 3년(1377)에 왜구가 강화를 노략질하여 살육과 약탈을 자행하였다. 세 처녀는 적과 마주치자 욕을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함께 강에 뛰어 들어 죽었다.


乙巳 元中書省遣直省舍人乞徹, 牒曰, ‘倭賊入寇, 必經高麗, 宜出兵捕之.’


을사 원(元)의 중서성(中書省)에서 직성사인(直省舍人) 걸철(乞徹)을 보내어 첩(牒)을 전달하였는데 거기에 이르기를, “왜적(倭賊)이 들어와 노략질을 하는데 반드시 고려(高麗)를 경유할 것이니, 마땅히 군대를 출동시켜 잡아주십시오.”라고 하였다.



二月 乙酉 紅賊移文于我曰, “慨念生民, 久陷於胡, 倡義擧兵, 恢復中原, 東踰齊魯, 西出函秦, 南過閩廣, 北抵幽燕, 悉皆款附, 如飢者之得膏梁, 病者之遇藥石. 今令諸將, 嚴戒士卒, 毋得擾民, 民之歸化者撫之, 執迷旅拒者罪之.”

2월 을유 홍건적이 우리에게 글을 보내 말하기를,
“백성들이 오랫동안 오랑캐에게 들어가 있던 것을 통탄하여 우리들은 의(義)를 내걸고 군사를 일으켜 중원(中原)을 회복한 후, 동쪽으로는 제(齊)와 노(魯)를 넘고 서쪽으로는 함진(函秦)에 진출하였으며 남쪽으로는 민광(閩廣)을 지나고 북쪽으로는 유연(幽燕)까지 이르니, 마치 굶주린 자가 산해진미를 얻고 병든 자가 좋은 약을 만난 것과 같이 모두 기뻐 귀부해 왔다. 이제 장수들에게 사졸을 엄중히 타일러 민(民)을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했으니, 귀순한 민들은 어루만질 것이며 어리석게도 반항하는 자는 처벌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乙丑 昧爽, 諸將四面進攻, 我太祖以麾下親兵二千人, 奮擊先登, 大破之, 斬賊魁沙劉·關先生等. 賊徒自相蹈籍, 僵尸滿城, 斬首凡一十餘萬級獲, 元帝玉璽,金寶,金銀銅印,兵仗等物, 餘黨破頭潘等一十餘萬遁走, 渡鴨綠江而去, 賊遂平.

을축 동틀 무렵에 여러 장수들이 사방에서 전진하여 공격하니, 우리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휘하의 친병(親兵) 2,000명을 거느리고 용기를 내어 공격하여 먼저 〈성에〉 올라가 적을 크게 격파하였으며, 적의 괴수 사류(沙劉), 관선생(關先生) 등을 베어 죽였다. 적이 달아나면서 서로 짓밟아서 쓰러져 죽은 시체가 성(城)에 가득 찼으며, 머리를 베어 죽인 것이 무릇 100,000여 급(級)이었고, 원 황제의 옥새(玉璽)와 금보(金寶), 금·은·동으로 만든 도장, 병장기 등의 물품을 노획하였다. 잔당인 파두반(破頭潘) 등 100,000여 명은 도주하여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가 버리니, 적들이 드디어 평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