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ㅇ사람몸으로 싸우던 시절에 수십대일의 교환비를 실현했던 그리스군....
[일반] 고대 보병장구빨의 진수를 보여줬던 전쟁.jpg
웰치스빈(wellbinna)
2022-10-07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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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최적 조건에서 정면 맞다이하면 군단병도 깨지 않았었냐 그리스 우주방어 최적화 장구이려나
?? : 아나바시스?
호플리테스는 필리포스 2세의 군제 개혁 이후 마케도니아 군제가 동지중해 표준이 되기 전까지는 동지중해 최강 병종이었던게 맞는데??? 페르시아 전쟁 끝나고 페르시아에서도 그리스 호플리테스들을 용병으로 고용함. 대표적인게 페르시아 왕위 쟁탈을 위한 내전에 용병대장으로 참전한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고. 크세노폰이 그리스인 부대를 이끌고 페르시아 내륙까지 진출했다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크세노폰의 지휘 능력 뿐만 아니라 호플리테스 위주로 구성된 그리스군이 페르시아 군에 비해 우세했기 때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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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플리테스보다 팔랑기테스가 무장이 가볍다는 건 무슨 소리임?? 팔랑기테스가 장비하는 사리사만 해도 4.5m가 넘고, 한 손으로는 아예 다룰 수도 없는 무기라 방패를 팔에 걸 수 밖에 없었는데?? 청동제 갑옷이 아니라 린넨 섬유를 겹친 갑옷을 입은 걸 얘기하는 거면, 호플리테스들도 이미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가 되면 린넨 갑옷을 입었어
'뛰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는 것은 중세 기사들이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기중기로 말 위에 올라탔다는 정도의 잘못된 상식임. 마라톤 전투 끝나고 페르시아 해군보다 빠른 속도로 뛰어서 마라톤에서 아테네 시까지 주파했던게 당시 시민 호플리테스들임. 그래서 1차 페르시아 전쟁에서 아테네가 함락당하는 걸 간발의 차로 막을 수 있었음.
너가 말한 중동, 페르시아의 경무장한 군대야 말로 그리스 군의 밀집대형 중량에서 오는 충격력+ 중장보병의 방호벽을 뚫지 못하고 점점 중무장화 되어가는 모습을 페르시아 전쟁 이후 계속 보여줌
페테제타이로이가 작고 가벼운 방패를 쓸 수 밖에 없던 건, 양손으로 창을 잡을 수 밖에 없으니까 방패를 한손에 장비할 수가 없었기 때문임. 아무리 경량화를 시도했다고 해도, 사리사의 무게가 도뤼보다 더 무거웠고. 기동성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호플리테스에 비해서도 팔랑기테스가 훨씬 더 둔중함. 대신 필리포스 2세는 기병전력과 경보병 전력을 육성해 이를 방비한 것이었고.
그리스가 기병을 육성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중장보병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건 맞지만, 페르시아가 주력을 기병, 중기병으로 유지했던 것은 결국 페르시아의 패착을 가져온 중요한 원인임. 페르시아가 호플리테스 같은 중장보병을 못 굴렸던 데에는 페르시아의 정치체제가 그리스에 비해 전제적이었던 것도 한 몫하고. 그리스와 같이 시민이 자비로 마련한 중장보병을 대량으로 활용하기가 어려워서 그리스 용병에 의존했던 것임. 결국 페르시아가 그리스와 알렉산드로스에게 질 수밖에 없던 것도 결국 중장보병의 저열함에서 비롯된 것인데, 페르시아가 기병과 경기병에 주력했다는 것을 호플리테스의 한계를 지적하는 논리로 쓰는 것은 어불성설임.
기본적으로 페제로타이가 가벼운 방패를 썼던것은 사리사를 한 손으로 다룰 수 없었기 때문임. 양손으로 창을 잡고 지탱하는데, 방패를 "들 수가" 없었고, 따라서 팔이나 어깨에 방패를 거는 식으로 밖에 장착할 수 없었음. 디아도코이 이후 중장화 됐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정통 그리스 호플리테스들이 썼던 방패에 비해서는 가벼운 방패를 장착할 수 밖에 없었음.
1. 중장보병을 보면서 "안 바꾼게 " 아니고 페르시아는 "못 바꿨다". 애초에 호플리테스란게 그리스의 시민들이 자비로 무장하여 농번기에 대형을 짜는 훈련등을 반복하며 만들어지는 대형이자 병종인데, 그리스에 비해 훨씬 더 전제적인 페르시아가 이러한 시민들로 구성된 호플리테스라는 병종과 대형을 구성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2번은 니가 도대체 무슨 맥락에서 얘기하는지 알아먹지도 못하겠는데 무장도도 훈련도도 낮은 테베가 스파르타라는 강적을 꺾었던 것은 사선진이라는 대형, 전술상의 혁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 여기서도 테베 주력은 호플리테스였고, 그 중에서도 핵심전력은 신성대라는 300인으로 구성된 정예 호플리테스였음. 애초에 사선진이라는 대형 자체가 호플리테스 간의 싸움에서 전선이 점점 오른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응용하여 만들어진 전술인데?? 테베가 스파르타를 꺾었던 것도 호플리테스를 엄청나게 잘 썼기 때문이지, 스파르타 호플리테스가 지닌 병종상의 한계 때문에 진 게 아니다
단편적으로 밖에 못 보시는데 애초에 알렉산드로스가 휘하 병력 몇만 이끌고 다리우스를 직접 공격하는 과감하고 위험한 전술을 꾀한 것도 팔랑크스 대형의 방호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임. 다른 얘기로 하면 좌//익이 집중 공격을 받아 와해될 위기가 왔어도 팔랑크스의 방호력으로 이를 저지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기도 하고
정작 페르시아가 '중기병'이라는 것을 양성하기 시작한 것도 그리스 호플리테스와 접하며 자신들의 경기병, 경무장한 투사병력 위주의 병력으로는 그리스를 상대할 수가 없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인데 ㅋㅋㅋㅋㅋ
뇌피셜로만 글 쓰니까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페르시아 역시 후기로 가면 갈수록 그리스를 모방해서 자국군을 중장화 시켜 나가는데 혼자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암만 임모탈 얘기를 해봤자 호플리테스는 단순 병종일 뿐만 아니라 '대형'임. 페르시아의 중장보병들은 호플리테스의 밀집대형인 '팔랑크스'를 이루어 싸우는 방법을 결코 완전히 모방할 수 없었고, 이 자체가 그리스의 시민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존 린을 비롯한 저명한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소린데?
ㅋㅋㅋ 아 그니까 팔랑기타이가 호플리테스보다 경무장했다는 거 자체가 오류라니까요?
페제로타이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건 너가 가우가멜라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고... 페제로타이가 호플리타이보다 오히려 더 중무장했고 기동성 역시 더 둔중했기 때문에 기병과 경보병들이 이를 보조해 줄 역할이 더 필요했던 건데?????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는 단순 병종의 문제가 아니라 "대형"의 문제고 이들이 쓰는 전술의 문제인데, 페제로타이의 대형이 종심이 훨씬 깊고 더 둔중해서 방향전환이 오히려 그리스 호플리테스보다 더 느렸고, 측후방에 대한 위협에도 더 노출되어 있어서 보조병들이 필요했다는게 중론이다.
뭐라는 거야 진짜 ㅋㅋㅋㅋㅋ 레욱트라 전투는 에파미논다스의 사선진의 사용이 가장 중요한 전투의 승리 요인이 맞고요 ㅋㅋㅋㅋㅋㅋ
그리스 세계의 전쟁에서 경보병이란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더라도(실제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시기부터 그 비중이 급격히 증대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에 불과했다.
전훈 분석 잘못한거네. 레욱트라 전투에서 '사선진'이라는 서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술적 혁신이라고 하는 것이 도입이 되었다. 좀 알고서나 얘기해라 ㅋㅋㅋㅋㅋ 시발 내가 육사에서 전쟁사를 강의했는데 그것도 모를까?
응 아냐 ~ 레욱트라 전투의 사선진은 통상적인 호플리테스 간의 대결에서 발견되는 좌-익과 우-익의 사용에 대한 발상의 전환, 좌-익에서의 집중의 원칙의 달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후 테베 뿐만 아니라 다른 그리스 폴리스들도 잘만 호플리테스로 응용해서 써먹음
응 아냐 펠로폰네소스 전쟁기 당시만 해도 시칠리아 원정 전부터 아테네 군에서 경보병의 비중은 계속하여 증대되어 왔음
존나 부수적인 요인에 집착하네 ㅋㅋㅋㅋㅋ 그 경보병의 활용이란게 제한적이었다는게 주류 연구 경향이라고요 ㅋㅋㅋㅋ 어디서 논문하나 읽고 와서 깝죽대는거 진짜 못봐주겠네 ㅋㅋㅋㅋㅋㅋ
???? 뭔 개소리임??? 필리포스 이후에도 그리스 폴리스들 간에는 계속해서 내전이 있었는데?? 그리고 에파미논다스의 테베에 인질로 잡혀있던게 필리포스 2세였고 이 때 에파미논다스에게 큰 영향을 받아 이후 마케도니아의 군제 개혁으로 이어졌다는게 주류 학설인데?? 그리고 병신아 사선진이라는거 자체가 결국 유인과 기만, 망치와 모루 전술의 기원이야 ㅋㅋㅋ
레욱트라 전투에서 정작 승리의 핵심이 됐던 테베군의 좌-익이야 말로 이 전투에서 제일 종심이 깊은 팔랑크스 대형이었다. 이 종심에서 오는 충격력과 중량으로 스파르타군의 우-익을 밀어내면서 측방을 잡아 승리한 전투였고
아 자꾸 뇌피셜만 갖다가 지랄하니까 짜증나네 하는 짓이 러뽕이랑 똑같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르시아는 페르시아 전쟁 때 까지만 해도 기병의 대다수는 중기병이 아니었다 병신아 경기병이었고 투사체 무기 활용하는 기병이 대다수였고 이걸 변화시키게 한게 그리스와의 접전에서 호플리테스의 방호력을 이겨낼 수 없다는 판단이 있어서였고
병신아 ㅋㅋㅋ 너가 말하는 키루스 대제 시대의 카타프락토이 (사실 이 말 자체가 어폐가 있지. 그리스어고 그냥 중기병이라 부르는 게 맞는데)는 페르시아 전쟁 이후의 페르시아 중기병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 때 너가 말한 중기병이라 했자 흉갑과 투구 정도만 장착한 '경기병'에 가까웠다. "마갑? ㅋㅋㅋㅋㅋㅋ 마갑은 페르시아 전쟁 이후 페르시아군의 중장화 때나 나타나고요
?? 애초에 호플리테스의 기동성 유연성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살상력 얘기 처하노 ㅋㅋㅋ 내가 언제 호플리테스가 살상력이 높은 병종이자 대형이랬음??
테베의 우-익과 중앙이 사선진으로 뒤로 뺐다고? 뒤로 뺐다고?ㅋㅋㅋㅋㅋ 병신아 좌-익이 먼저가서 부딪힌거지 우-익과 중앙이 뒤로 빠진게 아니다 ㅋㅋㅋ 언제적 얘기를 처하고 있노 테베군 좌-익이 먼저 출발해서 사선형태로 진군, 좌-익부터 스파르타군 우-익에 충돌했던 거지
응 기동성은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가 더 떨어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스의 한계는 호플리테스의 역할을 보조할 수 있는 기타 다른 병종이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발전시킬 환경도 못 됐다는 데 있지 오히려 기동성의 측면에서는 이후의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보다 유연함.
키루스 대제 때 당시의 흉갑이랑 투구만 겨우 걸친 "중기병"이 그리스 호플리테스 상대를 못해서 이후에 중장화가 됐다는 소리를 하는건데 그게 중기병인지 경기병인지 따지고 있노 ㅋㅋㅋㅋㅋ 진짜 뭐가 맥락에서 중요한지 하나도 파악을 못하고 지가 아는 거만 퍼거마냥 주절주절 늘어놓네 ㅋㅋㅋㅋㅋ
주장을 하면 레퍼를 너가 가져와야지?? 페제로타이가 기동성이 낫다는 병신같은 소리를 하는게 말이나 되나 ㅋㅋㅋㅋㅋ 병신아 단순히 병종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사용하는 대열과 전술의 문제라고. 사리사 꼬나들고 종심의 오가 훨씬더 깊어진 대형이 어떻게 종심의 오가 더 얇은 그리스식 팔랑크스보다 기동성과 유연성이 더 높을수가 있냐? 그게 취약해서 기병과 경무장 병력들, 좌-우-익을 보강할 방패잡이들의 역할이 부각된 것이었고
내가 언제 호플라타이의 기동성이 페제로타이랑 같다고 함? 기동성은 호플리타이가 더 낫다고 계속 얘기했는데? "디아도코이들이 팔랑기타이 기동성 개나 줘버리고 사리사도 방패도 키운 것 언급하니까 거기에선 또 말이 이리 갔다 저리갔다?" 이건 뭔 개소리노. 디아도코이가 방패 키우고 중무장한거 누가 모르노?? 근데 병신아 너가 생각하는 것보다 초기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에서도 사용한 방패가 그리스의 아스피스 만큼은 아니지만 그 크기와 중량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게 최근 연구 경향이다
양손으로 사리사를 잡아야 해서 필연적으로 방패를 작은걸 써야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썼던 방패의 무게나 중량이 생각해왔던 거보다 작지 않았다고 병신아 ㅋㅋㅋㅋㅋ 이게 이해가 안 되냐?? 존나 맥락맹이네 ㅋㅋㅋㅋㅋ
?? 갑자기 헤타이로이 얘기하노 ㅋㅋㅋㅋㅋㅋ 느가 얘기하던 페르시아 이전의 중기병보다도 헤타이로이가 이미 더 중장화된 형태의 기병임 그리고 측방을 잡혀서 진 전투가 카이로네이아 전투인데 그 상황에서 측방 잡혔으면 마케도니아 팔랑크스든 그리스식 팔랑크스든 똑같이 졌음
그리고 카이로네이아 전투는 좌/익을 담당한 알렉산드로스의 과감한 공격성이 또 한 번 전투의 승패를 가른 원인이 되었던 전투이기도 함 ㅋㅋㅋ
아오 시발 뭔 대단한 소리를 지껄이나 했더니만 기껏 얘기하고자 한 게 그거였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병신새끼야 특수한 사례 하나 갖고와서 얘기하지 말고 일반론적으로 이해를 해라
페제로타이 개인개인이 아니라 호플리테스라는 병종 전반과 이들이 이루어 싸우는 대형, 이들이 사용하는 전술 전반을 아울러 얘기하는건데 어떻게 종심의 오가 더 깊고, 사용하는 무기가 더 길고 둔중한 대형이 종심의 오가 더 옅은 대형에 비해 측방과 후방의 위협, 방향 전환이 자유롭다고 얘기하는거냐 병신새끼야
레욱트라는 너야말로 이해를 다시 해라 이상한 주변부나 때리지 말고 ㅋㅋㅋㅋㅋㅋ 양측 다 경보병 용병과 기병도 운용했다. 스파르타 역시. 전투의 핵심을 가른 부분은 호플리테스들끼의 대결이었고, 여기서 사선진이 빛을 발한 거임. 테베군 우 익, 중앙이 뒤로 뺐니 지랄을 하던데 애초에 스파르타군에서 가장 강한 전열인 스파르타군 12오의 우 익이 테베군의 종심 50오 대열에 의해서 패주당하자, 스파르타군 중앙과 좌 익은 사기를 잃고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고 적혀있다.
로마 얘기를 왜 갖고 옴?? 로마가 그리스식 팔랑크스 대형을 쓰다가 갈아탔다는게, 여기서 니 새끼가 그렇게 쳐 말하고 있는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가 그리스식 팔랑크스보다 유연하다는 걸 입증할 수 있는 논거가 됨? ㅋㅋㅋㅋ 로마가 그리스식 팔랑크스랑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 둘 다 써보고 비교 해봤냐? ㅋㅋㅋㅋㅋㅋ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랑 싸워서 바른적은 있지 ^^
그리스식 팔랑크스에서 방패를 어떤 위치로 들었는지는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인데 어깨에 걸쳤다고 당당히 제시하쥬? ^^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도 어깨에 방패 걸치고 다녔쥬? ^^ 그리고 자꾸 병사 한 명 한 명 입장에서 생각하는데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 256명이 최소 종심 16오의 "대형"을 이루어서 부대 전체가 방향 전환하는걸 쉽다고 이해하는 병신이 있쥬?
그리고 그리스 팔랑크스 대형도 시간이 지나면서 방패와 흉갑의 재질, 무게가 지속적으로 경량화 되어가는 과정을 거쳤는데 이런 부분은 싸그리 무시하쥬? ^^
응 피로스라서 애먹은거야 ㅋㅋㅋㅋㅋ 지휘관 역량은 싹 다 빼먹고 우리 팔랑크스가 너네 팔랑크스 이겨!! 이 딴 얘기만 쳐하고 있노 ㅋㅋㅋㅋㅋㅋ 응 1차 포에니 전쟁 당시 레굴루스가 이끄는 로마 보병이 그리스 팔랑크스 용병대 정면 못 뚫었다 병신아
로마 대형이 애초에 그리스식이든 마케도니아식이든 훨씬 더 유연하고 기동성 높고, 전술단위도 세분화 된 대형인데 모든 팔랑크스에 대해 로마 대형이 가지는 이점을 들고와서 거들먹거리고 있노 ㅋㅋㅋㅋㅋㅋ
이제 사선진이랑 키루스 대제 "카타프락토이"운영설은 얘기 안 하네? ^^
호플리테스~
아! 여기 5~6m길이, 6~7kg 되는 창 꼬나든 256명이 16열로 이루어진 대형짜고 존나게 유연하고 기동성있게 움직인다는 병신이 있다!
2.5m에, 1~1.8kg 되는 창 들고 12열로 이루어진 대형보다 훨씬 유연하고 가볍고 기동성있다!!!