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빌헬름 프란츠 카나리스
독일 도르드문트에서 이탈리아계 (본인은 그리스계라고 죽을때까지 믿고 있었음) 사업가집안에서 출생.
독일 킬의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그라프 폰 슈페(순양전함 그라프 슈페 ㅇㅇ)의 아시아 함대 소속으로 1머전 참전 포클랜드 해전에서 포로가 되나 호송과정에서 탈주 독일인 사업가의 도움으로 남미 스페인 영국(?!)을 거쳐 독일로 귀환하는데 성공함. (이미 그는.1905년 부터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에 능통한 실력자였음)
이후 지중해에서 u보트 함장으로 근무하면서 1년 남짓한 기간동안 18척의 상선을 격침시키며 에이스가 됨.
전간기 : 독일 킬 군항 반란으로 폭동의 조짐이 보이자 자경대를 조직 혁명군을 억누르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호른스트 폰 플러그하투르크와 같은 골수 우/익과 친분을 쌓아가며 군법회의에도 참가 로자 파크스, 칼 리프트네히크같은 공산주의자 살해 혐의를 받은 군인들을 감형, 방면 시켜주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의 그는 극렬한 반공주의자였을 알 수 있음.
이후 그는 그 롬멜도 대위로 내내 있어야 했던 바이마르체제에서 31년 대령으로 승진 순양함 베를린의 부장을 거쳐 독일의 전노급 전함이자 유일한 전함이었던 슐레지엔 함장으로 재직하는 등 고속승진을 거침.
30년부터 나치당과 협렵관계를 쌓아오던 그는 함장 재직 중에 히틀러의 눈에 들었고 35년 독일군 정보부이자 가장 강력한 해외첩보부였던 아프베어의 사령관으로 임명됨.
활약 : 35년 국장으로 임명되자마자 그는 고작 수개월만에 스페인에 대규모 첩보망을 조직하는데 성공하였고 스페인 내전 내내 막후 실력자로서 프랑코가 승리하는데 기여하면서 이때 프랑코와 친분을 맺음.
그 외에도 미국과 프랑스에 첩보망을 구축하면서 노든 폭격 조준기, 로켓 액체연료, 프랑스군 암호문 입수 등과 같은 전과를 올림.
배신의 조짐 : 37년까지는 반공주의자로서 히틀러와 나치당이 카이저를 대신해 독일국민을 하나로 묶고, 공산주의를 막을 대안으로 생각해 히틀러를 지지하였으나 안슐루스, 뮌헨협정과 같이 기겁할만한 대외팽창정책을 이어나가자 히틀러를 도리어 독일을 파멸로 이끌놈이라고 판단. 그때부터 반 나치 활동의 주역이되어 독일을 물먹이는 활동을 개시함.
비헬름 2세의 장례식에 참석한 카나리스 (사진 맨 왼쪽 해군 정복을 입은 사람)
전간기 배신(?)의 행적 :
1. 독일의 주테텐란트 점령을 넘어선 체코슬로바키아.합병을 저지하려고 함, mi6와 접촉해 영국이 나서면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으나 체임벌린이 '우리 시대의 평화' ㅇㅈㄹ 하면서 물거품이 됨
2. 프랑코에게 지브롤터를 점령하지 말라고 조언
3. 38~39년 폰 클라이스트모임에서 히틀러.암살 미수에 관여
4. 39년 "네덜란드 전쟁의 공포"라는 가짜문서를 만들어("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해 전술폭격기로 영국을 공격하려 한당깨요."라는 내용. 1년뒤에는 예언이 되는...) 영국공군이 프랑스로 배치되도록 유도(대륙협정)
5. 폴란드 침공 개시 전 영국 mi6에 아프베어 부국장이었던 한스 오슈터를 통해 mi6에 정보를 흘림
2차 대전 시기 : 폴란드 점령 이후 바르샤바에서 전쟁의 참상과 조직적인 유대인 학살을 목도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이를 증거로 수집라는 한편 mi6에 전문으로 보내기도 함.
또 OKW에도 항의했으나 비헬름 카이텔로부터 욕만 얻어먹고 크게 실망, 이후 이.모든걸 개인 일지로 남겨 나중에 재판에서 나치가 조직적으로 학살했다는 단서의 일환이자 카이텔이 사형을 받게되는 데 중요한 증거가 됨.
그리고 이 시기 그는 죄책감과 스트레스로 우울증에도 걸리는 등 내적 갈등이 심했음.
그래서 아프베어는 유대인 학살에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정보를 mi6에 흘리는 동시에 일부 유대인을 스페인이나 스위스로 도피시키기도 하고(그렇지만 유대인 학살 명령에 사인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는 이중적인 모습도 보였음), 일부러 정보부 일을 태업하기도 함.
왜냐하면 2차대전 동안 독일 아프베어는 놀랄만큼 정보역량이 떨어졌으며 1941~3년 동안 트램프 작전, 파트로리우스작전 같은 아프베어가 미국에서 전개한 작전들이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고 베리야의 레드 오캐스트라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라(카나리스가 나치 소멸겸 소련 힘을 빼려는 의도로 정보를 흘림) 말 그대로 독일 정보기관이 연합국 정보기관에 놀아나던 때이기 때문.
특히 42년 soe가 계획한 하이드리히 암살작전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방조하면서 아프베어를 sd로 합병하려던 하이드리히를 죽게 내버려둠.
1943년 mi6와의 접촉을 계속하면서 영국의 프랑스 담당 정보책임자인 클라우드 올리버 대령과 접촉해 처칠과 협상을 하려 하나 "무조건 항복"이라는 답변만 돌아옴.
밟히는 꼬리 : 이미 하이드리히에게 폴 텀멜이라는 mi6요원을 이중간첩이라고 빼내면서 의심을 받기 시작한 이래로 아프베어 부국장인 한스 오슈터의 반역행위, 히틀러가 기획한 무솔리니 실각 이후 에마누엘레 3세와 비오 12세의 납치작전이 사전에 이탈리아 국민에게 누설(?!)되는 등 정보실패와 주변의 반역행위로 카나리스는 히틀러의 신임을 잃어 가던 중 44년 2월 아프베어 요원들이 영국에 투항한것을 빌미로 해임되어 가택연금에 처해짐.
최후 : 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이 발생한 것은 카나리스의 연금 이후라 한동안 화를 면했지만 게슈타포의 지속적인 고문으로 반 나치 인사에 카나리스가 포함되었다는 자백이 나왔고 카나리스는 체포됨.
히틀러와 힘러는 연합국과의 협상을 위해 카나리스를 살려두었으나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45년 4월 9일 피아노줄로 플로쉔베르크 수용소에서 처형됨.
사형 전 옆방의 수감자에게 벽을 두드리는 모스 부호로 "난 독일의 영광을 위해 일했고, 변절자가 아니다."라는 유언을 남김.
그의 행적은 부하 장교였던 에르빈 폰 라하우젠과 한스 베른트 기제비우스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증언하면서 알려지게 됨.
반 나치 인사 추모비 (가운데에 카니리스의 이름이 있음)
# 결론 : 음모가 몇명으로 세상이 돌아가는게 아닌걸 제대로 보여주네
여담 1 : 카나리스는 사진 찍는 걸 극도로 싫어했는데 공식석상에서 찍힌 사진도 얼마 없음. 정보부 사람이라 싫어했던건지 노안이라 찍기 싫어던 건지는 알 수 없음. 대놓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비교적 사진이 많이남은 하이드리히와는 확실히 대척점에 있는 인물
카나리스의 30대 초반... 사진
여담 2 : 하이드리히와의 관계는 복잡미묘한데 하이드리히가 통신장교이던 시절 정보국 장교였던 카나리스 휘하에 잠시 있었고, 그가 35년에 아프베어 국장에 오른 것도 나치 정보부인 sd와 게슈타포를 이끌고 있던 하이드리히의 추천 덕분이라는게 중론.
이후 하이드리히가 카나리스의 옆집에 이사하면서 실내 음악회를 갖는 등의 친분을 쌓는 동시에 서로서로 경쟁하면서 감시함.
그래도 하이드리히는 카나리스에게 꼼짝 못했는데 그의 강/간행적을 알고 있다거나 유대인 혈통인걸 알고 있었다는 설이 있음.
하이드리히는 의뭉스러운 카나리스를 의심하다 예의 이중간첩 사건이 벌어진 이후 아프베어를 손에 넣으려 하나 카나리스가 암살을 방조하면서 아프베어는 수명이 연장됨.
하이드리히 암살에 관해서 다들 하이드리히를 비웃거나 죽어도 싼 놈이라고 깔때 카나리스는 말을 아꼈다고 함.
여러모로 애증의 관계였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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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사진 맞노? - dc App
군인 기준으로도 상당한 노안임 ㄹㅇ...
오래되긴했지만 이 사람을 다룬 EBS다큐가 유튜브에 올라와있음
https://youtu.be/k0ZJS2-BMoA
ㅇㅇ ebs 시리즈 - dc App
비헬름이 아니라 빌헬름(Wilhelm)임. 콧수염 황제도 - dc App
오타 수정함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