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페리 제독이 흑선을 이끌고 내항하였을떄
일본은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보지도못한 검은배의 위용이며
검은배에 탑재된 함포가 자신들이 쓰던 구형대포가 격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페리 내항이후에 다이묘들은 나름대로 서양에 맞서기 위해
군사력 강화를 꾀하게 되는데 특히 이러한 모습은 막부와 멀리 떨어진
토자마다이묘들에게 찾아볼수가있었다.
그 선두주자로 서있던것이 사츠마번인데
사츠마 11대 번주인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에도의 중앙고위관료
노중 아베 마사히로와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 받으며 군사력강화에 대한 묵인을 받아내었고
집성관 사업을 통해 포대와 성벽의 정비와 축조를 통해 해상방위력을 강화하고자하였다
특히 서양 신식 문물에도 관심이있어 네덜란드를 통해 얻은 난학(서양학문) 책을 통해
설계도만으로 신형 서양식 배를 건조하는등 다방면에서 군사력강화를 꾀하였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대포를 사용할떄 쓰는 발화제로서의 알코올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본디 사츠마는 화산재로 뒤덮인 땅이라 농경에 적합하지않았는데
그렇기에 알코올의 재료가되는 쌀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고구마의 대량 재배를 통해서 고구마를 쪄서
증류시켜 알코올을 얻어내는것으로 해결한다
필요한 량의 알코올을 얻은후에 남은 알코올들은 소주로서 만들어지게되고
가고시마의 특산품인 고구마소주가 발전하게 된것은
나리아키라의 덕택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읍니다, 답은 고구마였읍니다...
역시 사람들 잔머리 굴리면 안 되는 것도 다 된다니까요.
사쓰가 사쓰마이모...
참고로 고구마소주는 맛있다
기술의 국산화
나리아키라가 급사만 안했으면 도막따윈 개꿈인데 아쉽지.ㅋㅋㅋㅋ
저 동네에서 조병창도 독자적으로 건설했다고 들었는데 사실?
독자적으로 건설하긴했는데 은근히 막부지원있긴했음
기승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