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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군은 적 앞에서 전우들을 저버리고 비겁한 행동을 한 자를 결코 용서하는 법이 없었고,

적 앞에서 멋대로 빤스런한 자나 겁먹고 임무를 포기한 자에게는 군법에 의거하여 

문자 그대로 "박살" - 즉 빠따로 패죽이는 사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새끼가 분명 전장에서 비겁한 짓을 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문자 그대로 뚝배기를 깨버리기엔 좀 그렇다...싶은 경우도 있게 마련이었고

이런 경우에는 대로변에 세워두고 지나다니는 시민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게 하는 조리돌림형으로 처벌을 갈음하였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렇게 구경거리로 만들 때 비겁자에게 벨트를 푼 채로 서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벨트가 풀렸으니 튜닉이 흘러내리고 풀려서 꼬라지가 몹시 추해지겠지만,

이 형벌에는 단순히 옷이 꼴사납게 흘러내리는 것보다 훨씬 수치스러운 의미가 있었다.



일찌기 이탈리아 중부로 한창 팽창중이던 공화정 로마를 애먹인 숙적, 용맹한 산악 전사민족 삼니움족은

청소년이 자라서 성인 남성으로 자라면 폭이 넓은 벨트를 차는 것을 허락받았다.

청동과 가죽을 합쳐 만든 이 벨트는, 전사가 전장에서 칼과 칼집을 차기 위한 필수품이었으므로

"이제 너는 칼을 찰 자격이 있는 한 사람의 어엿한 전사가 되었다." 는 자랑스러운 상징이었다.

싸우면서 정든다고, 피튀는 혈전 끝에 삼니움족을 마침내 굴복시켜 로마에 종속된 동맹국으로 받아들인 로마인들은

삼니움족의 투창을 받아들여 개량, 수백 년간 로마군의 상징이 된 필룸으로 삼았듯

삼니움족의 벨트도 받아들여, 군단병의 상징이자 자랑으로 삼았다.

(일반 로마 시민들이 튜닉을 입을 때는, 그냥 보통 끈으로 허리를 묶었다.)  



즉 로마 군단병이 벨트를 압수당한 채로 시민들 앞에 세워진다는 것은

"나는 벨트(와 칼)를 차고 군단병이라 자처할 자격조차 없는 존나 겁쟁이새끼입니다." 라는 팻말을 

목에 건 거나 다름없는 최악의 치욕이었던 것이다.

로마군의 명예형에는 보리(말 사료 배식), 숙영지 밖에서 군단 노예들과 같이 자게 하기 등도 있었지만

그건 최소한 한심한 짓을 저지른 "군단병"으로서 받는 처벌이기라도 했지

벨트 압수형은 군단병의 자격 자체를 부정당하는 최악의 치욕으로서

박살형이나 채찍질 같은 직접적 형벌을 제외하면 가장 무거운 형벌이었을 것이다.




- 오사다 류타 저 "고대 로마 군단의 장비와 전술"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