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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0월 30일,
소련은 50MT의 차르봄바의 실기폭실험을 진행했다.

미국은 이러한 고출력 핵실험을 규탄하며
50MT급 수소폭탄은 무의미하며, 정치적이고, 쓸모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심 속으로는
"우리도 저런거 함 만들어볼까?"
라며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연구는 샌디아 국립 연구소에서 진행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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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BTV(Big Test Vehicle), FBTV(FlashBack Test Vehicle)를 개발하게 된다.

정말 미칠듯이 큰 핵폭탄을 탑재할 케이스를 개발한것이다.

이 사진을 보면 대충 크기가 짐작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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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BTV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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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FBTV의 사진)

BTV는 B-52의 폭탄창에 딱 들어맞도록 설계되었으며,
FBTV는 BTV보다 더 커서 B-52의 폭탄창에 맞지 않아 폭탄창의 도어를 떼내고 겉에 매달아서 달아야 했다.

이러한 핵무기 케이스들의 투하시험을 거치고 50MT~100MT급 핵무기를 설계후 테스트 할 기반을 갖추었다.

그러나 개발을 하기 전 개발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폭탄을 개발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으로 개발 결정을 미루다가 결국 취소되었다.

(뇌피셜이긴 하지만 아마 100mt급 핵무기를 어케 만들어야 할지 이론적인 연구는 했을거 같다.)

여기까지만 보면 냉전시기 치고는 광기를 조절 잘 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실현되진 않았지만
이보다 더한 진짜 광기는 차르봄바 이전부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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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폭탄의 기본적인 설계인 울람-텔러 설계를 만들어낸 수소폭탄의 아버지,
에드워드 텔러가 그 광기의 주인공이다.

에드워드 텔러는
2차세계대전이 끝나지도 않았을 때인 1942년부터
수소폭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고,

1944년 10월까지 100MT급의 수소폭탄에 대한 이론적 계산을 진행했었다.

그때부터 100MT짜리 수소폭탄뿐만이 아니라 엄청나게 거대한 크기와 폭발력을 가져
굳이 적에게 직접 가서 핵무기를 쓸 필요 없이 "뒷마당"에 핵무기를 가져다 놓고 터트려도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핵무기에 대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으로부터 2년이 지난 1954년,
일반 자문 위원회에서 10000MT, 즉 10 기가톤급 수소폭탄의 설계를 제안했다.

이를 실증하기 위한 GNOMON과 SUNDIAL 이라는 설계안에 대한 연구가 진행중이었다.

GNOMON은 1기가톤급(1000MT) 수소폭탄이었고,

GNOMON을 뇌관으로 사용하는  SUNDIAL은 10기가톤급(10,000MT) 수소폭탄이었다.

이 10기가톤급 규격외 핵무기의 위력은 예상하기 어렵지만
 
1963년의 한 연구는 이 10기가톤급 무기가 45km 상공에서 터졌을 때 "반경" 400km 안에 있는 것들에
화재를 발생시킬수 있다고 추정했다.
(수정: 직경이 아니라 반경이었음;;; 직경 800km)


레퍼:


냉전은 도대체 어떤 시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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