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가 교황, 인노첸시오 3세(Innocentius III 1161년 2월 22일 ~ 1216년 7월 16일)에 의해 효력을 잃었습니다.

당시 교황이 이르기를,

"부끄럽고 모역적일 뿐만 아니라, 불법적이며 부당하다!"

라며 무효 칙령을 선포했습니다.

존 왕과 귀족들은 다시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움직인 자는 반란군 귀족인 벨보어의 영주인 윌리엄 도비니(William d'Aubigny ~ 1236년 5월 1일)였습니다.

로체스터 성이 존 왕의 손에 떨서지면 남동부에 강력한 기반이 될 것이기에 9월에 자신을 따르는 반란군들을 이끌고 서둘러 로체스터 성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로체스터 성의 무관장(Constable)은 왕당파인 레지날드 드 콘힐(Reginald de Cornhill)이었으나 반란군들을 보자 왕당파에서 반란군으로 전환해 로체스터 성을 개방해버렸습니다.

이때 도비니 세력의 크기는 95명에서 140명 사이의 기사들과 로체스터 성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들을 추가로 지원받게 됐습니다.

남동쪽에서 용병들을 모으고 있던 존 왕은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이 차단 됐다는 걸 알게 되었으나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고, 1215년 10월에 로체스터 시를 기습하여, 로체스터와 런던으로 통하는 다리를 봉쇄하고 성을 포위했습니다.

존 왕은 로체스터 시 내부에서가 아닌 로체스터 성의 후방인 볼리 힐(Boley Hill)에 진을 쳤습니다.

13세기의 연대기 작가, 반웰(Barnwell)에 따르면 볼리 힐에서 다섯 대의 공성병기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을 던져 공격했으며 각종 투사무기들을 쏘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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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 외성이 뚫리면 아성으로 직행이다.)



로체스터 성의 외벽은 금방 뚫렸습니다. 반란군들은 서둘러 아성으로 후퇴하여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공성병기는 아성(Castle Keep)을 무너트리기엔 너무 약했습니다.

존 왕은 방법을 바꿨습니다. 존 왕은 땅굴을 파라고 광부들에게 지시한 한편, 휴버트 드 버그(Hubert de Burgh 1170 ~ 1243년 5월 5일. 훗날 1대 켄트 백작)에게

"탑 아래 불을 붙일 것이니 가장 맛 없어 보이는 살찐 돼지 40마리를 조달하도록."

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로체스터 성의 아성 밑에서 40마리의 돼지들이 불타올랐습니다. 40마리의 돼지들이 불타며 발산하는 열기는  목재로 만든 성의 뼈대, 바닥, 식탁, 의자, 기둥, 등을 불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성의 한 축이 불타 주저앉았으나 로체스터 성은 각 방으로 이루어진 탓에 반란군들은 장애물을 쌓고 항전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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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마리 돼지의 위용)


하지만 반란군들은 군량이 부족해지면서 서서히 궁지에 몰렸습니다. 기아를 버티지 못해 항전에서 이탈한 반란군들은 손과 발이 잘렸다고 합니다.

결국 같은 해, 11월. 반란군들이 항복했습니다.

이전에 존 왕을 섬겼던 쇠뇌병이 교수형에 쳐해졌고 그 외에는 감옥에 갇히거나 코페 성(corfe castle) 같은 왕의 직할령에 감금 됐습니다.


출처




참고로 로체스터 공성전을 영상화한 아이온 크래드라는 영화가 있는데, 여기선 존 왕이 패배함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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