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공습과 미드웨이 해전 이후 호주와 뉴질랜드 군을 포함한 미 연합군은 과달카날을 반격의 거점으로 삼아 일본 본토 공략을 꾀하게 됨


반대로 일본군은 남방작전으로 동남아를 장악한 뒤 후방의 위협인 호주를 압박하고 미군과 호주ㆍ뉴질랜드군의 연합 작전을 차단하기 위해 과달카날을 비롯한 남태평양의 섬을 점령해야했고


1942년 대본영은 일본 해군이 관할하던 남태평양 수역에서 제공권을 확보하기 위해 섬에 활주로를 집중 건설하기 시작함


과달카날 전투에 앞서 미드웨이·산호해 해전에서 항모 4척과 경항모 1척이 수장되고 2척이 파손되는 등 항모기동전력이 큰 타격을 입는 바람에 지상 발진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미드웨이 해전 이후 남태평양에서 미ㆍ일의 전투는 비행장이 있는 섬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시작했고 첫 스타트를 끊은 전투가 과달카날 전투였음 


공중 전투와 해상 함포전이 아닌 미 해병대와 일본군의 첫 육상 전투가 벌어진거지


즉 미군과 일본군이 태평양 전선에서 처음으로 육상에서 교전을 벌였을 정도로 미국 입장에서는 반드시 뺏어야 했고 일본 입장에서는 사수해야 했던 전략 요충지였던거고


이렇게 과달카날은 이렇게 미군의 태평양 전략에서 간과할 수 없는 핵심 길목이자 전략 요충지인건데 21세기에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짱이 노리는 거 


특히 동중국해는 일본, 인도양은 인도, 남중국해는 호주가 미군과 함께 연합 방어 작전을 벌인다는 전략 차원에서 보면 호주와 미군의 연합 작전을 차단하는 급소가 과달카날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