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1.9.7 군밤의 50세 탄신일 행사 후 파고다공원에서.
대한제국군 군악대는 1900년 고종의 명으로 창설되었으며 조선군의 곡호대가 전신이다. 편제상 시위대 예하 부대였다.
사진 중앙 백인 노신사가 군악대 교사직을 맡은 프로이센 왕실악장 출신 프란츠 에케르트. 이 양반은 1년 뒤 애국가(대한제국)를 작곡하기도 함.
군악대는 군밤이 걍 지 뽀대나 보일려고 창설... 한건 아니었고
민영환이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하고 돌아와선 인상 깊었던건지 군밤한테
"우리도 군의 사기진작을 위해 필요한 레후~"
라고 주청해서 창설됐다고 한다.
↑ 벨리라와 행진북을 들고 마칭을 준비중인 군악대.
군악대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악기들은 아관파천 후 들어온 러시아 군사교관단을 통해 프란츠가 사들인 독일제였음.
처음 보는 사람들은 기괴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짤의 요상한 제례도구 같은 녀석은 대충 실로폰 친구 느낌의 타악기 벨리라. 촬영지는 종묘.
↑ 서까래 아래 그늘속에 잠겨있는 우리 동네 음악대장.
에케르트는 대한제국 황실과 계약하기 전에 이미 일본제국과 계약을 맺고 일본군에게도 양악을 전파한 경력이 있었고, 조국에서 왕실악장도 역임한 만큼 실력 하나는 확실한 세계구급 뮤지션이었음.
교습 스타일은 위플래시 문어 선생 처럼 굉장히 엄격하고 빡쌘 교육자였다고 함. 에케르트의 이런 스파르타식 교육 덕에 대한제국 군악대는 단기간에 높은 성취를 이루고 수년간 각종 황실행사와 백성들의 위로 음악회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특히 위로 음악회는 군악대의 중요한 정기 행사였는데, 군악대는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에 파고다 공원에서 정기적으로 연주를 해야 했기 때문임.
고종은 민간에 제국군의 위용을 보여주는 한편 당시 최신 문물이었던 양악으로 백성들에게 힘을 복돋아주려고 했었다고.
한편 대한제국 군악대는 한반도를 찾아온 외국군의 군악대와 교류도 했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프랑스 프리앙트호의 군악대와 교환연주를 했었고, 1905년도엔 귀빈들과 주재 공영사들을 초청해 독일군 제6함대 군악대랑 파고다공원에서 광란의 연주배틀을 벌였다고 함...
요건 촬영 영상이 없는게 아쉽노
하여간 전국 유일의 군악대다보니 온갖 행사란 행사는 죄다 불려갔었음 ㅋㅋ;
고종은 애국가를 작곡한 공과 군악대의 높은 수준에 크게 만족해 에케르트에게 태극 3등급 훈장을 수여했으며
군악대의 이 살짝 맛이 간듯하고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실력은 허울이 아니었던건지 영국인 기자의 귀에도 들어가 놀랍게도 타임스에 극찬썰이 실리기도 했는데
"아니 ㅅㅂ 가만두니 밑도 끝도없이 가네 국뽕도 적당히 빨아야지 구라치지 마라"
"조선인들은 음악의 재능을 가졌다. 조선의 군악대는 설립한 지 불과 몇 해 되지 않았으나 그 기술은 영국의 빅토리아 악대나 미국의 수사 악대보다 못하지 않다."
일본대리공사 하야시로부터 "조선 사람과 일본 사람을 비교했을 때 누가 음악적 기질이 있느냐"고 질문을 받은 러시아의 바울 공사는 "조선 사람은 동양의 제일 이라 일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이왜진?
이렇듯 대한제국 군악대는 장비도 좋고 밥값 제대로 하는 부대 였지만, 을사조약으로 제국군이 해체되며 덩달아 짧은 생애를 마치고 역사속으로 사라짐. 악-바
↑ 2017년 덕수궁에서 열린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행사로 재현된 제국군 군악대.
군악대는 제국군 해산 후 황실음악대로 개편 됐고, 고종 사후엔 경성양악대로 민간 악단이 되며 대한제국 황실과 군부와는 완전히 연이 끊기게 된다.
'경성~'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했겠지만 군악대는 오늘날 서울시립교향단의 모체가 됨. 한편 황실음악대 / 경성양악대를 떠나기로 선택한 군악대 장병들은 전역 후 호텔, 극장, 부유층의 가정교사, 전국 학교 등지에서 경력을 살려 전문악사로서 일자리를 구해 한반도에 서양 음악을 널리 보급하는 시발점이 되었음.
마무리로 군악대 복제.
진리의 검빨조합은 그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나봄
군악대 대장은 더블 브레스티드 장교복을, 이하 대원들은 싱글 브레스티드 재킷을 걸치고 어깨엔 시위대 소속임을 알@리는 견장을 붙임.
그림 자료 우측의 벨리라병은 소매에 얇은 붉은 선 세개가 있는데 이는 상등졸로 오늘날의 상병에 해당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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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군악대는 비전투병과에 항일운동 인사도 배출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주목도도 낮고 관련된 연구도 많지 않은 편인데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병과의 본분에 충실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고, 그 어떤 부대보다도 민간의 일상과 가까운 부대였기에 한번쯤 이렇게 군붕이들한테 소개하고 싶었음.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벨리라 저거 볼때마닻어떻게 연주하는지 몰루겠음 생긴건 로마군 군대장 지팡이처럼 생겨가지고
서른살까지 동정을 지키면 벨리라의 요정님이 몰래 와서 알려주신대
제정 러시아에서 왔다는 저 콧수염 아저씨는 어찌됨? 걍 본국으로 돌아갔나?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처럼 끝까지 사람들한테 음악 가르치면서 한반도에 남아있다가 위암 투병으로 사망함. 묘도 저 사람들처럼 양화진선교사묘에 안장됨.
아앗 아.... 중요한 사람인데 머리털 나고 처음 들었노...
드라마 하나 뽑을 수 있는 소재다
그 배우가 고종역으로 "재밌겠는데? 진행시켜" 해줬으면
대한제국 애국가 은근히 뽕차드만
영화로 나올만한 소재같은데 ㅋㅋ 왜 첨들어봤지 - dc App
근현대사 교과서에 실리려면 1. 항일운동을 했거나 2. 매국노였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하는데 군악대는 비전투병과에 프란츠 본인도 천성 음악인이었던지라 조선인들 교육하고 지휘하는데 여념이 없어서...
음악에 미친 사람이라 죽기 직전까지도 지휘하려고 했고 지휘자 자리도 위암으로 쓰러지기 직전에서야 수제자한테 양도함. 그래도 원랜 3년 계약이었는데 조선 사람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1916년에 타계할때까지 계속 있긴 했음. 장례식도 명동성당에서 했고
개멋있네 - dc App
걍 고종이 군복볼줄만 알았던거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