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2월 중공군 138, 140, 141, 156 사단 에서 약 12,000명의 병력을 차출해, 중국 만주 지역의 모든 조선족 부대는 허난성에 집결했는데, 그들 중 일부는 중국 공산당 소속으로 만주- 베이징 진격전에 참여한 베테랑이었다. 4월 초, 이 부대는 철도를 타고 한국으로 이동 후, 원산 지역에서 이 부대원들은 북한군 7사단 의 1, 2 ,3연대로 재편성함.
이 3개 사단 외 추가로 북한 제1 사단 과 제4사단 에는 각각 한 연대씩 국공내전 베테랑들이 있었는데 북한에 도착한 모든 부대는 소련제 무기와 조선 인민군복을 받았고, 소련의 그것을 벤치마킹한 북한 전술 교리로 재훈련을 받았음
1950년 3월에 북한은 만주에서 훈련한 10사단 과 3개의 유소년학교 출신의 병들 및 노련한 공산주의 장교, 부사관들로 구성된 15사단을 창설함. 3월에 가동했지만 15사단 은 남침 시작 후인 6월 말에 병력의 대부분을 수용, 남한 침공 직전인 6월 초에는 13사단이 마지막으로 가동됨.
1950년 6월, 제 105기갑 연대 는 6,000명의 병력과 120대의 T34 탱크를 갖춘 제105기갑 여단으로 승격됨. 탱크, 무기 및 차량 등 장비는 모두 소련제로 무장함. 여단은 3개의 탱크 연대(107, 109, 203) 로 각각 40대의 탱크를 보유하고 있었고 기계화 보병 연대인 206 연대 는 약 2,500명의 병력을 보유함. 탱크 연대에는 각각 13량 씩, 총 3개의 중(中)전차 대대를 보유했음. 대대 별로 4량을 보유한 전차 중대를 3개 중대씩 보유했고, 탱크 승무원은 5명으로 구성됨. 대대, 연대, 사단 전차 사령관은 별도의 지휘 전차에 탑승함. 제 105기갑 여단은 1950년 6월 말 서울에서 사단으로 승격되어 한강을 도하해 계속 남진함.
*이 전차 사단이 차후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 땅크사단이 된다. 서울에 1빠로 입성해서 근위 서울이라고 붙여줌
서울에 입성한 105 기갑 여단의 T-34-85
105기갑 여단 소속 120량의 전차 외에도 다른 전차 연대의 신형 전차들은 6월 말에 북한에 제공된 것으로 보이며, 북한군 7(12)사단이 인제 방면을 넘기 직전에 전차 30량이 추가 합류한 것으로 알려짐 .
이로써 북한은 1950년 6월 소련제 T34 탱크 총 150대를 수령했음. *체코제아님
침공 6개월 전에 방어전용 4개 사단과 기갑 연대로 구성된 군대를 공격용 7개 사단과 기갑 여단으로 추가 편성하여 전력을 두 배로 늘리며, 새로 훈련하여 가동한 3개의 다른 사단과 2개의 독립 연대까지 추가해버림.
추정 통계를 내보자면, 7개 돌격 보병 사단에 속한 77,838명 +전차 여단 6,000명, 독립 보병 연대 3,000명, 오토바이(모터찌클) 연대 2,000명, 3개 예비 사단 23,000명, 국경 경비대 18,600명, 1군 및 2군 사령부 인원 5,000 명 해서 1950년 6월 북한 지상군(북한군+국경 경비대)의 병력은 약 135,000명으로 추산됨.
북한의 보병 사단은 최대 병력이 11,000명이었는데 3개의 소총 연대로 구성된 삼각 사단이었고, 각 연대는 3개의 대대로 구성됨. 각 사단은 필수로 포병 연대와 자주포 대대를 갖추고 있었음.
*삼각 사단: 보통 사단의 구성 방식으로 3개 연대로 구성되어 있어 트라이앵글러 디비전, 즉 삼각 사단이라 칭함, 사각형인 사각 사단도 존재한 적 있음.
+의료, 통신, 대전차, 공병, 훈련 대대, 정찰 및 수송 중대 포함.
1950년 북한 사단의 포병 지원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 사단의 포병 지원과 매우 흡사했는데
사단에는 12문의 122-mm곡사포(M-30으로 추정)
24문의 76-mm 포(지스로 추정).
12량의 Su-76 자주포,
12문의 45-mm 대전차포,(M-42 ㅈ같이 생겨서 프라모델 커버없음)
36개의 14.5-mm 대전차 소총(PTRS-41)을 포함해 연대와 대대는 자체적으로 지원용 무기들을 보유함.
예를 들어, 각 연대마다
6문의 120-mm 박격포를 보유, 4문의 76-mm 곡사포(지스), 6문의 45-mm. 대전차포(M42)를 보유했고
각 대대는 9문의 82-mm박격포를 보유, 2문의 45-mm. 대전차포 및 9개의 14.5-mm. 대전차 소총 보유.
중대에는 자체 61-mm 박격포 보유(듣보잡인지 정보없음).
완편된 북한의 소총 연대는 2794명으로 장교 204명, 부사관 711명, 병사 1879명이었다.
소련은 처음부터 NKPA(조선인민군)을 후원해 전쟁의 동력을 제공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105기갑 여단의 소련제 T34 탱크로서 제2차 세계 대전 말 소련군의 표준 중형전차로 소련군은 1941년 7월 독일군을 상대로 이 전차를 처음 투입했다. 구데리안은 툴라와 모스크바에서 그의 진격을 꺽은 최대 공로를 이 전차에 부여함. T34의 무게는 32톤, 실루엣이 낮고 넓은 트레드와 무거운 장갑판 및 85mm를 탑재, 2개의 7.62-mm기관총을 차체 동축 기관총으로 장착, 다른 하나는 포신 동축 기관총으로 장착했다.
소련이 NKPA에 공급한 기타 무기 품목에는 상기한 품목 외에도 휴대 무기; 이 무기의 탄약; 그리고 수류탄이 포함되어 있었고,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트럭, 지프, 라디오, 사격 통제, 통신, 의료장비도 받았다
1950년 봄, 소련은 북한행 수송선에 특히 더 많은 양의 무기와 군수품을 선적했다. 포로로 잡힌 한 인민군 보급장교는 1950년 5월에 북한 5사단에 줄 보급품을 구하러 청진에 갔을 때 소련 상선들이 무기와 탄약을 하역하고 있었고 트럭들이 항구 해안가 일대를 붐볐다고 말했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선원들은 그 배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왔다고 증언했다. 한국 전쟁 초기 몇 달 간 노획된 북한 장비의 일부 표시는 이 장비가 1949-50년 소련 제조품이란 것을 증명했다. 그러므로 소련이 주장한대로 재조선 소련 점령군 철수 후 남겨진 무기라고 할 수 없다.
북한은 소련이 준 약 180대의 항공기로 전쟁을 시작했는데, 이 중 약 60대는 YAK 훈련기였고 40대의 YAK 전투기; 70, 공격기; 및 10대의 정찰기였다.
북한 해군은 다양한 유형의 약 16척의 초계선과 덱건을 장착한 연안 증기선 몇 척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 다음편: 1950년 6월 한국전쟁 직전의 한국군 편제와 상황
정보추
재밌게 봤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