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 이임학은 함흥출신으로, 경성제대를 졸업하였는데, 당시부터 이미 엄청난 수학천재로 알려져서 일본인 교수들도 인정할 정도였다

그 역시 물리학과 였지만 일본인 교수들과의 교류에서 수학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는 제2차세계대전당시 만주국의 항공기 회사의 품질 관련 업무를 맡으면서 징집을 회피했고

해방때즈음에는 함흥에 있었기도 했지만 해방직후의 여러 상황속에서 북쪽의 공산화에 반감을 품고 단신으로 월남하여 서울대 교수가 되지만, 미군정의 국립대화 방안에 반발하기도 하여 결국 함흥으로 돌아가서 김일성 종합대 교수를 맡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공산주의자들의 하는짓에 영 맞지는 않았는지라 그는 남쪽으로 돌아올수밖에 없었고 서울대에서 교수직을 하는 그 와중에 한국전이 발발, 한강 철교 폭파로 인해 피난에 실패하고 1년이상 서울에서 숨어지내다가(서울대 교수정도의 사람이니 그 정체가 발각되면 북괴가 납북해갈수도 있으니)

1951년 남쪽으로 피난하여 부산으로 이동한다

거기서 해외 유학에 큰 관심을 가졌고, 그는 1953년 캐나다 서부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으로 유학을 떠날수있었다


근데 캐나다 체류중 주 캐나다 한국대사관에 찾아가서 여권 갱신을 하려고하니

너 같은 군대 안간놈에게 여권 못준다고 하면서 여권을 몰수해버렸고 캐나다 정부는 아이고 저런 수재가 무국적자 신세가 되다니 이럴수가 있냐 그러면서 캐나다 시민권을 줘버렸음


그는 학술교류로 북한에 가는 일도있었지만 그걸 본 중앙정보부는 남한에 남아있던 이임학의 어머니를 잡아다가 괴롭히기도 했었고 결국 이임학은 북쪽과의 어떠한 교류도 끊어버림. 그렇지만 뿍쪽의 친척들에 관심이 많았던 이임학은 헝가리 출신의 방랑 수학자 에르되시 팔(그는 헝가리가 공산화 된 이후 공산권 국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수있었던 몇 안되는 인물이였다)을 통해서 북쪽 친척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캐나다에서 교수하며 수학연구하면서 살던 그는 90년대가 되어서야 입국금지가 풀려서 한국에 갈수있게 되었다고 한다


2005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