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진 10년 전에 군 생활을 해서 이젠 가물가물한데...


하루는 야외로 훈련을 나가게 되었음.


소속 부대 작전 지역이 철원이라 철원 평야로 나가서 훈련을 하는데,


작전 지역 인근에 위치한 8사단 xx연대 보병대대가 관리하던 시설을 훈련 중에 사용하게 되었음.


그래서 대강 훈련 협조? 이런 행정적인 이유로 해당 부대를 방문한 걸로 기억함.



근데 마침 해당 부대가


당시 8사단이 기동사단으로 개편하면서 해체 예정이었던 부대였음.


그것도 해체를 정말 2~3일 앞둔 소멸 직전의 부대였음.



소속 부대 닷지를 타고 해당 부대에 들어서는데


다 낡아서 무너져가는 시설에다 이마저도 해체를 앞두고 있으니


전혀 유지 보수를 하지 않아서 다 녹슬고, 잡초가 무성한...


마치 폴아웃 같은 아포칼립스물에서 종종 나오는 폐허가 된 마을과 같은 장소였음.


거기다 연병장에는 이른 아침의 연무마저 잔뜩 끼어서


정말 황량하고 을씨년스럽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곳 이었음.



아무튼 같이 닷지를 타고 온 자대 간부가 해당 보병대대 간부를 찾으러 간 사이에


닷지에서 내려서 후임이랑 같이 근처를 배회하면서 구경하는데,


어디서 불쑥 해당 보병대대 아저씨가 나타났음.


행색을 보니 이 아저씨도 조식을 대강 먹고 연병장 근처를 배회하다가


타부대 아저씨들이 두리번 거리는걸 보고 궁금해서 다가온 것 같았음.



서로 대강 인사를 나누고 노가리를 까면서 이 아재로부터 부대 얘기를 듣는데,


해당 부대는 해체를 달랑 2~3일 앞두고 있고,


잔존 병력은 수십명 규모로 모두 8사단 예하 부대로 각기 뿔뿔이 흩어질 예정이라고 했음.


해체가 이미 1년 가까이 전에 계획되어 그 이후로는 병력이 새로 보충되지 않았고,


현재 가장 계급이 낮은 병사가 상병으로 전 병력이 병장~상병으로 구성된 기이한 부대였음.


당연한 얘기지만 1년이 넘도록 상병을 달고도 막내 생활을 하는 병사가 여럿 되는 상황이었고,


이마저도 해체를 앞두고 병력 모두가 각기 뿔뿔이 흩어질 운명이라는 것이 결정된 몇 달 전부터는


부대 잔존 병력들의 아저씨화(化)가 급속히 진행되어


서로서로 비공식적으로 ~해요체를 쓰면서 아저씨로 통칭하는 아주 독특한 문화가 발달한 상태였음.



거기다 PX 마저 몇 달 전에 철수하여 사실상 부대 내 기호품 재고가 메마른 상태였고,


부대원들이 간혹 있는 출타 장병, 혹은 얼마 안 남은 간부들에게 구걸하며


담배나 간식거리 같은 기호품의 수요를 간신히 충당하는,


마치 훈련소 시절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음.



또한 간부들도 하나둘씩 부대를 떠나


더이상 병력을 통제할 간부조차도 얼마 없었고, 부대 일과도 몇 달 전부터는 사실상 없어져


인근 부대에서 추진해온 식사를 하루 세끼 취식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체력 단련을 하는 게 주된 일과라는 얘기도 듣게되었음.



이러한 얘기를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서서히 이른 아침의 연무가 걷히면서


부대 시설 인근에 2~3명씩 옹기종기 모여있는 해당 부대 아저씨들 무리를 관찰할 수 있었는데,


다들 덥수룩한 두발 상태와 대강 쓴 전투모, 아침부터 풀어헤친 전투복 등


마치 예비군 뺨치는 지루함에 찌들어 몸부림 치고 있는 잔존 병력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음...



아무튼 이처럼 기묘한 부대의 광경에 휩쓸려 후임과 함께 정신줄을 놓고 있던 사이에


해당 부대 간부를 찾아서 사라졌던 자대 간부가 돌아왔고,


닷지를 타고 본대로 복귀하면서


적재함 뒤로 사라져가는 해당 부대의 모습을 보며


뭐랄까...굉장히 오묘한 기분이 들었던게 지금도 가끔씩 생각이 남.



태풍 온다고 잠을 설쳐서 밤 새다가 끄적여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