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베레쉬챠긴(Василий Верещагин)
노브고로드의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서 본래 군인을 꿈꾸며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함. 하지만 군생활보다는 군대를 묘사하는 군사미술에 관심을 보이며 미술아카데미 야간반에 다니며 그림을 배움. 이때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던 고전주의 양식의 화풍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에도 열심히 공부했음.
이때 그가 그렸던 작품은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율리시즈가 수십년의 방황 끝에 고향에 돌아와서 자신의 아내 페넬로페를 희롱하던 남자들을 때려죽이는 클라이막스의 장면이었음. 현실성 넘치는 폭력을 담아낸 이 그림은 교수들의 극찬을 받으며 그해 아카데미 졸업작품전에서 2등을 차지했지만, 베레쉬챠긴은 '다시는 이런 걸 그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림을 찢어버렸음. (현재 이 그림은 연습용 스케치만 남아있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정복자에게 바친다"
이후 사관학교를 졸업한 베레쉬챠긴은 임관 대신 파리로 가서 프랑스 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옴. 1867년 러시아 제국이 남진정책으로 중앙아시아를 침공하자, 그는 종군화가로 참여하여 사마르칸트등의 전투에 참전함.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벌어지는 참상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그는 '전쟁은 무서운 비극이다'라는 사실을 뼈져리게 실감함. 그래서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는 그리지 않겠다던 폭력적인 그림들을 여러개 그려내기 시작함.
중앙아시아의 전쟁을 다룬 연작들은 러시아 미술계에서 큰 관심을 받음. 그의 그림들은 군대의 복식등 고증과 현장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아졌음.
그 후로 베레쉬챠긴은 러시아-투르크 전쟁, 영국령 인도의 반영항쟁, 미국-스페인 전쟁등 제국주의 열강들이 일으킨 수많은 전쟁에 종군하여 거기서 본 것들을 그림으로 남겼음. 이 과정에서 형제가 전사하는 걸 무력하게 지켜보기도 하고, 자신도 총에 맞아 부상 당하기도 함. 그런 경험들 덕분인지 그의 작품들 속에 나오는 군인들은 공통적으로 전쟁의 영광보다는 고통 받고 상처입은 모습들을 보여줬음. 특히 베레쉬챠긴은 수십년의 징병기간으로 사실상 평생을 복무해야하는 사병들, 무능력한 장교들, 그리고 부패한 장군들이 가득찬 러시아 제국의 비효율적인 군제도를 강력하게 비판했음.
"나는 화가로써 전력을 다해 전쟁을 비난한다. 이 방식이 효과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정면으로 맞서 가차없이 비난한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힘으로 누르고 지배하는게 당연시라고 여겨지던 19세기에 그의 이런 행보는 수많은 정치인들과 기득권층들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였음. 그는 새로운 그림들을 내놓을 때마다 높으신 분들한테 매국노 소리와 협박을 받았음. 1870년대 베레쉬챠긴은 이미 러시아 미술아카데미한테서 공식적으로 교수직을 제안 받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 받았으나, 적을 너무 많이 둔 탓에 그는 교수직을 거절하고 평생 그림만 그리면서 살았음.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베레쉬챠긴을 가리켜 '짐승새끼거나 미친놈 둘중 하나다'라고 평가함.
자신에 대한 비난이 강해질 때마다 베레쉬챠긴은 잠시 외국으로 떠나 2~3년 정도 여행을 하고 돌아왔음. 그는 유럽도 돌아다녔지만 주로 중근동, 아시아, 인도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양식에 깊은 관심을 보였음.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전쟁에 관련없는 풍경화나 외국의 생활상을 담은 것들이 절반 이상임.
러시아 정부는 그가 매우 마음에 안들었지만, 유럽 미술계에서 그의 존재감이 아주 강했고 더군다나 그의 그림 중에서는 프로파간다용으로 써도 될 정도로 멋지게 나온 그림들도 꽤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음. 그래서 한번은 아예 회유책으로 '나폴레옹 전쟁을 묘사한 그림들 좀 그려주면 귀찮게 굴지 않겠다'고 제안함.
그 결과, 베레쉬챠긴은 반복되는 유배에 지쳤는지 그 제안을 받아들임. 그리하여 1893년 대조국전쟁 승전 80주년을 기념하여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의 군대를 묘사한 그림들을 여러개 그려냈음. 문제는 이 그림들조차 어느 한 구석에 전쟁의 어두운 면이 서려있는 느낌을 주었음. 그래도 그림들이 너무 멋졌기 때문에 높으신 분들의 입맛에 잘 맞았음.
20세기에 들어서자 베레쉬챠긴은 예순의 나이로 어딜 돌아다니는게 힘든 몸이 되었음. 하지만 그는 저 멀리 극동의 일본으로 여행을 감. 그런데 하필 일본에 도착하고 나서 몇개월 되지 않아 러일전쟁이 발발하여 그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을 떠나야 했음. 하지만 베레쉬챠긴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전쟁을 그려야겠다는 일념으로 러시아군함에 올라타 뤼순으로 향함.
"나는 평생 태양을 좋아했고 태양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모든 일을 제껴두고 그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되어 기뻤다.
하지만 전쟁의 공포는 계속해서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1903년 3월 31일, 그가 탔던 러시아 태평양함대 전드레드노트급 군함 '페트로파블로스크' 함은 일본해군이 부설한 기뢰와 접촉하여 굉음을 내며 폭발한 뒤 1-분만에 침몰해버림. 베레쉬챠긴의 시신은 찾을 수 없었음.
그가 만약 살아남았다면 러일전쟁의 모습과 더 나아가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서 풍전등화와 같았던 한국의 모습을 그렸을 지도 모름.
대단하다...
케테 콜비츠랑 비슷한 사람이네
종군 리멤브런서 추
세포이 대포샷이 저양반 그림이었구나
천재다
와 나폴레옹 저 그림을 이양반이 그린거였구나 ㅊㅊ
참된 화가였구만
마카로프 제독과 같이 죽었구나 그림 분위기 미쳤다 복식사쪽 기절할듯
4, 5는 시신 앞에서 무덤덤하게 담배피거나, 월척 건져올린 어부 마냥 흐뭇한 표정으로 적 목을 들아올리거나 해서 더 섬찟하네...
와 그림 분위기 개지린다
고맙. 끝내주네
베레쉬챠긴 ㅇ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