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2월 1일에 우크라이나 국민투표가 실시되기 전 고르바초프는 독립에 대한 지지가 절대 70%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옐친은 국민투표의 결과를 확신하지 못해음. 그래서 우크라이나가 소련에서 떠나지 못 하게 압력을 가하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1991년 8월말 옐친은 공보비서를 통해 '우크라이나와 다른 공화국들이 독립을 선언하면 러시아는 이 공화국들과 국경문제를 논의할 권리를 갖는다'는 발표문을 준비시키고 '크림반도와 돈바스 탄광 지역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이 분쟁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위협을 했다. '만일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주장하면 국토를 분할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위협이었음. 그리고 옐친은 부통령인 알렉산드르 루츠코이를 단장을 맡은 고위급 대표단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해서 우크라이나에게 독립에 대한 입장을 바꾸라고 위협했음. 하지만 우크라이나에게 옐친의 허세질은 통하지 않았음. 사실 당시 옐친은 자신이 우크라이나에게 경고한 위협을 실행할 수가 없었음. 위협을 실행할만한 정치적 의지도 없었고 위협이 가능한 자원이 없어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물리적인 위협을 실행할 수가 없었음.


우크라이나 국민투표에서 90% 찬성률이 나온 후에도 옐친은 크라프추크를 어떻게든 연방에 남으라고 설득하려 했다. 1991년 12월 8일 벨라루스 벨라베자의 사냥 휴양숲에서 크라프추크를 만나서 소련의 새 연방조약안에 서명하도록 설득하려 했다. 이에 대해 크라프추크는 크림반도와 동부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모든 주의 국민투표 결과를 언급하며 옐친의 설득을 거부했다. 이것은 결국 옐친의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 옐친은 크라프추크에게 '만일 우크라이나가 연방조약안에 서명하지 않는다면, 러시아도 서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옐친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이 우려하는 점이 무엇인지 몇 차례에 걸쳐서 말했다. 바로 '우크라이나가 없는 상태에서 연방에 러시아가 남아 있으면 이슬람계 주민들에 비해 수적 열세에 처한다'는 것이었다. 옐친은 우크라이나가 없는 소련에 수적으로 강세가 되는 이슬람계를 우려한 것이었음


출처: 세르히 플로히,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 독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허승철 역, (서울 : 한길사, 2022), p.548, 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