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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쇼군 계승 문제로인한 


노중 아베마사히로의 실각과 나리아키라의 죽음으로 이러한 군사력강화는 맥이 끊키게 된다


나리아키라의 뒤를 이은 아들 시마즈 타다요시는 젊기도 하였고 아버지에 비해 식견과 패기가 부족하여


아버지의 뜻을 잇지 못해 사츠마의 무사들과 지사들이 매우 한탄스럽게 여겼다고한다


후에 유신 삼걸인 오쿠보 도시미치 , 사이고 다카모리에 권고에 의해 병력을 이끌고 막부타도를 위해


병력을 이끌고 에도로 가고 도막 후에는 사츠마의 지도자가 되었다고하나 


실권은 사이고 다카모리가 쥐고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에 사이고는 무사계급의 탄압에 반발하여 각지의 무사와 화족들을 규합해


사츠마의 병력을 훈련하고 무기를재정비한 뒤


메이지 정부군에 싸움을 거나(서남전쟁) 결국 메이지정부군에게 진압되고


서남전쟁에서 전사하였다. 이로서 사츠마의 군사력강화는 메이지정부에 의해


끝나나 사츠마의 이러한 시도는 각유신지사들과 메이지정부에 큰 영향을 준것은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